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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태 Jun 28. 2022

롭 라이너의 <스탠 바이 미>

결국 우리는 무엇이 될까에 관하여.

그 시절


그 시절,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작전을 짜던 때

<스탠 바이 미 (1986)>는 미국의 유명 작가 스티븐 킹의 단편 소설 <시체 (1982)>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감독 롭 라이너는 그의 또 다른 작품인 <플립 (2010)>에서도 보여주듯, 우리 모두 지나온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모습을 이 영화에서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지금의 우리를 만든 그때 그 시절들. 잊고 살지만 문득 떠올려보면 대다수의 현재가 뿌리를 두고 있는 그때는 우리 각자를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순간들이었다.


각자의 사정이 한데 모아져


고디 라첸스, 크리스 챔버스, 테디 두챔프, 번 테시오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지만 유독 어린 시절은 가정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인들만의 능력을 쌓고, 여러 지식과 기술을 익히면서 삶의 방향을 정해갈 수 있는 성인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아직 이 세상에 온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돌봐주는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아버지, 어머니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여 따라 하기도 하며, 몇 번 겪어보지 않은 일도 그들 경험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어른들을 보고 이 네 명의 꼬마들이 담배를 피우며 카드놀이를 하면서 음담패설을 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개척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했다. 이들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시체를 찾으러 떠나는 모험을 한다. 그리고 이때의 여행은 성인이 된 고디 라첸스가 오랜만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주된 기억과 추억이 된다.


내 어깨를 펴줄 수 있는 사람


기찻길을 따라 걷던 여정

누구는 자신보다 우월하다는 평을 받던 형의 그늘에 가려져 움츠려 들곤 했다. 누구는 이젠 정신병에 걸려 어두운 나날들을 보내는 퇴역군인 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며 살아간다. 또 다른 누구는 매일을 술에 취해 사는 아버지의 폭력으로 힘겨워하기도 하며, 누구는 건달 짓을 일삼는 형 때문에 마을에서 멸시를 당하기도 한다. 분명 밝은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아니지만, 그건 그들을 형성하는 전부가 아니었다. 집에서는 매일 맞기만 하던 번 테시오이지만, 자신은 머리가 짧아 안 쓰더라도 다른 머리가 긴 친구들이 쓰라며 셔츠 주머니에 빗을 챙겨 나온 그가 아니었는가.


크리스는 고디에게 너는 너희 아버지와는 다르게 매일 글을 쓰며 살아가는 작가가 될 거라고 말해준다. 죽은 형만 생각하며 고디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는 부모를 탓하며 한껏 움츠린 어깨를 친구 크리스가 펴게 만든다. 부모가 지금처럼 돌보지 않으면 자신이라도 돌봐주겠노라고 말하며 말이다. 기찻길을 하염없이 걷던 그때 크리스가 말했던 것처럼, 고디는 결국 글을 쓰는 사람이 됐다.


결국 우리는 무엇이 될까?


갈림길

시체를 찾았는지, 얼마나 재미있는 모험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때의 그 걸음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하던 나를 그들은 감싸 안아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이 돼 아들들의 아버지가 된 고디는 이렇게 글을 마친다.

그 이후 난 12살 시절의 친구 같은 친구는 결코 만나지 못했다. 다들 그렇겠지?


작가가 될 거라고 나에게 넓은 앞 길을 열어준 그 시절의 그 친구. 길이 어디로 이어지고 어디로 향할지 몰라도 앞으로 걸어갈 수 있게 힘을 불어넣어 주던 바로 옆의 그 사람. 그땐 나중에 뭐가 될지 몰랐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때의 모든 순간들이 지금 있는 이곳을 만들어줬다. 과거를 돌아보는 영화는 많다. 이창동의 <박하사탕 (1999)>, 유약영의 <먼 훗날 우리 (2018)>, 알마 하르엘의 <허니 보이 (2019)> 등 현재의 자신이 예전을 떠올리는 좋은 작품들이다. 하지만 롭 라이너의 <스탠 바이 미>는 조금 달랐다.


어린 시절 자신들의 눈높이에서 그리던 삶에 관한 생각, 미래만을 생각하던 순간들을 다 이뤄버린 지금 돌아보는 것은 깊은 움직임을 일으킨다. 결국 우리는 무엇이 될까? 결국 우리는 무엇이 되려고 했던 걸까? 결국 우리는 무엇이 되려고 그 긴 길을 걸었던 걸까? 지난 5월, 90분의 이 짧은 영화가 끝나고 나는 나에게 물었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나는 무엇이 될까?


영국의 작가 줄리언 반스는 그의 소설 <메트로랜드 (1980)>에서 이렇게 지난날을 묘사한다.

우린 결국 뭐가 될까? 젤리가 될까? 하나의 불씨가 될까? 육군사관학교의 생도가 될까? 우린 아무것도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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