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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Jan 07. 2022

나의 '디즈니 상태'는,

디즈니 LAUNCHPAD presents <성장하는 송곳니>를 보고

이번에 본 영상은 쇼트 필름 컬렉션이다. 20여분 되는 길이이며, 실제로 사람들이 등장하여 연기한다. 영상 속 이야기는 하나의 짧은 ‘장면' 수준이 아니라 기승전결을 담고 있다.



주인공은 반 뱀파이어 + 반 사람이다. 인간이 다니는 학교에서 뱀파이어가 다니는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보지 못한' 뱀파이어들을 만난다. 의도치 않았지만, 그 뱀파이어들이 ‘사람들을 싫어하는 광경'을 본 나머지 주인공은 너무나 속상해한다. 그 역시 반 사람으로서, 인간 신분의 친구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 마녀인 이슬람의 fabulous 한 약사를 만나 잠시 자신의 슬픔을 잊는다.

스스로 굉장하다고 말하는 이가 너무나 멋졌다

그러다 인간 친구가 뱀파이어 학교 공간으로 넘어오고, 뱀파이어들은 인간을 공격하려 한다. 자기 자신의 신분을 인간 친구 앞에서 드러낸 주인공은, 이내 반 늑대인간 반 뱀파이어인 다른 친구까지 사귀게 된다. 결국 혼란스러운 신분을 가진 세 친구는 주인공 집에서 각자의 스타일대로 식사를 하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묘사하고 있는 디즈니의 영상을 보면 볼수록, 나의 미래도 저렇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나의 미래에 도달하지 못했던 10대에는, ‘그럴 수 있다'라는 가능성이 더 많았는데, 실제 그래야 했던 나이를 다 지나고 나서 보니 디즈니의 이야기는 ‘디즈니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이야기였기 때문에 가능했고, 누군가가 써주고, 편집해주는 것들이기에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즈니의 영상들을 자꾸 찾는 이유는, 저 ‘이상적인 인간관계'가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즈니에서 보여주는 ‘이상향'을 잘 따라가다 보면, 결국 ‘마음이 편안해지는 방법'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의 부모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모두 말이다. 그 ‘이상적인 관계'를 ‘디즈니 상태'라고 이름 붙여보자.


이번 영상에서 보여주는 디즈니 상태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주인공은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표현할 수 있다. 자신이 상대방과 다르고,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이들과 다르지겠지만 디즈니는 ‘얼마나 많은 주변인들과 내가 다른가?’라는 등의 정량적인 값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는 오로지 혼자이기에, 내가 접할 수 있는 상대방 1명과의 관계를 위주로 보여준다. 주인공은 두 명의 ‘혼잡한 정체성’을 가진 친구와 디즈니 상태를 맞는다. 그들은 먹는 방식도 다르고, 피해야 할 음식도 다르다. 마늘을 피해야 하는 존재가 있는가 한 편, 오히려 마늘을 즐겨먹는 존재도 있다.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음식'부터 다른 그들이지만, 그런 차이점은 그들에게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다 같이 앉아 있을 수 있는 긴 식탁만 하나 있다면, 그들은 얼마든지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숨기지 않는다.


디즈니는 대부분 어린 시절,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그대로 드러내도 될 만한 시점을 보여준다. 만약 그런 순간을 벗어난 존재인 ‘어른들'도 디즈니 상태가 될 수 있을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면서도 주변 인들과 친하게 지내는 그런 관계를 맺는 순간 말이다. 어른 역시 자신의 힘으로 만나는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라면 디즈니 상태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디즈니 상태'를 유지하는 시간이 좀 짧아질 것이다. ‘디즈니 상태'를 얼마나 길게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는가에 따라, 어른과 어린이를 구분할 수도 있겠다.


나의 ‘디즈니 상태'를 되돌아본다. 나는 오늘 얼마나 디즈니 상태 속에 있었나? 나는 어른인가 어린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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