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매직캣 Oct 18. 2019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feat. 씽큐ON)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어떤 거예요?



우리는 영화를 좋아한다. 대부분의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주인공이 왕이 되고 싶어 하면 왕이 되고, 성공을 원하면 끝내 성공한다. 그들은 반자아에 매몰되지 않고, 최고의 자아와 하나 되어 결국에 성과를 이룬다. 영화를 보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영화 중에 글쓴이는 뮤지컬 영화를 남달리 좋아한다. 인상 깊게 봤던 영화를 꼽으라면 <위대한 쇼맨>, <라라랜드>, <물랑 루즈>, <스텝 업>이 있다. 영상과 음악이 조화를 이루는 장면은 몇 번이고 돌려본다. 대략 100분 정도가 되는 영화의 특성상 많은 스토리를 넣기 힘들다. 갈등이 고조되는 씬, 주인공이 행복한 씬, 남녀가 말다툼을 하는 씬에서 대사와 달리 노래는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노래는 대사보다 함축적이다. 대사 위에 멜로디를 얹으면 주인공의 말이 가슴으로 와닿는다.


글쓴이에게 언제부터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그 시작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었다. 어린 시절, 매주 일요일은 누가 깨우지 않아도 빨리 일어났다. 주중에는 그렇게도 침대에서 벗어나는 것이 힘들었는데, 일요일은 예외였다. 항상 그 시간에 시작하는 만화 영화 덕분이었다. 비디오나 IPTV가 없던 시절 항상 본방을 봐야 했다. 다이얼을 돌리는 배불뚝이 아날로그 TV에서 펼쳐지는 만화는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였다.


1993년, 점점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원로 격인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의 후속타로 <알라딘>이 개봉했다. 3개의 애니메이션 중, 가장 좋아하는 만화는 <알라딘>이었다. 공주의 이야기 보다 거름뱅이가 성공(?) 하는 스토리여서가 아니다. <알라딘>에 나오는 'A Whole New World'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글쓴이에게는 지난 <겨울왕국>에서 유행했던 'Let it Go'의 열기보다 훨씬 뜨거웠다.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이 부르는 그 노래를 듣자마자 가슴에 깊이 박혔다. 무슨 뜻인지도 모를 노래를 영어도 아닌, 한국어도 아닌 발음으로 불렀다. 시간이 날 때마다 돌려봤고, 대부분의 스토리를 외웠다. 성인이 된 이후 <알라딘>의 실사 영화가 나오자마자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주인공이 'A Whole New World'를 부르는 장면에서 가슴 깊숙이 어린 시절이 올라왔다. 그 시절 봤던 애니메이션과 영화가 오버랩 되었다. 그리고 눈물이 흘렀다. 어린 시절 연민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때까지는 어린 시절 열광했던 '애니메이션'이 '실사영화'로 나온 반가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다시금 <알라딘> 애니메이션을 찾아봤다. 뭔가 시시한 기분에 밋밋한 느낌마저 들었다. 착하지만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고, 언젠간 궁전에 살게 될 거라는 허황된 꿈을 꿨던 '알라딘', 짓누르던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어 가출을 했던 '제스민 공주', 왕이라는 높은 자리에서 생각 없이 참모 말만 따랐던 '술탄', 악당의 동기가 불분명했던 '자파'. 애니메이션 <알라딘>은 어린아이들의 시선에서 잘 만들어졌다. 인간의 감정은 표현되지만 최대한 단순하게 표현되었다. 많은 감정을 느끼기 힘든 아이들에게는 아주 좋은 만화 영화다. 그래서인지 이미 커 버린 나에게 애니메이션 <알라딘>이 주는 큰 감흥은 없었다. 


영화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영화를 보는 내내 애매해진다. 영화 <알라딘>에서는 모든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쉰다. 캐릭터가 입체적이고, 개개인의 가치관을 뚜렷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알라딘이 아그라바 왕국에 '알리 왕자'의 모습으로 입성할 때 애니메이션과 영화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흰 치아를 내보이며 풍채를 크게 보이기 위해 팔짱을 낀 반면 영화에서는 어색한 미소로 어깨를 축 늘어뜨린 모습으로 등장한다. 아무리 겉모습은 왕자로 변했지만, '누가 자신을 알아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는 표정이다. 억지로 웃는 표정이 점차 자신을 환대하는 사람들의 환호성에 점점 자신감을 찾는다. 노래가 끝날 즈음에 이미 당당한 모습이다.



'최고의 자아'와 '반자아'를 떠올리면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알 수 있다. 만약 마이크 베이어(베스트 셀프 저자)가 알라딘과 쟈스민 공주를 만나 '최고의 자아'와 '반자아'를 그려보라고 했으면 어떻게 그렸을까? '알라딘'은 최고의 자아로 '알리 왕자'를 그렸을 것이다. '쟈스민 공주'의 최고의 자아로 그녀가 키우는 호랑이 '라쟈'를 그리지 않았을까? '알라딘'의 반자아는 'One Jump Ahead'라는 곡을 통해서, '쟈스민 공주'의 반자아 'Speechless'라는 곡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최고의 자아는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진정하고 진실한 자아를 뜻한다. 이는 자신의 존재의 핵심을 대표적으로 표현하는 형태다.1) 반자아는 부정적인 감정과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최고의 자아로 다가가지 못하는 방해꾼이며,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하게 하는 파괴자다.2) '최고의 자아'와 '반자아'를 구체화하지 않으면 선명한 도움을 구할 수 없다.


알라딘이 아그라바 왕국에 입성할 때 등장하는 '프린스 알리(Prince Ali)'를 보면 알라딘의 최고의 자아를 엿볼 수 있다. 알라딘의 최고의 자아 '알리 왕자'는 관대하고 전능하며, 장정 10명과 맞먹는 힘의 장사다. 황금 낙타를 여러 개 소유할 정도로 부자다. 동물원을 꾸며도 될 정도의 화려한 공작새와 다채로운 동물을 키운다. 약탈자를 상대할 정도로 용감하며, 100명의 악당과도 칼싸움을 할 정도로 용맹스럽다. 반면 알라딘의 반자아는 '인간의 시선을 뒤로 한 채 쓰레기를 뒤지고 있는 쥐'로 그렸을 것이다. 반자아는 알라딘에게 '알리 왕자'로 남으라고 속삭였다. 진실을 이야기하지 말고, 손해 보는 사람이 없으니 이대로 숨기고 있으면 쟈스민 공주와 결혼할 수 있다고 구슬렸다. 며칠간 왕자로 지낸 시절이 호화로워서 포기하지 말라고 부추겼다. 


(좌) 알라딘의 최고의 자아 │ (우) 알라딘의 반자아


쟈스민 공주의 최고의 자아는 "왕족은 백성이 행복한 만큼 행복할 수 있다"는 엄마의 말을 따라 백성들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전통에 순응하지 않고, 운명에 순명하지 않는다. 아무리 법과 규칙이 족쇄처럼 옭아매어도 올바른 목소리를 낸다. 태풍에 쓰러져도 태연하게 일어나서 절대 침묵하지 않는다. 반면 쟈스민 공주의 반자아는 '새장에 갇혀 지지배배 구슬프게 노래 부르는 종달새'로 그리지 않았을까? 공주의 반자아는 아버지에게 거역하지 말고,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살라고 속삭였을 것이다. 자파가 공주에게 했던 말처럼, 편하게 사는 방식을 선택하라고 유혹했을 것이다.


(좌) 쟈스민의 최고의 자아 │ (우) 쟈스민의 반자아


<알라딘>의 캐릭터는 이렇게 최고의 자아와 반자아 특성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몰입감이 있다. 스크린에서 튀어나와 옆에서 숨 쉬는 사람 마냥 입체적으로 그렸다. 알라딘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해서라도 왕자 놀이를 계속하고 싶어 했다. 결국 두려움에 맞서 돌아왔지만, 자파에 의해 머나먼 추운 나라로 추방 당한다. 쟈스민은 자파에게 왕국을 뺏기고, 병사들에게 끌려 왕국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였다. 만약 이들이 반자아를 인정하고 최고의 자아를 묻어 버렸다면, 왕국은 자파의 손에 들어갔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상황과 자아를 인정하고 수긍했다. 반자아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내가 전부 망쳤어.
돌아가서 바로잡고야 말겠어.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추방당한 알라딘이 돌아갈 때 이렇게 말했다. 알라딘은 내면세계에서 최고의 자아와 함께했다. 최고의 자아 '알리 왕자'는 약탈자를 상대할 정도로 용감하며, 100명의 악당이 있더라도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자파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흑마법사라고 해도, 설령 승률이 없다고 할지라도 아그라바로 돌아갔다. 쟈스민 공주는 병사들에게 끌려 나가면서 최고의 자아와 함께 했다. Speechless(스피치리스)를 부르는 장면을 보면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병사, 솔튼(아빠), 자파가 아련하게 사라지는 영상 효과를 사용한다. 자신의 모습에 최고의 자아를 투영하여 족쇄를 끊어버린다. 최고의 자아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고 싶다면 쟈스민 공주가 하킴(장군)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두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믿음을 통해 온전히 극복한다. 최고의 자아가 반자아를 처리하는 순간이다.




인간은 변할 수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사람은 변화를 위한 최고의 자아와 반자아를 마주 보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실 최고의 자아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동안 꿈꾸는 모습을 그려보면 되기 때문이다. 반자아를 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의 끝을 들여다보는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절대 자기 자신을 속이면 안 된다. 자신과 타협하고 농락하며 반자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변화는 없다. 변화를 원한다면 자신에게 솔직해야 하고 정직해야 한다.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포용해야 한다. 어떤 일을 시도하기 전, 두려움에 사로잡혀 시도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일단 시도하면 문제가 스스로 해결되는 현상을 겪어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두려움은 과거의 경험이 무의식에 존재해서 생길 수도 있고, 익숙하지 않은 문제를 직면했을 때 본능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의 양창순 작가는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라 했다. 사랑이 끝나고 집착을 하는 사람은 과거의 관계가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관계 자체가 변했지만 그걸 받아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이 집착의 형태로 들어난다.3) 알라딘과 쟈스민 처럼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변화를 인정하고 자신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 숨 쉬는 한, 희망이 있다.


두려움이 문을 두드렸다.
믿음이 대답하며 문을 열었더니,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출처 : 매직캣 커뮤니케이션 공식 블로그(https://blog.naver.com/magicatcommunication)>




※ 참고문헌 ※

  1) 마이크 베이어 저, 강주헌 역, <베스트 셀프>, 안드로메디안, 2019, p.44

  2) 마이크 베이어 저, 강주헌 역, <베스트 셀프>, 안드로메디안, 2019, p.73

  3) 양창순,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다산북스, 2016

매직캣 소속매직캣커뮤니케이션 직업기획자
구독자 150
매거진의 이전글 독창적인 아이로 키울 수 있는 핵심 비법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