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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매거진 브릭스 Apr 25. 2017

지금은 잊혀진 왕국에서 온 여인

나야 말로 잊혀진 왕국에서 온 여인일지도 모르겠구나

 미술관 입구에 스쿠터를 세우고 그녀는 저만치 서 있는 반얀나무 둥치에 매달린 향로 앞으로 다가갔다. 스쿠터는 그녀가 스물여덟 되던 해, 당분간 결혼을 단념하며 그간 모아 온 돈을 몽땅 털어 산 빨간색 베스파다. 향에 불을 붙이고 고개를 숙인다. 무엇을 빌었나, 요사이는 별 걱정이 없었는데, 날이 더워지면서 더위를 견디느라 걱정할 겨를도 없어진다. 남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못 구하고 있는 게 마음에 걸린다. ‘그건 우리 집만의 문제는 아니니깐.’ 일자리 문제는 호치민 아저씨가 다시 살아온다 해도 어쩔 수 없을 거다.
 
 그녀가 향을 피우는 건 반얀나무 안에 마을 신령이 산다는 믿음 때문이 아니라 생김새가 너무 무서워서다. 기가 약한 사람들은 다들 나무 멀찌감치 돌아가거나 마주쳐야 할 땐 어쩔 수 없이 향불을 올린다. 아오자이를 입고 향을 피우는 모습이라니, 이렇게나 사진 찍기 좋은 베트남 여인도 없겠군.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다시는 아오자이를 입을 날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의 바람대로 학교 선생님이 되면서 다시 아오자이를 입고 말았다. 요즘에는 멋을 부리고 싶은 젊은이들이 명절에 아오자이를 입고 나와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아오자이는 보통 여고생들의 교복이다. 다 큰 여자가 아오자이를 입고 있으면 다들 은행원이나 선생님이겠거니 한다.

 그녀는 인민 위원회 뒤편 쌀국수 집을 나와 한강변을 달려 학교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점심으로 분 차 카bún chá cá라는 어묵 국수를 사 먹었다. 사이공이나 호치민에서는 주로 면이 얇으면서 가는 퍼phở를 먹지만 다낭에서는 국수가 둥근 분bún을 먹는다. 다낭은 해안지방이라 소고기 육수보다 생선이나 어묵으로 육수를 낸다는 것도 다르다. 국수가 나오고 고추와 고수, 숙주를 잔뜩 넣은 다음 생선 소스인 느억 맘으로 간을 한다. 젓가락을 들자 그제야 배가 고팠다는 걸 안다.
  


 "아득한 옛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 반도에서 말레이 인종들이 배를 타고 다낭과 호이안으로 건너와 참파 왕국을 세웠어요. 인도의 문화를 받아들인 그들은 북쪽의 대월과 천년 동안 전쟁을 치렀지요. 참파 왕 자야 싱하바르만 3세는 싸움을 쉬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월 왕에게 ‘꽝남Quảng Nam, 꽝치Quang Tri, 훼Hue 땅을 넘겨줄 테니 자신에게 여동생을 달라고 했지요. 여러분 중에서도 다낭에서 훼Hue로 넘어가는 해발 500m 구름고개 하이번海雲 패스를 넘어 본 학생들이 많을 거예요. 대월의 공주는 눈물로 그 고개를 넘으며 참파왕의 둘째 부인이 되었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얼마 안 돼 갑작스럽게 남편이 죽고 말았어요. 더 큰 문제는 참파에는 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함께 묵는 풍습이 있었던 거지요. 대월 왕은 급히 사람을 보내 여동생과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조카를 탈출시켰어요. 참파왕국은 군사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어요. 자존심도 그렇지만 영토 문제를 그냥 넘어갈 수 없었지요. 구름고개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참파는 대월에게 패배해 신하국이 되고 말았어요. 많은 참파 사람들이 배를 타고 오래전 조상들이 살았던 말레이 반도로 떠나갔고, 나머지는 최하층민으로 살아가게 됐어요. 이제 다낭에서 이곳에 참파 왕국이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건 거리 곳곳에 핀 참파 나무 꽃밖에 없지요."



 그녀는 국수 값 2만동(1,000원)을 내고 도로 가득 줄지어 선 오토바이 대열에 합류했다. 큰 교차로가 아니면 신호등이 없다. 도로는 어지럽게 엉켜 있지만 사고는 나지 않는다. 한적한 도로에서도 시속 80km를 넘을 수가 없고, 시내에선 빨리 달려봤자 시속 30km다. 그녀는 강변길을 달려 새로 개통한 드래곤브릿지 앞 교차로에 멈춰 선다. 오래 전 코뿔소 뿔과 바다거북, 침향을 싣고 중국과 일본, 멀리 지중해로 떠나가는 배들이 저 강에 정박해 있었다.

 엄마는 처녀 시절 시장에 가면 참파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집 없이 떠도는 참파 사람들이 문 닫은 가게 앞에서 잠을 자다 아침이면 쫓겨나곤 했다. 가끔씩 여긴 원래 우리 땅이었다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판랑 지역에 가면 아직 참파 사람들이 남아 있고 매년 참파 축제도 열리지만, 다낭에선 참파 사람들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 엄마가 기억하는 참파의 여인들은 다들 인물이 좋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깊은 눈, 오뚝한 코, 곱슬머리가 작은 귀고리와 매우 잘 어울렸다. 그녀가 서 있는 교차로 건너편 참파 조각 박물관이 이 도시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잊혀진 왕국의 흔적이다. 학교에서 베트남 역사를 가르치면서도 그녀는 어지간해선 그 박물관에 들어가질 않는다. 너무나 크고 울창한 반얀나무가 뒷마당에 서 있기 때문이다.
  
 오후엔 베트남 마지막 왕조가 프랑스에 주권을 내주는 부분을 가르쳐야 한다. 응우옌元이라는 자신들의 성을 딴 왕조를 스스로 아시아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프랑스로 망명해 편한 여생을 살다간 마지막 왕이 남긴 유산에 대해, 그 유산으로 베트남이 받아야 했던 프랑스와 일본의 지배, 미국과의 전쟁에 대해. 결론은 어떻게 내야 할까. 여러분의 삶을 직접 지배하는 것은 지금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아니라 여러분보다 한 세대 먼저 태어난 사람들이 생각했던 방식이에요. 우리가 밤마다 보는 별빛이 이미 사라진 별에서 보내온 빛인 것처럼, 한 왕조의 선택이 왕조가 사라진 100년 이후의 역사까지 결정짓고 말았던 거지요. 이런 건 어떨까.



 하지만 어쩐지 확신이 안 선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서구의 손을 잡는 도이머이 정책까지 불과 15년. 길에서 장기를 두던 세대가 카드놀이 세대로 변하기까지 10년. 이제 그녀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즐거움은 오직 와이파이를 통해서만 온다. 그리고 참파 왕국. 나라가 사라지고  200년간 줄곧 가난하고 불행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니!

 30도가 넘는 한낮에도 한강 주변엔 항상 선선한 바람이 분다. 그녀 앞으로 커다란 배낭을 맨 한 이국의 남성이 길을 건너고 있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속도를 줄인다. 그가 손에 든 지도를 펼친다. 참파조각박물관이 여기 맞나요? 그녀는 손으로 입구 쪽을 가리킨다. 일본인인가요? 아니요, 한국인이에요. 인사할 때 허리를 많이 숙여서 일본인인 줄 알았어요. 한국인은 보통 고개만 숙이는 줄 알았거든요.

 다낭이라는 이름은 참파 말로 큰 강을 뜻하는 다낙에서 왔다고 한다. 다낭에서 쓰는 말은 베트남 표준어인 하노이 말하고도 다르고, 경제 중심지 호치민의 말과도 다르다. 그녀는 조심스레 그게 참파 말의 영향 때문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다낭 사람들은 다들 참파의 후손일지도 모른다고. 이국에서 온 남성은 반얀나무 그늘에 앉아 정수리까지 가득 차 오른 열기를 식히고 있다. 그녀가 반얀나무에 향불을 올린다. 나야 말로 잊혀진 왕국에서 온 여인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녀는 스쿠터에 올라 마스크를 쓰고 헬멧을 쓴다. 장갑을 끼고 아오자이 자락이 펄럭이지 않게 매무새를 잡은 뒤 시동을 건다. 강변의 한적한 그늘을 따라, 시끄러운 엔진 소리와는 달리 꽤 오랫동안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글/사진 이주호

여행 매거진 브릭스BRICKS의 편집장.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최근에 에세이 <도쿄적 일상>을 냈다.
그의 <도쿄적 일상>이 궁금하다면.
http://www.yes24.com/24/goods/30232759?scode=032&OzSran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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