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되는 운
친구가 사흘 뒤면 아프리카 대륙으로 떠난다. 불과 이틀 전에 들은 소식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가 스쳐 지나갔다. 한창 입시에 대한 불안감으로 우리는 수다를 떨고 부모님들은 점을 보러 다닐 때였다.
그날도 평소처럼 교탁 옆에서 신나게 떠들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사주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가 본인 사주를 대신 보고 오더니 역마살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 꼈다고 얘기해 주었단다. 당시 자유를 갈망하던 우리는 “야 그럼 해외 많이 간다는 거 아냐? 부럽다!” 며 본인들 사주에 역마살을 끼워 넣을 기세였다.
그렇게 역마살을 부러워하던 고삼들은 10년이 더 지나서도 한국 탈출을 꿈꾸고 있다. 다들 그 성향 못 버린 채 대학교에서도 교환학생을 최소 1년씩 다녀왔다. 심지어 사회인이 되어서도 만날 때마다 교환학생 시절 얘기를 하며, 언제 나갈 거냐고 서로를 독촉하곤 한다.
그런데 마침 그 사주의 주인공인 친구가 해외취업 스타트를 끊었다. 작년에도 유럽에서 일하고 돌아왔는데, 또 다른 해외 일자리를 잡았다. 합격하자마자 당장 출국하라고 해서 얼굴 볼 새도 없이 떠난다. 본인 말로는 생각 없이 지원했다가 덜컥 붙었다고 하는데, 그 마인드의 발톱만큼이라도 따라가고 싶다.
퇴사하고 외국 대학원 갈 거라고 외치는 나지만 실천이 어렵다. 해외살이를 좋아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안정적인 상황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에 살면 넓고 깨끗한 집에서 출퇴근하며 월급도 제때 들어오지만, 이 컴포트 존을 벗어나면 모든 걸 혼자 해결하고 견뎌내야 한다. 교환학생 때 자취방을 구하며 고생했던 기억,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를 당해 노트북이고 뭐고 싹 다 잃어버렸던 기억이 내 발목을 잡는다. 과거에 붙잡히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단칼에 베어내기 어렵다.
쓰다 보니 내 글에서 미련이 뚝뚝 묻어난다. 친구의 역마살을 부러워하던 10년 전 내 모습이 겹친다. 많이 무뎌진 게 아니었다. 언제나 원하고 있었지만 애써 감췄다. 아무래도 올해 연말은 진로 탐색의 시간이 될 것 같다. 과거에 얽매인 내가 아닌, 과거를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