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없어!
여행 매거진 BRICKS City
눈 오지 않는 겨울. 건기가 생각보다 빨리 끝나가고 있다. 탄자니아에서의 근무는 어느덧 5개월 차로 접어들었다. 이 시간 동안 나는 함께 사업을 운영하는 현지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익혔고, 이제는 그 비슷한 외형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도 발음이 어려운 내 이름을 어설프게 소리 내며 반겨준다. 우리는 이렇게 호흡을 맞추어 나간다. 역할을 서로 분담하고, 지역 사회에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함께 고민한다.
하지만, 서로 너.무.나.도. 다른 우리가 같이 가치 있는 일을 위해 걸어간다는 것은 순탄한 일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나눠 줄 티셔츠는 7월에 주문했는데 일부는 아직도 배달되지 않았다. 업체 사람을 불러 화를 내고 지랄을 해봐도 곧 나머지를 가져다주겠다며 “함나 시다(문제없어)”라고 말로만 약속할 뿐이다. 나는 할 수 없이 또 한 번의 기회를 주고야 만다.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계약서는 누굴 위한 것일까. 공공기관에 나눠 줄 교육 자료 역시 한 달이 걸렸고, 담당자는 제작에 문제가 생겨 차로 10시간을 달려 다르살람의 공장에 다녀오겠다고 하였다. 내가 너를 어떻게 믿느냐고 목소리를 높이자 또 그 놈의 “함나 시다(문제없어)”가 나온다. 자기 차를 우리 사무실 마당에 담보로 맡겨둘 테니 자신을 믿어 달라 한다. 나는 홧김에 소리를 질렀다. “그 쓰레기 차 줘도 안 가진다고!!!”
우리 사무실의 현지 직원 A는 나와 쿵짝이 잘 맞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답답하기 짝이 없다.
가령 학교 모니터링에 같이 갈 교육부 공무원의 스케줄을 알아보라고 하면, 그 사람이 된다 안 된다, 확인만 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아니 그 사람이 그날 안 되면 언제 되는지 물어보면 되잖아, 왜 안 물어보는데?!” 그럼 그는 이렇게 답한다. “너가 그 날 물어보라며. 오케이, 함나 시다. 다시 전화할게.”
보건소 방문을 계획하고 떠난 어느 날. 잘 달리던 차가 갑자기 퍼져서 멈췄다. 내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차 빌린 값이랑 주유비는 어떻게 처리하지? 오늘 가기로 한 곳은 또 언제 가야 하지?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빨리 연락해야겠는데? 그러나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현지 직원 A와 운전기사 F는 또 그놈의 “함나 시다”를 말하며 웃는다. “걱정 마! 그래도 이 차로 돌아갈 수는 있어. 단지 속도를 못 낼 뿐이야. 20km로 달려서 우리는 3시간 안에 사무실 도착할거야.” ․․․․․․장난하냐?
그렇게 해서 다시 잡은 보건소 방문. 그런데 정작 중요한 설문지를 내가 깜박하고 챙기지 못했다. 인터넷도 전화도 잘 안 터지는 곳에서 겨우 신호를 잡아 사무소로 연락해 파일을 보내달라고 했다. 사람들은 A를 탓하며 이거 돌아오면 아주 혼을 내줘야겠다고, A 정신 차리게 혼 좀 내주라고 말하지만, 옆에 서 있는 A는 미소를 짓고 있다.
내가 말했다.
“그렇지! 함나 시다! (이번엔 내 실수로 안 가져왔지만) 어쨌든 받았으니까 괜찮아!”
글/사진 김정화
인류학을 공부하며 국제개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