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by hechi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린,


닿자마자 변하는 도로 위의 검은 눈, 닿자마자 더러워지는 새하얀 눈의 전신, 버려진 나뭇가지를 파묻은 눈, 내려 쌓인 눈을 비집고 나온 버려진 나뭇가지,


가려린.


차가운 도로 배수로 덮개 나란하게 일정하게 비워진 사이사이 사라진 하얀 것들, 자동차 둥근 바퀴자욱과 누군가의 발자욱.


직사각형으로 일정하게 뚫린 철제 배수구 덮개 사이로 사라진 하얀 것들이 만들어 놓은 고난이도 함수방정식의 곡선이라고 이름을 붙인 선들,


아름다운.


누구도 밟지 않고 검게 변하지도 않은 새하얗게 쌓인 눈을 목에 두른 나뭇가지, 나무에서 땅으로 떨어졌을.


하늘에서 떨어지는 차갑고 작은 하얀 것들이 내려 앉지 않은 고가도로 밑 매마른 겨울의 풍경들, 눈 내리기 전 매마른 풍경이 고스란히 남은 겨울의 고가도로 밑 옆으로 커피가게 외벽을 뚫고 나온 연통에서 땔감나무가 타는 냄새들, 조용하고 희멀건하게 퍼져가는.


츠르르르르르르르 츠르르르르르르르르르


차도에서 검게 변한 하늘에서 떨어진 작고 하얀 것들이 자동차 둥근 바퀴 굴러감에 밟혀 내는 소리, 하얀 엘이디가로등 빛 밑으로 흐르는 투명한 시냇물 표면, 작고 차가운 하얀 것들이 닿아 사라진.


하얘진 산책로 위에 꼬마들이 흘리고 간 포켓몬 카드 두 장, 조요한. 아파트 주민들의 불법 작은 텃밭의 조용한 휴식, 작은 새의 작은 발자국들 프린트 된 하얀 이불을 덮은. 산책로 옆 설상은 편지지, 수줍은 하트로 짝사랑의 고백을 담은.


다 쏟아내고 무연하게 퍼져가는 하늘,


내 산책을 담은 혹은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에 비치는. 산책로 가로수 옆에 조용히 서 있는 눈사람, 발과 손을 만들어 주고 싶은. 오만가지 발자국이 무수하게 찍혀 있는 놀이터와 야외 농구장, 쌓인 눈이 정신없게 흐트러진. 주먹보다 조금 더 큰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하얀 손들 옆을 지나가는 팔짱으로 결합된 커플. 눈을 뭉치고 있는 하얀패딩을 입은 여자와 검은 조끼 패딩을 입은 남자, 횡단보도 붉은 빛 아래서.


인도에 쌓인 눈들은 발자국을 만들고.


집으로 돌아고 있는 노부부, 마트 장바구니를 한쪽씩 들어 자신들의 오른쪽 왼쪽 사이에 띄우고. 아파트 단지 사이 눈위를 뒹굴며 겨울을 놀고 있는 꼬맹이들, 저녁을 한참이나 유예한.


하늘에서 내려온 작고

하얗고 차가운 것 모든

장면들 노래가 되어 여기서


흐르고 흐르고


흐르면,


겨울은 깊어지는걸까


*


고마워 세상은 늘 같은 것 같지만 항상 다르지.

겨울에 내리는 눈은 그 사실의 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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