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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돌레 매거진 Sep 17. 2021

슴덕의 심장을 조종하는 이들 – Kenzie 下上편

SM 음악의 또 다른 정체성, Kenzie의 레드벨벳 작업물 살펴보기

WRITER 뚜뚜

>> <슴덕의 심장을 조종하는 이들 - Kenzie 中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 SM ENTERTAINMENT

 中편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제 Kenzie(이하 ‘켄지’)의 음악은 외국 프로듀서진과의 협업이 주를 이룬다. 작곡 과정에서 누가 비트와 멜로디를 만들었는지는 당사자의 언급이 없는 이상 알 수 없고, 설사 탑 라인(Top line)이 만들어지더라도 완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충분히 수정될 여지가 많다. 그렇기에 켄지가 작곡에 어느 정도 참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신 우리에겐 단독 작곡과 작사곡이 남아 있다. 유래 없이 많은 작업물을 선보이고 있는 켄지의 201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작업물들을 아티스트별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 SM ENTERTAINMENT

 레드벨벳(Red Velvet): SM A&R 시스템의 총아이자 켄지식 걸그룹의 정석

 레드벨벳이 2014년 <행복(Happiness)>로 데뷔한 이래로 켄지는 거의 모든 앨범에 참여했다. 혹자는 에스파(aespa)를 유영진의 걸그룹이라고 부르듯이 레드벨벳을 켄지의 걸그룹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엔 다소 맹점이 있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가장 탄탄한 A&R 시스템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SM이지만, 이는 단기간에 이뤄낸 성과가 아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1세대 대표 걸그룹인 S.E.S.의 정규 2집 [S.E.S. 2] 타이틀곡 <Dreams Come True>까지 언급될 정도로 오랜 세월에 걸쳐 시스템을 다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리고 국내 팬덤에게도 A&R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시점이 2010년대였고, 대표 주자가 바로 레드벨벳이었다. 몇몇 타이틀곡이 멤버들이 데뷔하기 전에 이미 만들어졌다는 증언들처럼 레드벨벳의 음악은 SM이 구축한 세계관 내에서 전 세계의 다양한 프로듀서들이 협력해 만든 곡을 콘셉트에 맞게 선택하고, 꼭 맞는 옷처럼 재단해서 내놓은 결과물이다. 즉, A&R 시스템의 정점에 선 ‘총아’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레드벨벳이 켄지의 걸그룹이라는 표현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현시대가 요구하는 걸그룹의 모습에서 한 발짝 앞서 있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앞선 두 편의 글에서 필자는 켄지가 구사하는 걸그룹이 콘셉트뿐만 아니라 음악 내에서도 주체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보통의 여성 성장 서사에서 나타나는, 사랑을 얻고 싶어 하는 소녀가 아니라 세상을 이끌어가는 트렌드세터(Trend-setter)의 지위로의 변모는 이미 f(x)를 통해 성공시켰다. 그렇다면 레드벨벳으로 보여준 ‘한 발짝 앞선’ 주체의 모습은 무엇일까. 필자는 다음 곡들에서 공식을 찾을 수 있었다.

[THE RED] © SM ENTERTAINMENT

| <Huff n Puff> (2015) – 환상에서 벗어난 정신적 성장

 흔히 켄지가 참여한 레드벨벳의 대표곡으로 <Somethin Kinda Crazy>가 언급되는데, 켄지의 전작에서도 나타나는 우주(ex. 별)에 청자를 비유한 가사들처럼 (멜로디를 제하고) 전반적으로 안전한 선택을 했다. 그렇기에 켄지가 지향하는 ‘서사’를 찾기 위해서는 다음 앨범을 살펴봐야 하는데, 서사는 2015년에 발매된 [The Red]의 수록곡 <Huff n Puff>의 가사에서부터 비로소 빛을 발했다.


 <Huff n Puff>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에 화자를 대입해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의식의 흐름을 표현한 곡이다. 가사를 읽어보면 직속 선배인 f(x)의 향기가 짙게 깔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특히 2011년에 발표된 <지그재그(Zig Zag)>의 화자와 유사하다. 먼저 <Huff n Puff>는 곡 소개와 가사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두 언급하면서 어느 날 신기한 세계에 빠진 화자가 그 속에서 겪는 일들을 묘사했다. 그리고 <지그재그>는 화자가 지향하는 세계가 현실인지 환상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상태에서 모험을 떠나는 모습을 나타냈다. 굳이 시점을 찾자면 ‘꿈을 꾸고 있는지’의 여부겠지만, 두 화자 모두 현실을 벗어나 환상 내지 이상향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소녀들이 흔히 상상하곤 하는 이(利)의 세계를 표현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차이는 결말에 있다. <지그재그> 속 화자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미로 같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 채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것을 암시한다. 반면 <Huff n Puff>의 화자는 도입부의 ‘Knock knock’을 수미상관처럼 결말에서도 반복한다. 이는 ‘이상한 세계’(=이상향)에 들어가는 관문에서 문을 두드렸던 소리를 다시 밖(=현실)으로 나갈 때의 소리와 등치 시킨 것으로, 화자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는 결말로 끝낸다. 정리하면 두 곡 모두 ‘소녀가 꾸는 꿈(=환상=이상향)’이라는 소재를 사용하고 있지만, 영원히 그 세계를 맴도는 화자와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화자로 인해 구별된다.

© Disney

 돌아가지 못할 이상향에 바치는 헌정

 이상적인 삶은 누구나 꿈꾸고, 특히 정신적으로 자라나고 있는 성장기의 소녀는 새롭고 즐거운 일을 끊임없이 상상한다. 망상에서 빠져나오는 행위는 결국 정신적 성장을 뜻한다. 그리고 그러한 정신적 성장을 이룬 사람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여기서 필자는 <피터 팬(Peter Pan)>이 떠올랐는데, 작중 ‘네버랜드(Neverland)’는 어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규칙 하에 어린이들이 모험을 펼치는 장소로 등장한다. 모두가 알 듯 피터 팬은 영원히 아이의 모습으로 남는 결말을 맞이하는데, ‘네버랜드’를 상상의 기제로 설정하면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행위 자체가 정신적 성장을 이뤄낸 셈이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곳으로 다시 가고자 하는 생각 자체가 더 이상 어린 시절의 모습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이다. (멤버 중 웬디라는 이름이 있는 건 우연일까? 거기다 후반부의 ‘Knock knock’ 가사를 전부 웬디가 소화하고 있는 건 정말 우연일까?)


 그러나 화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특히 ‘왜 모두 사라졌어 내 기억들은 그대로인데’라는 가사처럼 화자는 이미 전에도 이 세계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모두가 사라졌다는 표현에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말을 알고 있는 인간은 동심을 찾을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상상이라는 매개체를 활용해 환상(=이상향)에 도달했지만, 더 이상 예전의 마음을 가질 수 없는 인간은 얼마간 상실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좋은 추억이었지’라며 그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고, 삶의 원동력으로 삼기도 한다. 환상이 마냥 헛된 것이 아니라 마음속 어딘가에 계속 살아 숨 쉬면서 새로운 상상을 가능케 하는 힘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렇듯 켄지는 <Huff n Puff>, 한 곡 내에서도 화자의 ‘주체로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보이는 행동이 아닌, 정신적 측면에서의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RBB] © SM ENTERTAINMENT

| <멋있게(Sassy Me)>(2018) – 너도 할 수 있어!

 이후 켄지는 2018년에 발매된 [RBB]의 수록곡 <멋있게(Sassy Me)>로 자기 자신을 향한 굳은 믿음을 보여준다. ‘태양이 눈 뜨면 세상은 내 것’이라는 가사처럼 자신감이 넘치는 화자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자신이 가진 내면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성숙한 인간상을 그려낸다. 여기까지만 보면 약간의 자아도취(?)스러운 인상을 받을 수 있지만, 화자는 ‘멋있게’ 사는 대상을 청자로 반전시킨다. 어떤 상황이나 시도에 주저하고 겁먹은 화자에게 ‘넌 강해’라며 다독여준다. 2절 역시 자신의 신념을 흔들려는 이들에게 참견하지 말라는, 다소 강한 어조의 대사를 뱉으면서 내적으로 단단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 갈래’로 2절을 끝내는데, 14년 전 소녀시대가 (비록 가사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Into The New World’를 외쳤던 모습이 떠오른다. <다시 만난 세계(Into The New World)>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삶 속에서 ‘너’라는 사람을 만나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 용기를 얻은 내용이다. 너(=청자)로 인해 용기를 얻은 ‘다만세’의 화자와 비교하면 <멋있게>의 화자는 ‘다만세’ 속 청자의 포지션을 점한 셈이다. 공교롭게도 두 곡 모두 화자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주체성의 서사가 진일보했음을 알 수 있다.

[Like Water] © SM ENTERTAINMENT

| <Like Water>(2021) – 다독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레드벨벳의 첫 솔로 주자인 웬디의 미니 앨범은 [Like Water]는 진솔함을 테마로 삼았다. 최근 켄지가 참여한 레드벨벳 곡들은 주로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는데, 그런 의미에서 타이틀곡 <Like Water>는 ‘힐링(Healing)’에 주안점을 둔 가사가 눈에 띈다. 이때의 힐링은 말만 번지르르한 오랜 시간 기다려준 팬들에 대한 감사함을 담았기도 하지만, 앞서 세상에 당당한 사람이 되라는 구호가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희망적 메시지로 변화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우리는 쉽게 성취를 논하면서도 그다음에 무엇이 있을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 대해 잘 알고, 내가 하는 일에 확실한 신념을 가지게 된 사람의 다음엔 뭐가 있을까. 웬디는 자신을 물(=water)에 비유하면서 ‘꼭 안아줘 널 다시 일어나게 해’’라며 모두를 감싸고 희망을 줄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났음을 보여준다. 예로부터 물은 근원적 존재로서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루고 있는 요소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 물의 속성을 고려했을 때 화자인 나(=웬디)의 노래를 듣고 있는 어디서나 음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나를 만날 수 있고, 포용력이 높은 물처럼 나 역시 너(=청자)의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다는 걸 이 곡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린 서로 더 채워주고 토닥여’라는 가사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서로를 포용해야 비로소 위안을 얻고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모든 치유의 완성은 연대하는 우리이며, 함께 손잡았을 때 살아가는 의미를 찾고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담아낸 셈이다.


 인간은 누구나 처음을 경험하고,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크고 작은 불안을 경험한다. 마찬가지로 담대한 사람도 도전을 마무리 짓는 과정까지 많이 생각하고 고민한다. 그런 불안을 느낄 때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사실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레드벨벳은 자신의 정신적 성장을 이룬 후 깨달은 바를 세상의 모든 ‘처음을 경험하는’ 존재에게 음악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자신의 성장은 ‘내가 이만큼 컸다’며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친숙한 상황에 은유적으로 빗대고, 타인에게 힘을 주는 건 ‘불 일으켜봐 멋있게’라고 직접적으로 북돋아주는 모습에서 음악으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전달하고자 하는 레드벨벳의 가치관이 엿보인다. 이것이 바로 켄지식 걸그룹, 레드벨벳이 보여주는 현시대의 걸그룹의 이정표다.


>> 下下편으로 이어집니다.


* 본 글은 아이돌레 웹진에 실린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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