둘째가 내게 알려준 감사
다음 글을 오랫동안 쓰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직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가 건강하게 돌을 지나고 있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날을 글로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제왕절개 후 마취에서 풀리고, 병실로 돌아온 순간 남편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둘째가 니큐에 갔대. 호흡이 불안정해서 그렇대.”
믿기지 않았다. 분만실에서 우렁찬 울음소리를 들었는데. 주수도 38주를 넘고, 체중도 3킬로 가까이인데.
간호사 선생님들이 생일 축하 노래까지 불러주었는데.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100만 원짜리 특실은 조금도 편하지 않았다. 첫째 때는 코로나 때문에 하지 못했던 모자동실을 이번에는 꼭 하고 싶었다. 아이와 교감하며 모유수유도 원 없이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 모든 바람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엄청난 죄책감이 밀려왔다.
혹시 내가 임신 중에 무리해서 아이를 힘들게 만든 건 아닐까. 만삭까지 일도 즐겁게 했고, 첫째와도, 남편과도 행복했는데. 올 한해는 일과 육아를 다 잘 해내는 멋진 워킹맘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섣부른 오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금 겸손해졌다.
처음 니큐에 들어갔을 때의 순간은 아직도 선명하다.
수술 자국이 아물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들어갔는데, 작은 아기는 코와 입에 호스를 단 채 누워 있었다.
나는 눈물과 땀범벅인 채로 아이의 태명을 열심히 불러주었다.
그 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유축해 초유를 보내는 것뿐이었다.
태어나자마자 해주고 싶었던 첫 모유수유조차 직접 할 수 없어 눈물이 났다.
나는 먼저 퇴원해 집에서 첫째와 지내며 유축한 모유를 병원에 가져다주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내 안에 있던 아이가 곁에 없는 그 공허함, 그 허전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혼자 조리원에 가는 건 싫어, 조리원 입실을 미루고 아이와 함께 갈 날만을 기다렸다.
하루 한 번 정해진 영상통화 시간.
나는 그 시간을 간절히 기다렸다.
어느 날 간호사 선생님이 문자로 사진을 보내주셨다.
“오늘따라 ㅇㅇ이가 너무 예뻐서 찍어봤어요.”
영상통화만 간절히 기다리는 나에게, 그 사진과 따스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모른다.
첫째 이름은 한 달 넘게 고민하다 과태료를 물 뻔했는데, 둘째 이름은 빨리 불러주고 싶어 서둘러 지어주었다.
둘째는 열흘 후에나 나올 수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된 건 둘째는 경미한 호흡 문제였을 뿐이고, 다른 병원 같았으면 5일 안에 퇴원했을 거라는 사실을. 그저 꼼꼼한 의사를 만난 덕에 조금 길어졌던 것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와 함께 퇴원해 첫째 때 갔던 조리원으로 들어가던 그날의 기쁨을 잊을 수 없다.
기다림 끝에 얻은 평범함이 그토록 큰 행복이라는 걸,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이제는 안다.
우리 곁에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 그보다 더 감사한 건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