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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스하이의 반대편에서

러너스하이(Runner’s High): 고통을 뚫고 달릴 때 오는 황홀한

by Defin

도망도 러닝이다.


나는 도망칠 때 달리지 않았다. 그저 슬로우 러닝을 하듯 버텼다. 간을 보며 비켜 섰고, 너무 앞서 달리면 숨이 차서 잠시 멈췄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피해 다녔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모든 움직임이 나를 앞으로 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내 등을 살짝 떠민 것처럼, 나는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도망이 도전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 러너스하이라는 말을 했다. 고통을 뚫고 달릴 때 오는 황홀, 끝까지 달린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경지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나는 그런 황홀을 모른다. 고통을 이겨내기보다 피해 다니는 쪽에 가까웠으니까. 그렇다면 나 같은 사람은 평생 그 경지와는 무관한 걸까.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 역시 멈추진 않았다. 다만 전력질주 대신 숨을 고르며 걸었을 뿐이다. 누군가는 끝을 향해 달렸고, 나는 끝이 무서울 때마다 몸을 틀었다.


내 인생엔 근사한 장면이 없었다. 누군가의 하이라이트처럼 반짝이는 순간은 없었고, 대신 진창 같은 밤이 많았다. 승리보다 회피가, 성취보다 후회가 더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들이 나를 조금씩 키워왔다. 애써 버텼던 밤들이 내 안에 근육처럼 남았다. 버틴다는 건 그렇게 잔근육이 자라나는 일이다.


미대 입시에서 물러났고, 주방으로 들어가며 세상과 타협했다. 불안해서 유학을 택했고, 피곤해서 대학원으로 숨어들었다. 그 시절의 나는 늘 이유를 만들며 자리를 옮겼다. 도망이라는 단어 대신 ‘성장’, ‘전환’, ‘선택’ 같은 단어로 나를 포장했다. 하지만 그건 의지보다는 본능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몸이 먼저 반응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칸씩 비켜나면서도, 나는 오히려 세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와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성장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끈기라 했다. 어쩌다 보니 ‘브랜딩이 잘 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도전적이에요.” “새로운 일에 늘 도전하는 모습 멋있어요!” 그 말이 들릴 때마다 어딘가 어색했다. 나는 그저 도망치기위해 버티고 있었을 뿐인데, 세상은 그걸 도전이라 불렀다. 도망인데, 도전이라니.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났다. 웃음 뒤에는 민망한 부끄러움이 따라왔다. ‘사실은 도망쳤어요.’라고 말할 용기조차 없었다.


늘 멋있게 살고싶었다. 솔직히는, 고생하지 않고 멋있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노력과 죽을똥 말똥하며 갈아넣지않으면서 멋있는건 사기치는 것 뿐이었다. 그걸 자각하기까지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너무 크기에 살고 싶지 않았던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죽을 용기도 없었다. 죽지못하면 살아는가야했으니 조금씩 비켜가며 살았다. 살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회피가, 결국 나를 살려냈다. 버티며 피해 다니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도망자였으나 세상이 보기엔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죽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의 끝이 너무 버거워서, 잠들기 전에 사라지고 싶다고 중얼대던 때. 하지만 막상 죽으려 하면 무서웠다. 죽는 일도 체력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서 또 물러섰다. 죽을 수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은 결국 ‘비켜가며 버티는 사람’이 된다. 이상하게, 그 비켜감이 나를 살렸다.

살기 위한 기술이 쌓였다. 피하면서도 일했고, 피해 있으면서도 사랑했고, 두려움을 품은 채 스스로를 꾸몄다. 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두며, 내가 견딜 수 있는 만큼만 참여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넘기다 보니, 어느새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여전히 살아 있는 나로. 누군가의 목표를 향해 달리지 않아도, 그저 버텨도 시간은 나를 데리고 앞으로 갔다.


이제는 안다. 도망이 나를 구했다는 걸. 도망은 나약함이 아니라 생존의 다른 형태였다. 남들은 고통을 뚫고 달렸지만, 나는 고통을 피하며 버텼다. 그게 나의 러너스하이였다. 고통을 견딘 끝의 황홀은 없었지만, 고통을 피한 끝의 생존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덜 흔들리고 덜 부대끼며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가, 지금의 나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


이제는 멋진 목표도, 대단한 의지도 없다. 도망으로 점칠된 발자취가 도전이라는 키워드로 나라는 사람에게 자리잡았다. 도망인데, 브랜딩이 잘 됐다. 이 문장은 나의 자조이자 고백이다. 피하고, 돌고, 버티며 살아남은 시간들이 결국 나를 만든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살아남았다는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 나는 오늘도 도망의 러너스하이를 이어가며, 내 속도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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