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Dec 26. 2019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그곳, 『북쪽호텔』

군산 미원동 책방 조용한흥분색에서 꼽은 이 계절의 책

여행 매거진 BRICKS Life

책과 책방 특집호 - 이 계절의 책 #3




책방 조용한흥분色에서 고른 이 계절의 책 : 『북쪽호텔』, 이풀잎



 “상처 입은 영혼과 벗겨진 발바닥이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해요”


 차가운 공기를 좋아한다. 아니 그보다 더 진한, 시린 공기의 느낌을 좋아한다. 드러낼 수 없는 그 외로움의 아련함이 좋아 차가운 계절을 좋아한다. 깜깜한 새벽 혹은 이른 아침, 문밖을 나서며 마주하는 시린 기운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 아직 온전히 느낄 수 없지만 새벽녘, 그리고 늦은 밤 살갗을 감싸는 차가운 분위기와 함께 춥고 추운 겨울로 향해가는 이 시간이 좋다.



#이 계절의 북쪽호텔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칠 때면 어느 날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매일 다르게 찾아온다. 나만이 느끼는 공기의 시간. 그 시간 속 나의 이야기들. 잠시잠깐 느껴보는 그날의 추억과 분위기. 이는 내가 일상을, 그리고 순간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점점 차가워져 가는 이 계절의 북쪽호텔은 시리고 시린 공기 같았다. 그동안 차곡하게 쌓아왔던 나의 시간을 담아온 것처럼. 시시 털털한 사랑을 꿈꾸던 그날 금요일 저녁처럼.


이풀잎Yipulip

“아련함을 느끼는 건 떠도는 옛 향기들, 사랑했으나 사랑받지 못했던 이들의 흐느낌과 같을지도 모르겠어요. 현재에서 과거의 문을 열고 들어가 그들의 미래였던 지금의 나를 새롭게 만나고, 들어갔던 문이 아닌 다른 문 혹은 창, 항구의 선술집, 으깨진 나무의자와 같은 곳으로 되돌아와 눈물 젖은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며 속엣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상처 난 영혼들의 보금자리


보이지 않아 만질 수 없고 다만 체념의 힘을 빌려 감지할 수 있는 그 경계를 허물기 위해 아낌없이 벽에 부딪쳐 깨진, 상처 난 영혼들의 보금자리 그곳을 북쪽호텔이라 이름 짓는다. 북쪽호텔 다락방 조그만 격자창으로 그림 속 아름다운 잔 에뷔테른의 눈동자만큼 강렬한 폭우가 들이치면 동전 가득한 손지갑을 들고 사그레스 찻집에 간다. 심장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마음아 조금만 견뎌, 거의 다 왔어. - 이풀잎, 『북쪽호텔 중


이풀잎

“언젠가 외젠 다비 소설 『북호텔』의 배경이 된 호텔 근처를 지나게 됐어요. 그곳을 지나는데 유령처럼 떠도는 사람들이 보였어요, 저에게만 보이는 사람들. 그들은 사랑에 빠진 유령들, 이별에 아파하는 유령들,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유령들, 그리고 피나 바우쉬의 무용수처럼 아름답고 처연한 몸짓과 표정으로 호텔 주변을 떠돌던 유령 아닌 유령들이었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책 제목은 꼭 북쪽호텔이어야 한다고.

어둡고 슬픈 사람들의 사연을 모두 들어주고 싶었어요. 그들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고,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었죠.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할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북쪽호텔이었으면 했어요.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그곳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녀가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마 치유였던 거 같다. 상처도 슬픔도 무미건조한 일상도 기다림도 모두,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고 싶었음을. 매일 마주치는 수많은 걱정과 고민들, 나도 모르게 자리하고 있던 내면의 외로움, 나조차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의 이야기들을 꺼내어 사랑으로 치유해주고 싶었음을. 


‘그 어디라도 타고난 슬픔과 잠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곳이면 가닿고 싶었다.
그곳에서 심장을 꺼내 상처 난 부위마다 꽃잎을 덮어 꿰매주려 했었다’ - 이풀잎, 『북쪽호텔』 중에서


 상처 난 부위를 꽃잎으로 꿰매주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으로 말이다. 

 차가운 겨울이 오고 있다는 건, 아마도 그녀의 마음이 필요하다는 게 아닐까.





글/사진 미원동언니

뉴스, 커피, 책, 여행, 혼자를 있는 시간, 시리도록 차가운 공기를 좋아합니다. 

군산 미원동 책방 〈조용한흥분색〉

https://www.instagram.com/m1d.ordinaryday

매거진의 이전글 덕질의 삶, <보라하라,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