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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이라고 느낄 때는 이미 도망친 후다

by Defin

도망은 무조건반사신경이다. 도망은 생각이 따라오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 그때마다 나는 내 선택을 합리화했다. “이게 더 나은 길일 거야.”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건 변화야.”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늘 버티기 위한 반사신경이었다. 나는 언제나 조금 늦게 깨달았다. ‘아, 또 도망쳤구나’ 하는 순간을.


공부가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공부를 못하는 내가 싫었다. 집 안의 공기는 늘 성적표의 숫자에 따라 바뀌었다. 성적표에 적힌 내 이름은 1등이나 2등이 아니면 창피한 존재였고 집안의 불화를 불러오는 착화제 같은 것이었다. "괜찮다, 다음에 잘하자, 잘하고있다, 더 노력하면~" 등에 말을 한 번도 듣고 자라지 못한 나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이렇게 서늘한 일이라는 건, 거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도망쳤다. 가장 나를 ‘틀릴 수 있게’ 해줄 것 같은 곳으로. 그게 미술이었다.


미술은 처음엔 숨 쉴 구멍 같았다. 공부처럼 정답이 없다는 게 좋았다. 틀려도 된다는 말이 위로였다. 하지만 금세 그 안에서도 서열이 있었고, 경쟁이 있었다. 예고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나는 다시 그 익숙한 긴장 속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리고. 열심히 하면 붙을 거라는 믿음보다, 떨어지면 끝이라는 두려움이 더 컸다. 결국 예고도, 미대도 나는 떨어졌다. 그 한 번의 실패로 내 인생 전체가 실패한 것처럼 느껴졌다. 재수를 하자니 두려웠고, 다시 또 그 경쟁으로 들어가 입시를 시작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또 피했다.


그때 내가 택한 게 요리였다. 사실 새로운 꿈이 아니었다. 미술을 포기한 손으로 다른 무언가를 붙잡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래도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낯설지 않았다. “예술이 아니면 어때, 만드는 건 같잖아.” 그게 나름의 자기위안이었다. 그렇게 전문학교, 즉 학점은행제 학교에 4년제로 식품조리학과에 들어갔다. 처음엔 자신이 없었고 무서웠지만 손으로 만든단느 건 흥미로웠다. 칼을 다루는 법, 소스를 만드는 법, 주방의 질서와 리듬. 하지만 곧 알았다. 그곳도 결국 또 다른 생존의 현장이었다. 요리는 멋있어보이지만, 그 속의 질서는 군대 같았다. 점점 불 앞에 서면 내 감정은 사라졌고, 손은 빨라졌지만 마음은 점점 둔해졌다.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들 때마다 공포가 밀려왔다.


그럼에도 나는 버텼다. 호텔에 들어가고, 주방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채웠다. 집에서는 유학 이야기가 나왔다. “너 유학가야지. 젊을 때 다녀와” 그 말은 ‘도전'이라는 뜻이었겠지만 내게는 ‘도피’로 들렸다. 어쩌면 새로운 대륙으로 가면, 내 안의 불안도 바뀔 줄 알았다.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명분을 만들었다. ‘학벌 세탁’이라는 말이 나를 찔렀지만, 속으론 이미 그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코로나가 터졌다. 세상이 멈췄고, 나의 도피로도 막을 수 없는 정적이 찾아왔다.


비행기표도 취소되고, 계획이 무너졌다. 처음으로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도망칠 곳이 사라지자, 나는 처음으로 멈춰 섰다. 그 멈춤이 너무 낯설었다. 처음엔 불안했고, 곧 허무해졌다. “나는 도대체 뭘 그렇게 피해 다녔을까.” 답을 몰랐다. 그래서 또 하나의 합리화를 찾았다. 공부를 하면 괜찮아질 거야. 대학원은 내게 늘 완벽한 핑계였다. 공부는 도망보다 고상했고, 사회는 ‘배움’이라는 이름에 관대했다. 그렇게 또다시 숨어들었다. 이번엔 조금 더 정제된 방식으로. 도망의 이름을 ‘탐구’로 바꿔서.


대학원에서의 나는 늘 바빴다. 조교로, 프리랜서로, 알바로. 멈추면 생각이 날까 봐 계속 움직였다. 사람들은 “정말 부지런하다”고 말했다. 요리하던 시절의 친구들, 지인들은 "넌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거 같아서 멋있어." 라고 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저 도망치고 있었을 뿐이었다. 도망마저 멈추는 게 무서웠다. 멈추면 ‘이게 진짜 내가 원한 삶일까’라는 질문이 들 것 같아서. '이렇게 도망쳐놓고 이 것조차 해내지 못하면?'라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쓸모없는 것" 이었다. "쓸모"라는 단어 앞에서 나는 늘 약했다. 그래서 다시 움직였다. 바쁨은 나의 위장술이었다. 일의 가면을 쓰면 아무도 내게 비난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나는 늘 ‘다음’을 준비하며 살았다. 다음 학교, 다음 일, 다음 공간. 이유는 늘 나중에 찾아왔다. 그때는 그저 하기싫은걸 하지 않으려고, 자신없는걸 들키지 않기 위해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늘 도망치고 있었다는 걸.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도망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건 실패의 기록보다는 생존의 궤적이었다.


이제는 생각한다. 피하는 것도 방향이라고. 다만 그때는 몰랐다. 그게 나를 조금씩 앞으로 밀고 있었다는 걸. 도망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부끄럽지만, 그 부끄러움이 나를 인간답게 만들었다.


만약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어디론가 숨고 싶다면,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피하는 건 약한 게 아니다. 그냥 살아 있는 증거다.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유일한 생존일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남았다. 도망이라고 느낄 때는 이미 도망친 후였고, 그 덕분에 나는 보다 더 건강하게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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