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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Mar 14. 2023

시네마 천국, 시칠리아 팔라조 아드리아노

〈시네마 천국〉을 되새기며

여행 매거진 BRICKS Trip

시칠리아에서 보낸 한 달 #5





2020년 세상을 떠난 영화 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 이따금 그의 음악이 그리워져 영화 〈시네마 천국〉의 OST를 듣기도 했다. 


나에게 “영화 음악이 좋으면 영화도 좋다”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영화가 바로 〈시네마 천국〉이었다. 이번 시칠리아 여행을 계획하면서 동선상 전혀 동떨어진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팔라조 아드리아노(Palazzo Adriano)를 가기로 한 것도 바로 영화 〈시네마 천국〉 촬영지였기 때문이다. 그 시골 동네를 구태여 찾아가는 대부분 사람들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시칠리아 본토에서도 동쪽 내륙에 위치해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렵고, 영화의 촬영지였다는 점만 빼면 그렇다 할 관광지조차 없는 시골 마을이지만, 〈시네마 천국〉이라는 커다란 명분이 존재하는 곳. 그곳에 가면 어린 시절의 토토와 알프레도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아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린 토토는 아직 마을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머릿속으로 인사말을 골라 입 밖으로 내뱉어 보기도 했다. 마을 초입에서 경찰 검문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잔뜩 설렌 소녀 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 물이 흥건한 시골길을 달려 마을에 도착했을 즈음 우리는 단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불심 검문을 당했다. 다른 차들은 그냥 보내면서 우리만 불러 세운 경찰들 때문에 기분이 팍 상했지만, 경찰 권력이 강한 이탈리아에서 행여나 공권력에 대항하는 행동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를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 렌터카 회사 허가증, 보험 증서 등 여러 서류를 30분 가까이 조회 당한 이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코레아는 왜 북쪽과 남한으로 나누어져 있냐’는 질문까지 받아가면서 말이다. 마을에 도착하자 인도에는 물이 찰랑거렸고, 길이 좁아 숙소까지 찾아가는 내내 몇 번이나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숙소에 겨우 짐을 풀고 작은 마을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영화는 대부분 이 마을에서 촬영되었고, 영화관 건물은 세트장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철거되었다. 내부는 마을의 오래된 성당을 빌려 촬영되었다고 한다. 처음 와본 장소가 이토록 익숙하게 느껴진 이유는 영화를 통해 이미 내적 친밀감을 쌓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비가 온 뒤에만 만날 수 있는 주홍빛 하늘, 오래된 마을 분위기는 엔리오 모리꼬네와 더불어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시네마 천국〉을 떠올리게 할 것임이 분명하다. 광장에 앉아 한참 해지는 모습을 바라보자 마음이 누그러졌다. 오후 6시가 되자 벌써 어둑어둑했고, 제대로 점심도 안 먹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깨닫고 동네 피자 가게에서 피자 한 조각을 급하게 씹어 삼켰다. 





다음 날 아침, 마을을 떠나기 전 팔라조 아드리아노 시청 옆에 마련된 작은 박물관으로 향했다. 방명록을 작성하자 안내자는 우리를 비밀스러운 통로로 안내했다. ‘시네마 천국’이라고 쓰인 문을 열고 들어서자 라디오에서는 엔리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실제로 알프레도 할아버지와 토토가 탔던 낡은 자전거와 영사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시네마 천국〉 박물관


그뿐만 아니라 마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장면과 각종 소품 들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그만 울컥하고 뜨거운 것이 솟아올랐다. 안내자분은 마치 ‘그럴 줄 알았다’라는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한동안 감상에 빠질 수 있도록 영화 음악을 연달아 틀어주었다.


〈시네마 천국〉 박물관에서


그녀는 이 지역 토박이로 현재는 시청에서 근무하면서 오전에는 박물관 관리 및 안내를 맡고 있다고 했다. 20대 초반,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어린 토토 역할을 했던 살바토레는 현재 마을에 살고 있지 않지만, 그의 가족들이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어서 자주 나타난다며 가족들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을 알려주기도 했다. 나는 어른이 된 토토가 궁금했고 그의 흔적을 찾고 싶었으나 그는 토토가 아닌 살바토레일 것이다. 내 기억 속의 어린 토토로 남아주기를 바라며 슈퍼마켓은 찾지 않기로 다짐했다. 대신 영화의 장면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그녀가 알려준 촬영 장소들을 두 발로 찾아 걸어 다녔다.



주인공은 없지만 울퉁불퉁한 돌바닥, 거리, 광장, 벽돌집, 성당… 모든 것이 영화 속 모습 그대로였다. 알프레도 할아버지를 닮은 인자한 마을 주민들까지. 팔라조 아드리아노는 〈시네마 천국〉 그 자체였다. 어쩐지 어린 토토와 알프레도 할아버지가 어느 골목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아 떠나는 순간까지 나도 모르게 눈알을 빠르게 굴리고 있었다.





글/사진 김혜지(이태리부부)

파리, 로마를 거쳐 현재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기록하고 콘텐츠를 생산해 내며 삶을 드러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입니다. 유투브 채널 '이태리부부' 운영 중. 『로마로 가는 길』, 『이탈리아에 살고 있습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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