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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e Jan 06. 2020

마네의 꽃

마네는 말년에 작은 꽃 그림을 많이 남겼다. 채색조차 하지 않은 드로잉이거나 가벼운 파스텔 혹은 수채화였다. 때로는 그냥 편지 구석에 낙서하듯이 꽃 한 두 송이를 그려 넣기도 했다. 우리에게 마네를 기억하게 하는, 강렬한 주제의 오일페인팅 역작들과 비교하면 너무나 소소하고 평범하다. 류머티즘으로 거동이 불편해져 집 밖을 나서는 일이 어려웠기에 제한된 소재와 규모로 정물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쩌면 마네는 그냥 정말 그러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대단한 재능으로 매서운 질타와 짜릿한 영광을 모두 경험했던 슈퍼스타의 일생. 그 화려했던 삶이 저물어 가는 결정적 순간에 가장 남기고 싶었던 것이 고작 좀 시시하고 기분 좋은 끄적거림이었을 수도 있다. 편지 구석에 낙서한 꽃 두 송이는 보내는 이와 받는 이에게 확실한 기쁨을 준다. 그 둘에게는 세상을 뒤흔드는 역작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리고 결국 그게 중요한 걸지도 모른다.

대단히 빛나는 것보다 시시할지언정 행복한 생각, 느낌, 순간들로 매일을 채우는 2020년이 되었으면. 나에게도, 내 소중한 당신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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