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보는 클라이머들 사이에서
클라이밍 처음으로 도전합니다.
처음 수원에 있는 수원 클라이밍장을 찾았을 때, 약간의 긴장과 설렘이 뒤섞여 있었다. 큰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는 실내에는 다채로운 색의 홀드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각자 도전을 이어가는 클라이머들의 집중한 모습이 공간을 진지하게 만들었다. 높은 천장과 깔끔하게 정리된 휴게 공간, 그리고 구석구석 손질이 잘 된 벽면을 보며 ‘이곳은 정말 정성이 담긴 장소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클라이밍장의 벽을 마주했을 때 나는 조금 주저했다. 매끈하고 거친 홀드들이 어지럽게 박혀 있는 벽은 나를 시험하듯 조용히 서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나 자신과 마주해야 했다.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조심스레 마음 한 구석에서 피어올랐다. 클라이밍은 내게 단순한 운동이 아니었다. 오르고 미끄러지고 다시 도전하는 그 반복 속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인지 알게 됐다.
벽을 타는 건 어릴 적 운동장에서 놀던 기억 속 어렴풋한 도전일 뿐, 본격적으로 클라이밍에 도전해 보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낯선 공간과 생소한 장비들. 그리고 벽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의 집중한 표정 속에서 나는 살짝 위축되었는지도 모른다.
쿠로 선생님과 첫 만남
그때, 한 사람이 밝은 표정으로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라는 따뜻한 말과 함께. 바로 쿠로 선생님이었다. 쿠로 선생님은 클라이밍 베테랑이자, 누구보다도 클라이밍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체구는 날렵하고 단단했지만 말투는 부드러웠고 표정은 늘 따뜻했다. 사람을 대할 때 느껴지는 배려와 눈빛에서 이분이 단순한 운동 코치가 아니라 진심으로 사람과 운동을 연결해 주는 멘토 같은 존재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쿠로 선생님이 클라이밍화는 어떻게 신는지, 몸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손과 발을 어디에 두면 좋을지까지 세세하게 알려주셨다. 단순한 기술 설명을 넘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까지 설명해 주셔서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말투는 부드럽고 설명은 간결했지만 그 안에는 오랜 경험과 진심 어린 배려가 녹아 있었다.
선생님 손민수 하기!
그렇게 쿠로 선생님은 시범을 보일 때 벽 위에서도 마치 땅을 걷는 것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손끝에 집중하며 천천히 무게 중심을 옮기고 발끝으로 균형을 잡는 모습에서 ‘클라이밍은 단순히 힘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함께 쓰는 예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점점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 해 보았다. 벽 앞에 서는 자세, 발을 올리는 위치, 손의 방향, 그리고 중심을 잡는 방법까지. 물론 처음엔 매번 실패했고 몇 번이고 미끄러졌다. 하지만 쿠로 선생님은 매번 "잘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이 방향으로 해보세요." 라며 작은 힌트를 주셨고 이 말씀 한마디에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마치 나의 모든 움직임을 보고 계셨다는 듯한 정확한 조언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선생님의 다정한 한마디
어느 순간, 나는 선생님의 동작을 점점 비슷하게 따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벽을 타는 손길 하나하나에 쿠로 선생님의 설명과 시범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마치 한 동작마다 내 몸에 새겨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반복하며 따라 하다 보니 처음에는 불가능하게 느껴졌던 루트도 조금씩 올라갈 수 있었다.
물론 중간중간 미끄러지기도 했고 잡지 못하고 내려올 때도 많았다. 하지만 쿠로 선생님은 "괜찮아요. 이건 과정이에요."라며 가볍게 웃어주셨다. 그 말에 신기하게도 다시 벽 앞에 서게 되고 조금 더 시도해 보게 된다. 실패도 괜찮다는 그의 말 한마디에 나도 나 자신을 조금 더 믿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내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이었다. 실수는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쿠로 선생님의 태도와 말투, 그리고 기다려주는 시선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그렇게 긍정적으로 내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어쩌면 클라이밍은 단지 벽을 오르는 운동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작고 약한 마음까지 끌어올리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누군가의 다정한 한마디가 있었다.
클라이밍이 뭐예요?
순간의 집중력, 자기 몸을 믿는 용기, 그리고 끈기와 인내가 필요한 스포츠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과정 속에서 만나는 ‘사람’이다. 나에게 있어 쿠로 선생님은 단순한 지도자가 아닌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준 친절한 안내자이다.
이곳은 도전하는 사람을 응원해 주는 공간이고 쿠로 선생님은 그 안에서 누구보다 따뜻한 조력자가 되어 주신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벽이 무서웠지만 이제는 그 벽이 새로운 나를 만나는 문처럼 느껴진다.
나 자신을 알아가고 극복해 나가는 작은 혁명의 시간이다.
나는 오늘도 선생님의 동작을 떠올리며 벽 앞에 선다. 내 안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한발 한발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상상도 못했던 높이에 도달해 있다. 이 모든 시작은 나에게 다가와 친절하게 인사해 주신 한 사람, 쿠로 선생님 덕분이었다.
벽은 말이 없지만 정직하다. 지금의 나를 그대로 반영해 준다. 내 집중력, 체력, 두려움, 그리고 의지까지. 한 발자국의 무게가 손끝의 떨림이 모두 진실하게 느껴지는 그 순간들이 쌓이며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이제 막 시작하는 클라이밍의 길 위에서 나는 안다. 이것은 단순히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한 여정이 아니라 나 자신을 알아가고 극복해 나가는 작은 혁명의 시간이라는 것을.
나 자신과의 싸움, 내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이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이상하게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못 오른 게 억울해서가 아니라 그 짧은 순간 내가 진짜 '무언가에 몰두했던' 느낌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잡고, 내딛고, 떨어지며 순간순간 모든 감각이 살아있었다. 그 감각이 나를 다시 벽 앞으로 끌고 갈 것 같았다.
클라이밍은 나에게 단순한 운동 이상의 의미가 아니다. 나 자신과의 싸움, 내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이다. 그리고 그 시작에 서 있는 지금 나는 묵묵히 내 몸과 마음을 다잡으며 첫 발을 내딛는다. 어쩌면 이 벽은 단지 인공적으로 세워진 구조물이 아니라 내 마음속 깊이 자리한 불안과 두려움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그 벽을 오르는 과정은 내 안의 흔들림과 맞서는 과정이며 내가 나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드는 여정이다.
마치며
지금 이 순간, 나는 두려움 앞에 서 있지만 그 두려움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클라이밍은 내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에게 묻는다. '네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얼마나 높이 오를 수 있는지 스스로 증명해 보라'라고. 이 시작이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나는 조금씩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벽 끝에 도달했을 때 나는 그 성장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도 클라이밍장에 갈 때면 쿠로 선생님의 밝은 인사와 친절한 설명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선생님의 모습을 따라 하며 한 걸음씩 더 높은 곳을 향해 오른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 반복하면 된다는 믿음, 그리고 혼자 아닌 함께라는 따뜻한 동행 속에서 새로운 취미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