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이름을 딴 아이와 다시 섬에서
여행 매거진 BRICKS City
섬에서 자라난다
아이와 바다를 곁에 두고 살 줄은 몰랐다. 제주에 내려온 첫 해 겨울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아이를 안고선 문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날이 며칠이나 이어졌다. 눈 내린 섬엔 갇힌 동시에 열려있는 것이 존재했다. 그것들은 나목 위의 눈꽃이며, 하늘과 땅의 경계며, 바다 위와 그 속 어디 즈음에 있었다. 말로는 툴툴거리면서도 끝까지 마음 써주는 섬 사람들도 그러했다. 여기저기서 아이 손에 귤을 쥐어주는 겨울을 지나고 나니, 제주에 정이 묻어버렸다. 작고 오동통한 손엔 밤낮 할 것 없이 새콤달콤한 시트러스 향이 묻어났다.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이 섬에 살고 싶어졌다. 눈이 거의 다 녹은 뒤엔 헤아릴 수 없고 아득한 것들만 높은 산에 남아 있었다. 꽃이 바다처럼 밀려드는 봄이 금세 찾아왔다. 유모차를 끌고 백화점을 도는 대신 가끔은 구름을 따라다니며 낮잠을 재웠다. 노을이 예쁘면 중산간으로 내달린다. 셋이서 빵과 커피, 우유를 나눠먹고 잔잔한 바닷가를 한참 서성이는 날도 있다. 제주에선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에 관해 아이에게 알려주기 편하다. 아이가 먼저 알아보기 때문이다. 예의범절이나 도구처럼 힘들여 설명할 필요 없다. 바다와 숲, 언덕과 초원에 들어서면 된다. 여기엔 커다랗게 이름 붙이긴 어려워도 찬연스러운 부분이 항상 있다. 신이 나서 엄마, 아빠를 외치며 작은 다리로 힘차게 걷는다. 만져보고, 냄새 맡고, 바라본다. 넘어져도 금세 일어나 손을 턴다. 눈부시고 가슴 뜨겁다.
자연 앞에선 미사여구보다 그림책 구절이 먼저 튀어 나온다. 아이가 없을 땐 상상할 수 없던 구연동화 체 목소리가 꽤 자연스럽다. ‘아가야, 아가야. 하늘 좀 보세요. 뭉실뭉실 구름이 얼굴 같아요.’ 그래, 어떤 날의 하늘은 정말 뭉실뭉실, 두둥실 그 자체다. 한라산에 눈을 뿌리고 온 구름 떼가 바삐 바다로 길을 떠나던 때에, 나와 아기는 집에 콕 박혀 간식을 나누어 먹고 또 먹었다. 의심할 여지없는 좋은 시절이 뭉실뭉실 흘러간다. 내 유년기엔 없던 풍경이 아이 앞에 종종 펼쳐진다. 아끼는 곳 중 하나는 장터다. 옥수수와 호떡을 사이좋게 먹으며 닷새에 한 번 서는 장을 돈다. 낫 따위의 도구를 쨍하게 만들어내는 대장장이가 건재한 2021년이다. 아이는 뻥튀기 기계 앞에서 놀라면서 공으로 뻥 과자를 잘도 받아낸다. 아무리 봐도 구별하기 힘든 묘목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든다. 흥분된다.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가장 적확한 단어다. 형형색색 봉지를 손목에 꿰고 순댓국과 막걸리에 군침 흘린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은 야쿠르트 리어카와 꽈배기 좌판에 매달려 있다. 도시를 오래도록 사랑했지만, 지금 난 이런 게 좋다.
도시를 떠나오고 한동안은 새벽잠이 줄었다.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은 적막해서 더 소중하다. 먼동이 희붐하게 밝아올 때가 좋다. 세상 모든 게 섬을 떠나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이사 온 집 앞은 돌담과 귤밭이었다. 온갖 벌레가 집안으로 기어들지만, 매일 봐도 생경한 풍광을 포기하긴 어렵다. 밭 주인이 키 큰 방풍림을 베어 버려 멀리 바다도 보인다.
자연 속에서도 육아의 한계와 기쁨은 현재진행형이다. 계절과 상관없이 아이는 떼를 부리고, 나는 늘 피곤하다. 그걸 아는지 예쁜 짓은 진화해 나를 달랜다. 매일 내 밑바닥을 마주하면서도, 작은 아이의 시간을 위해 몸과 마음을 솟아낸다. 기억하지는 못해도 몸 구석구석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들을 위하여. 훗날 아이가 제주는 어떤 곳이었냐 묻는다면, 어디서부터 말해줘야 할까. 너의 세계가 바로 이 섬에서 시작됐다는 그 이야기.
여행자, 넓은 바다를 누비는 주인공
그대는 기억이 희미해진
다른 나라의 신화를 가지고 오지
-스탠리 쿠니츠
다우 배와 맹그로브가 있었다
이제 곧 다섯 돌, 아이의 이름은 라무다. 받아 적는 데 고생 좀 할 법한 작명을 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신혼여행으로 다녀 온 섬 이름이다. 우리는 그곳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라무Lamu라 부르자고 5초 만에 합의했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마을버스같이 이곳저곳에 서는 경비행기를 타고 두어 시간 남짓 들어가야 하는 곳. 지도를 웬만큼 확대하지 않는 한 보이지 않는 작은 섬, 라무. 스와힐리 문화의 초기 정착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아직까지도 이슬람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마사이마라 초원에서 사파리를 마친 뒤 이 섬에서 쉬는 게 우리의 일정이었다. 당장 지구가 멸망한대도 오늘 잡은 고기로 밥상을 차리고 한가로이 물가를 유영할 것 같은 이들이 사는 곳. 우리가 기억하는 라무섬의 모습이다. 무엇이든 느려지는 마법 가루라도 뿌려놓은 듯 바다 결도, 사람도 느긋하다. 조금만 건드려도 훅하고 밀려나가는 다우 배가 수평선을 벗 삼아 둥둥 떠다닌다. 발길 들여놓는 이 누구든, 무지근했던 속엣것 가볍게 비워낼 수 있으리라. 우리도 섬의 대세에 따라 한없이 느려졌다. 닷새 동안 두 번 수영하고, 열 번 정도 낮잠을 잤으며, 네댓 번 주인이 다른 배를 탔다.
다우dhow는 돛과 바람만으로 동력을 얻어 나가는 라무 전통 돛단배다. 과거 라무섬이 동아프리카 해상무역의 중심지였을 때부터 고기잡이와 교통수단의 역할을 해왔다. 우린 다우를 타고 일몰을 즐기는 투어를 신청해 섬을 둘러싼 맹그로브 군락지까지 다녀왔다. 물속으로 뿌리와 열매가 자라는 기묘한 식물들이 깊은 잠을 자는 것처럼 숨죽이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 그 아들의 친구로 보이는 이가 선원이었다. 모터가 달리지 않은 배만 다녀 물결은 꿀처럼 미끄럽고 탐스러웠다. 배에서 내릴 때 팁을 조금 주었다. 고맙다는 표현을 하면서도 팁을 주지 않아도 우릴 욕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돈을 주머니에 넣고서 곧장 돌아서지도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했다. 젊은 친구에게 너희 라무섬에 계속 있을 거냐 물었다. 이렇게 배타고 흘러 다니면 걱정이 있어도 없는 듯 살 수 있어 좋다는 답이 돌아왔다. 호객행위를 하면서도 랩인지 노래인지를 흥얼거리던 젊은이들. 우리가 거절하면, 본인도 그럴 줄 알았다면서 같이 콜라나 마시자고 건배하는 웃긴 녀석들. 헤어지기 전엔 사진이라도 찍자며 턱을 치켜들던 ‘쿨내’ 진동하던 투박한 무리들이 라무섬을 지키고 있었다.
작은 섬 안엔 오래 전부터 그들만의 방식으로 지은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집은 산호와 맹그로브 목재로 만든다. 스와힐리, 아라비아, 페르시아, 인도, 유럽의 건축 양식이 독특하게 뒤섞여 있다. 섬의 모든 길은 미로 같다. 좁고 구불거리면서도 어딘가로 얽히고설켜 뻗어나간다. 골목이 비좁아 차가 다닐 수 없다. 배를 제외한 교통수단은 당나귀뿐이다.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른다. 당나귀 전용 병원도 있다. 라무섬에는 사람보다 당나귀와 고양이가 더 많이 사는 듯했다. 골목마다 이들이 버티고 있었다. 당나귀는 딱히 묶여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밤이면 자유의 몸이 되어 날뛰는 발굽 소리가 곳곳에 울려 퍼졌다. 슬픈 건지 신이 난 건지 알 수 없는 기묘한 울음소리를 냈다. 이슬람 사원에선 새벽 4시부터 기도 시간을 알렸다. 그 즈음이면 울음도 잦아들곤 했다. 내 눈엔 엇비슷하게 보였지만, 주인들은 기가 막히게 자신의 당나귀를 알아봤다.
우리가 빌린 집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옥상이 있었다. 산들 바람이 지나다녔다. 푹 꺼진 커다란 소파에 앉으면 뭘 해도 나른했다. 번갈아 낮잠만 자던 우리의 동선은 고작 십 분 거리인 쉘라Shela 해변까지가 거의 다였다. 오가는 길엔 골목에 딱 하나뿐인 상점을 지나야 했다. 구멍가게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음료수와 과자, 간단한 식료품 몇 개만 들여놓고 히잡 쓴 여인이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우린 매번 물건을 사면서도 별다른 말을 건네지 못했다. 히잡이 어색했던 것 같다. 길모퉁이마다 고운 모래 뒤집어 쓴 까만 아이들이 누런 우리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쳐다봤다. 지금이라면 말도 걸고 사탕도 주고 그랬을 텐데. 이십 대의 나는 잠보Jambo, 하고 인사만 겨우 했다. 그 아이들, 지금쯤 다우를 끌기도 하고 이른 결혼도 하고 그랬겠지 싶다.
‘라무’의 뜻이나 어원은 알려진 게 없다. 언젠가부터 라무라 부르기 시작했고, 섬을 닮고 알라를 믿는 사람들이 그곳에 산다. 그러니까 그저 라무다. 아이가 제 이름 뜻을 궁금해 하면 뭐라 말해줄지 가끔 생각한다. 맹그로브 나무가 바다에서 잠자고, 그 나무로 만든 집에 사는 사람들이 꿀같이 반짝이고 미끄러운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곳이라 해볼까. 내 엉뚱한 대답을 듣고 아이가 도화지에 라무를 그려주면 좋겠단 생각을 잠시 해본다. 라무야, 라무야. 엄마, 엄마. 우린 하루에 백 번도 넘게 서로를 부른다. 이렇게 찾는 것도 많이 물렁해지는 때가 오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라무는 온전히 라무가 되어 있을 거다.
거의 정반대의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누군가는 알고 있을까?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은 나와는 거의 정반대의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가끔씩 찾아와 내 심장을 들썩이는 지난 기억들이다. 비현실이다. 그 속엔 그리움과 함께 노을 같은 환상이 번져 있다. 육지에서 나고 자란 이에게 섬은 실제와는 동떨어진 곳이다. 현실엔 대입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편에서 움직이는 게 대부분이다. 제주에 산다고 다를 것 없다. 일상은 길가의 낭만적인 야자수나 흐드러진 꽃잎, 눈이 시리도록 파란 바다와는 상관없이 굴러간다. 이제 와 인터넷으로 찾아본 라무섬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적과 반군이 종종 출몰해 여행경보가 내려지기도 했고, 중국 자본으로 석탄화력발전소가 지어진다는 기사도 보인다. 물론 라무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한다. 10년 전에도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쉬는 이가 태반이라 했다. 처자식이 딸린 이들은 몸을 쓰거나 여행객 시중을 들며 겨우겨우 주머니를 채우고 있었다. 다우를 타던 그 청년은 별종이었을 수도 있다.
제주로 온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남편이 직장을 옮겼고, 사무실이 제주에 있었다. 이직 소식에 ‘앗싸’를 외쳤지만, 모험을 하기엔 너무 어린 아이가 있다. 아이가 불안정한 환경에서 유년기를 보내길 원치 않는다.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 그의 사무실은 서울과 마찬가지로 정글이다. 다만 버텨내려 최선을 다할 거라 곱씹는다. 출퇴근길에 중산간 도로를 달리며 구름을 보는 일, 회사를 나와 보내는 자연 속 여유로움은 무척 달콤하기 때문이다.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일과 육아로 보낸다. 가끔은 사은품 때문에 장바구니를 무겁게 채운다. 집에 와선 쓸모없는 그것들을 분리수거하는 바보 같은 일도 한다. 1+1 앞에선 손이 먼저 반응한다. 무섭게 번식하는 집안일 더미 속에서도 살 것은 계속 생긴다. 뭐라도 돈 되는 일을 해야 할 텐데 주식 계좌 하나 없이 산다. 잠과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한 달에 일주일 정도는 우울하고 화가 많이 난다. 미친 사람처럼 길에서 아이에게 소리 지를 때도 있다. 그럴 땐 어떻게든 바다로 나가보려 한다. 아이는 바다가 반짝일 때마다 까르르 웃는다. 섬의 제멋대로인 날씨는 지질한 나 같아 좋고, 대부분의 감정에 자연은 뭐라도 답한다. 내가 끊임없이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임을 반복해서 깨닫게 된다. 그 사실에 안도한다. 평일의 한적한 해안을 가면 홀로 섬이 된 사람들을 자주 본다. 그들은 바다를 앞에 두고도 보지 않는다. 그저 곁에 두고 있다. 각자가 하나의 물줄기이자 파도가 될 수 있는 지점에 서있다. 누구나 가장자리이며 변두리다. 저마다 하나의 객체이자 섬이 된다.
언젠가 아이가 현실을 벗어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내비칠 때, 이 글을 보여줘야겠단 마음을 가져본다. 네가 탐하는 비현실의 세계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넘실대는 청보리 밭에, 새빨간 동백꽃이 뚝뚝 떨어진 이름 없는 골목에, 온종일 웅크리고 잠을 자는 것 같은 맹그로브 뿌리 같은 것에 있다. 답을 모를 땐 가끔은 구름 너머에 그 비슷한 것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말해주면 좀 고지식해도 괜찮은 엄마다울까? 어떤 엄마가 되면 좋을까 고민하다 ‘모서리’라는 단어를 택했다. 혹시나 하며 사전에서 찾아보니 제주 방언이 있다. 모가 난 서까래(지붕의 뼈대를 이루는 나무)라는 뜻이다. 그래, 나는 라무의 모서리 같은 사람이 되는 게 맞겠다. 반듯하고 고르진 않지만, 지붕을 받쳐주는 뼈대 같은 존재.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 섬처럼 느긋하고 즐겁게 살라고 지어준 이름, 라무야. 나도 그런 마음으로 너와 자라고 싶다. 꽃 피면 계절 바뀌고, 바람 불면 비도 다녀간다. 어느 때든 우리 멈춰서 그것들을 바라보자. 웃자라지 않고 느릿느릿 흘러 다니자. 볕에, 바람에, 나부끼며 말라가는 얇고 너른 담요 자락을 바라보자. 여기, 지금, 네가 아직 어린 섬의 모서리에서.
글/사진 송인희
제주에서 5년 째 자음과 모음을 맞대어 삶을 꾸려가고 있다. 가끔 겉돌지만, 기민하고 섬세한 감각으로 부지런히 여행하고 글을 쓴다. 맑게 크는 아이를 보며, 다 자랐다 믿었던 자신을 보듬고 산다. 『아이랑 제주 여행』, 『설렘두배 홋카이도』, 『홋카이도, 여행, 수다』를 썼다.
인스타그램 @inhee.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