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고양이는 창가에 앉아있는 것을 좋아한다. 창가에 앉아 날아가는 새도 보고 흔들리는 나뭇잎도 보다가 햇살을 받으며 잠이 든다. 나는 창가에서 고롱고롱 코를 골며 자는 우리 집 고양이 보는 것을 좋아한다. 멍하니 같이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바람 소리를 듣고 그 순간의 세상을 보고 느껴본다.
더 이상 회사를 다니지 않는 요즘의 나는 삶에서 가장 비싼 것을 누리고 있다. 느리고 친절하고 다정한 일상.
아침에 해가 뜨고 질 때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긴지를, 순간순간의 풍경이 수백수천 가지 모습으로 다가오고 내 마음은 또 얼마나 다양한 모양을 가질 수 있는지 새삼 알아간다.
겨울 아침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 아침에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좋아하고 그때 마시는 커피 한 모금을 좋아한다는 것을 새삼 알아간다.
오늘은 눈이 왔다. 눈이 오면 눈사람을 만든다. 어린 시절 아빠가 만들어준 커다란 눈사람은 더 이상 없지만, 이제는 혼자서 조그맣고 귀여운 소인국 눈사람을 만들어본다. 갓 탄생한 그이가 외로울까 봐 회사 다닐 때 출장길에서 사 온 쿠키몬스터를 옆에 놓고 후배가 페루에서 사다준 라마 인형도 놓고 친구가 러시아 여행에서 사다준 마트료시카 인형도 놓아준다. 차례로 줄지어 놓고 슬며시 웃는 내가 좋다.
눈사람과 인형들을 보고 있으니 묘하고 뭉클한 감정이 불쑥 솟아오른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도 있었고 사람이 무섭고 생각이 무섭고 세상이 무서울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의 모순사이에서 어쩌면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진 걸까, 왠지 모를 이해와 안도도 든다. 소중한 것은 언제나 밤하늘의 별 같고 별은 어두워진 후에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느린 일상을 보내며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사소한 관찰. 대상은 풍경이 될 때도 있고 소리가 될 때도 있고 내 마음이 될 때도 있다. 이제 막 세 살이 된 친구 아이의 벌어진 앞니와 우리 집 고양이의 솜뭉치 발바닥, 하얀 벽에 드리우는 햇살, 골목길을 걸어갈 때 나는 구두소리, 그리고 내가 무엇에 편하고 불편한지, 무엇을 버리고 남기고 싶은지, 지금은 어떤지, 앞으로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관찰을 한다.
이유 없이 그냥 예뻐해 주세요. 실수도 귀엽게 봐주고, 언제든 나의 편이 되어주세요. 사랑하는 연인처럼, 그렇게 나를 대해주세요, 마음이 말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사랑이 되기로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믿어주고 평생 함께 할 단 한 명의 사람, 바로 나의 사랑이.
<2020년 겨울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