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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돌레 매거진 Jan 18. 2024

Gen-Z가 바라본 '윤상'의 음악

WRITER. 네온  


  고백하건대, 나는 윤상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흔히 말하는 Gen-Z 세대인 나에게 윤상은 음악가보다는 MBC 음악 프로그램인 ‘복면가왕’의 패널로 훨씬 익숙하다. 나와 같은 세대인 당신이 만약 음악에 관심이 조금 있다면 윤상을 아이돌 러블리즈(Lovelyz)의 프로듀서로 떠올릴 수도 있겠다. 혹은 윤상을 그저 발라드 가수라고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윤상에게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지만, 최근 윤상이 새롭게 갖게 된 수식어도 있다. ‘앤톤 아빠’, 내지는 ‘국민 시아버님’ 되시겠다. 윤상의 큰아들 이찬영-앤톤이 SM에서 선보인 새로운 남자 아이돌 그룹, 라이즈로 데뷔하면서 윤상은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 라이즈(RIIZE) 앤톤의 아빠로 급부상했다. 앤톤이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윤상과 함께 출연하면서 과거 윤상의 인터뷰나 행적 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까지도 앤톤의 팬덤을 중심으로 요즈음의 Gen-Z세대(이하 '젠지')에게 다시금 알려지고 있다. 앤톤의 팬이고, 젠지이며, 음악을 사랑하는 나 역시 ‘윤상 디깅(Digging)’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디깅 이후 나는 그대로 윤상 음악의 엄청난 팬이 되었다.

출처: tvN <유퀴즈 온 더 블럭> 인스타그램

윤상을 발라드 가수로만 알고 있다면, 꼭 그의 음악을 다양하게 들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윤상은 능숙한 사운드 메이커다. 그는 여러 디지털 사운드와 신시사이저, 각종 가상 악기를 통해 정교하게 조각하고 쌓아올린다. 카세트테이프를 감는 소리 등 여러 효과음을 통해 사운드에 이미지를 더하고, 컴퓨터를 통해 그가 상상하는 소리를 완벽하게 구현한다. 윤상은 리얼 세션-즉 직접 악기 연주를 하고 이를 녹음하여 음악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1집에서부터 거의 대부분 그는 컴퓨터로 다룰 수 있는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서 전자 악기, 가상 악기를 프로그래밍하는 행위인 ‘시퀀싱’을 통해 음악을 만들었다. 전자 음악이 그리 자주 쓰이지 않았던 시대에 전자 음악은 ‘진짜 악기’가 아니라고 여겨졌기에 종종 배척당했고, 윤상의 전자 음악 역시 초기에는 대중적이지 않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2024년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기술도 발전했고, 사운드 역시 발전했다. 이제 다양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신시사이저나 미디와 같은 전자 악기는 대중적인 정도를 넘어서 거의 필수적이고, 특히 K-POP에서 두드러진다. ‘젠지’의 귀는 이미 신스와 전자 음악에 길들여져 있다. 각종 샘플링과 실제 악기로는 도저히 구현할 수 없을 사운드, 휘몰아치는 전자음에는 누구보다 익숙하다. 오히려 발라드가 어색하게 들릴 정도다.

출처: 벅스(Bugs!)

그런 젠지에게 윤상의 음악은 새롭게 다가온다. 과거에 그의 음악이 새롭고 실험적으로 들렸던 이유가 생소했던 전자 음악을 사용했기 때문이라면, 지금의 젠지에게 윤상의 음악이 새로운 이유는 그의 음악에 익숙한 전자 음악 위에 윤상만이 가지고 있는 쓸쓸하고 아련한 ‘발라드’ 감성이 입혀져 있기 때문이다. 2000년 6월 11일에 발매된 윤상 3집 <CLICHÈ> 에 수록된 <Back To The Real Life (Remix)>를 들어보자. 물론 앨범에는 <Back To The Real Life>가 따로 있지만, 꼭 리믹스 버전을 들어볼 것을 추천한다. 발라드 감성만 생각한 채로 <Back To The Real Life (Remix)> 를 듣는다면 시작부터 몰아치는 비트의 향연에 놀랄 수 밖에 없다. 특히, 리믹스 버전은 <Back To The Real Life>과 다른 도입으로 곡을 시작한다. 수화기를 들고, 전화번호를 누르고, 수신음이 전파를 탄다. 비슷하게 들리지만 노이즈가 더욱 부각되고, 반대편에서 전화를 받는 듯한 ‘달칵’ 소리가 들리면서 화려한 비트가 시작을 알린다. 24년 전에 나온 음악의 비트가 이렇게 화려하다고? 하며 놀랄 틈도 없이 이윽고 윤상의 보컬이 깔린다. 바로 이 보컬 때문에 윤상의 음악은 이제 와서 그의 음악을 감상하는 젠지에게 새롭다.

윤상의 <CLICHÈ> 는 일렉트로니카 장르와 윤상이 욕심 냈던 월드 뮤직을 적절히 섞은 앨범으로 호평을 받았다. 직전 앨범인 <Insensible>에서 그는 사운드 메이킹의 정점을 찍었고, 이미 다양한 월드 뮤직의 감성을 시도했던 그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중음악의 스펙트럼은 점점 넓어졌고, 아티스트들은 여러 장르를 일렉트로니카 음악과 혼합하여 다양한 K-POP을 만들어냈다. 이미 수많은 사운드에 익숙하고, 각종 ‘마라맛’ K-POP을 듣는 젠지 세대에게 화려한 비트는 일상이지만, 윤상의 서늘하고 깊은 감성의 보컬은 그렇지 않다. 한국어로만 이루어진 서정적인 가사 역시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 토종 한국인 가수가 불렀는데도 가사가 죄다 영어인 K-POP 음악이 늘어나고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요즘 음악’에서 영어 가사는 당연하다. 하지만, ‘새빨간 거짓말’, ‘녀석들의 가짜 사랑’ 등 최근에 들어본 적 없을 표현들로 가득한 음악은 새롭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현대의 대중음악에서 잘 찾아보기 어려운 톤의 서정적인 가사와 윤상만이 표현할 수 있는 쓸쓸하고 어딘가 차가운 보컬, 그리고 익숙한 전자 음악과 사운드가 한데 모였기 때문에 윤상의 음악은 2024년에 들어도 트렌디하지만 또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출처: 기어라운지 [GL Interview] 뮤지션이 존경하는 뮤지션, 윤상의 이야기

윤상이 현업 음악인으로 종사하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후인 2009년에 발매한 6집 <그땐 몰랐던 일들>을 끝으로 오롯한 그의 이름만이 붙은 앨범(그러니까 7집)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그는 꾸준히 음악을 만들었다. 러블리즈의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시기의 작업물 뿐만 아니라, ‘1Piece’의 이름을 달고 2015년에 발매한 싱글 <Let’s Get It (Feat. Dok2)>는 당시 가장 유명한 래퍼 중 하나였던 Dok2의 래핑을 통해 확실한 ‘EDM’ 장르를 선보였다. 윤상이 정교하게 프로그래밍한 소리로 이루어진 <Let’s Get It (Feat. Dok2)>홍대 클럽에 틀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세련된 EDM 음악이다. 또한, 그가 2021년 11월에 팀 ‘1Piece’에서 발매한 싱글 <God Be with Us>의 장르는 완벽한 힙합이다. 윤상의 스펙트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023년(무려 작년이다!) 3월 9일에 발매된 앨범으로, 윤상과 이준오가 결성한 팀 노이스(Nohys)의 정규 1집 <ethic>은 여전히 정교하고 디테일한 윤상의 전자 음악인 내지는 사운드 메이커의 면모를 체감할 수 있는 음악들로 가득하다. 이준오와 윤상이 만들어내는 매력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듣고 있으면 절로 윤상의 사운드 메이커적인 면모에 감탄하게 된다. 젠지의 우리들이 그를 단순히 ‘옛날 발라드 가수’로만 알고 있기는 아깝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유튜브채널

 1 17일에 방영된 < 퀴즈   블럭> 라이즈와 함께 윤상이 출연하면서 윤상은 젠지들 사이에서 새로운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과거에 그가 나눴던 이야기와 인터뷰  아들에 대한 언급들이 재조명되고당시 여섯 살이던 아들-앤톤의 보컬로 선보였던 <그땐 몰랐던 일들 (아이들)>  다시 듣는다. < 퀴즈   블럭에서 앤톤은 윤상의 <그땐 몰랐던 일들> ‘라이즈 앤톤 되어 다시 불렀다. 젠지에게 윤상의 시간선은 꽤나 멀게 느껴지겠지만, ‘라이즈 앤톤의 아버지’, ‘복면가왕 패널만이 아닌 윤상이라는 뮤지션  자체와 그의 음악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 본 글은 아이돌레 웹진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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