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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Jan 23. 2017

그 바닷가에선 별이 밟혔다

하늘에 꽉 찬 별이 모래밭으로 쏟아졌기에

여행 매거진 BRICKS City - 이시가키 섬, 한번쯤 살아보고 싶어서 #2


 이시가키섬에 도착한 이틀 뒤부터 곧바로 근무가 시작되었다.
 Club Med는 일반 리조트와는 다르게 오락을 포함한 모든 생활을 오롯이 그 안에서 전부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완전한 커뮤니티를 콘셉트로 하는 프랑스계 리조트 체인이다. 실제로 리조트 안에는 넓은 공원부터 아름다운 바다까지 전부 갖추어져, 그 자체로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다. 일하는 직원들도 헬스 트레이너, 바텐더, 댄서에서 네일아트사까지 무척이나 다양하다.

ⓒClubMed / ClubMed Kabira Ishigaki


 인사팀 사무실에 들어가니 이시가키 섬에 도착했을 때 함께 버스에서 내렸던 아저씨가 나와 똑같은 유니폼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같은 레스토랑에서 근무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숙사에서 리조트까지는 스태프들의 근무시간에 맞춰 셔틀버스가 오갔다. 첫 근무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셔틀버스에 오르자 입사동기 아저씨 이외에 다른 파트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보이는 스태프 두세 명이 앉아 있었다. 차 안에서 나눈 짧은 대화로 알 수 있었던 것은, 같은 리조트의 명찰만 달고 있을 뿐, 나이도 성별도 출신도 모두 천차만별이라는 점이었다. 우리는 즉석에서 환영회를 겸한 저녁을 먹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름 맛집으로 소문난 이자카야, 세츠칸치せつか家.
 이곳의 가장 인기 있는 메뉴인 해산물샐러드를 시키자 싱싱한 회가 한 움큼 오른 샐러드가 등장했다. 싱싱한 해산물에 야채, 토마토와 시큼한 소스, 거기에 입 안에서 톡톡 터지는 게 꼭 포도 같다고 해서 이름도 ‘섬 포도’인 이시가키의 명물, 시마부도까지. 이 요리가 고작 600엔이었다.

 맛있는 음식과 오키나와 전통술 아와모리가 목줄기를 타고 넘어갔다. 다들 마음이 편해졌는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꽤 깊은 이야기가 서슴없이 나왔다. 첫날부터 함께했던 입사동기 나오야 상은 히로시마 출신으로, 결혼 적령기를 조금 놓친 38살 아저씨였다.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계속했다면 어느 정도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도시에서 버티지 못해 결국 도피하는 격으로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수중에 남은 돈이 고작 십만 엔이 전부라고.” 우리는 헤어지는 날까지 그를 십만 엔 씨라 불렀다.

 후쿠오카 출신의 미사토 상은 신혼임에도 불구하고, 바다가 좋아서 남편 혼자 도시에 내버려두고 이곳에서 아르바이트와 스쿠버다이빙을 병행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이시가키는 세계적으로도 스쿠버다이버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미사토 상은 전문 스쿠버자격증까지 취득했고, 나는 미사토 상에게 가이드를 받아 스노클링을 즐기기도 했다.




 근무를 시작한 지 몇 주가 지나고, 섬의 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그 존재가 너무 당연한 나머지 항상 가까이 있음에도 무심하게 지나쳐오던 이시가키의 푸르른 바다가 점차 선명하게 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다에 들어갈 때가 온 것이다.

 후쿠오카의 새댁 미사토 상과 대학을 그만두고 나가노에서 날아와 레스토랑 아침조로 함께 근무 중이던 그녀의 여동생 리사와 함께 스노쿨링을 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좀처럼 미사토 상의 쉬는 날이 겹치지 않자, 옆에서 기회를 엿보던 노부지라는 할아버지가 자신의 배를 내어줄테니 같이 가자며 꼬드기는 바람에 결국 넘어가고 말았다.

 노부라는 이름에 할아버지를 뜻하는 일본어 ‘지じ’가 합쳐져, 한국어로 치자면 그냥 노부 할아버지로 불리는 노부지 상은 이시가키에서 태어나 그곳에서만 한 평생을 살아온 이시가키 토박이다. 80이 다 되어가는 나이지만, 오염되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한평생을 보내서인지 이른 새벽부터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뛸 정도로 팔팔했다. 노부지는 본래 바다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은퇴 후 리조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끔 젊은 애들에게 접근해 자기 배로 바다를 안내해주며 약간의 돈을 받는 것으로 부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셋 다 아침조였기 때문에, 근무가 끝나는 세 시에 모여 차를 타고 배가 있는 곳으로 갔다. 준비물은 오리발과 스노클링 마스크, 수영복이 전부. 노부지의 고깃배는 잔잔한 바다에서도 통통거리는 맛이 있는 전형적인 작은 배였다. 이 나이를 먹도록 물에 뜨지를 못하는 나를 배려하여, 그리 멀지 않은 얕은 수심의 바닷가에 배를 대고 스노클링을 시작했다. 입수하기 전 노부지의 유일한 주의사항은, 오니히토데おにひとで, 가시로 뒤덮인 불가사리를 조심할 것.

 한국에서는 오니히토데를 악마불가사리라 부르는데, 이름에 걸맞게 무시무시하게 생긴 생물체다. 이 오니히토데가 최근 이시가키 바다 전역에 확산되고 있으며 몸을 뒤덮은 가시에 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세 번을 강조했으니, 정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의사항을 곱씹으며, 물에 가라않지 않게 노부지의 한쪽 다리를 부여잡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11월 말이라는 계절감이 무색하게 바다는 여전히 따뜻했고, 새삼 이시가키에 살고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막연히 동경해 오던 남태평양의 뜨거운 열대 바다에 옆 동네 마실 가듯 들어가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특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밤송이처럼 길쭉한 가시로 뒤덮인 기괴한 모양의 물체가 바닥에 들러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노부지가 경고한 오니히토데구나. 가시에 몸이 닿지 않으려 조심했으나 수심이 워낙 얕았던 탓에 팔다리를 조금만 저어도 아슬아슬 스칠 것만 같았다. 겨우 하나를 통과하면 곧이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올 정도로 번식력이 대단했다. 수심이 얕다고 무조건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노부지를 따라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단번에 물속 풍경도 바뀌었다. 알록달록한 산호들과 무리지어 헤엄치는 열대어들. 이시가키의 바다는 일본 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산호가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해마다 많은 해양스포츠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명소라고 한다. 매년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위해 작은 섬 안에 다이빙센터가 구멍가게보다도 흔하게 널려 있고,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 이시가키에는 상점이 하나뿐!) 섬 주민들 중에는 자격증을 가지고 프리랜서 가이드로 활동하는 이들도 많았다.

 바 옆자리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아저씨가 알고 보니 프리랜서 다이버일 정도로, 이시가키에는 숙련된 다이버들이 많다. 이시가키 섬에서 다이빙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미리 가이드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 앉아 있는 자리에서 돌아보기만 하면 당신의 가이드가 웃음 짓고 있을 테니까.


 형형색색의 열대어와 산호초에 넋을 놓고 있으니 곧 해가 질 시간이 되었고, 뭍으로 나온 우리는 빙 둘러앉아 해가 진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공기가 맑아서인지 하늘에 작은 별까지도 선명했고, 투명한 검은 바다에 반사되어 위아래가 온통 점점의 별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우리가 앉아 있는 모래바닥 주변까지도 반짝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정체는 야광 플랑크톤이었다. 발로 밟으면 빛이 잠시 꺼졌다 다시 반짝이는 것을 보며, 다들 신이 나서 여기저기 플랑크톤을 밟기 시작했다. 반짝거리는 불빛이 마치 별빛 같았지만 워낙 작아서 발로 밟는다고 죽지는 않는다고 한다.

 도시 생활에 지친 십만엔 씨에게는 마지막 피난처가 되고, 바다를 찾아온 미사토 상에겐 자신이 원하는 속도로 살 수 있게 해 준 이시가키. 노부지 또한 살아온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이 섬의 이야기들이 꿈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말이 될 것 같지 않은 삶이라도, 이 섬에서는 어떻게든 굴러간다. なんくるないさ-1)




편집자 주 1) : “어떻게든 되겠지.”의 오키나와 방언.




글/사진(3~5) 제민

사람들이 태국에서는 태국어로, 일본에서는 일본어로 말을 걸어올 정도로 곧장 현지인들과 위화감 없이 뒤섞이는 둔갑술과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바퀴벌레 같은 적응력을 무기로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현재는 일본 도쿄의 작은 방송제작사에서 일하며 다큐멘터리 피디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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