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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Kang May 05. 2020

폭포에는 국경이 없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벨루오리존치에 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시내 어느 호텔에 묵었는데 그날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밤새도록 누군가 호텔 앞에서 폭죽을 쏘아댔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다음날 브라질 프로축구 리그 우승팀과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팀 간의 시합이 벨루오리존치에서 있었다. 두 팀은 원래부터 오랜 라이벌이었고 하필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우리 호텔에 묵었던 것이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컨디션 난조를 위해 브라질팬들이 밤새 폭죽을 쏘았던 것이다. 과연 두 나라는 축구에 있어서만큼은 한일전 못지 않은 라이벌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앙숙 관계가 축구 경기에 그치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 양국은 서로 전쟁을 했던 나라이기도 하다. 브라질에서는 시스플라티나 전쟁(1825-1828)이라고 부르는데 시스플라티나 주(훗날의 우루과이)를 두고 아르헨티나와 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브라질 전쟁이라고 한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양국 관계는 좋지 못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간의 주도권 다툼은 결국 핵군비 경쟁이라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당시 핵군축 전문가들은 브라질-아르헨티나 핵경쟁이 인도-파키스탄 핵확산만큼이나 심각하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드라마틱한 반전은 양국에서 군부 통치가 종식되고 민주주의가 회복된 80년대말부터 시작되었다. 수 년간의 정상 간의 교류와 신뢰구축조치 등을 통해  1990년 양국 정상은 이과수에서 만나 "공동 핵정책에 대한 이과수 선언"을 채택했다. 이후 지금까지 양국은 상호 핵시설에 대해 매년 정례적으로 사찰을 실시하고 있으며 핵에 대한 모든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두 국가의 반전 스토리는 세계 비핵화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브라질에서 바라본 이과수 폭포

왜 하필 양국 대통령들이 이과수 폭포에서 만났을까? 이과수 폭포는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 국경에 걸쳐 있다. 양국이 맞대고 있어 중립적인 지대로서 우리 판문점과 비슷한 느낌이다. 남미공동시장(MERCOSUR) 형성이 시초가 된 양국 간의 경제협력 협정(이과수 선언)도 1985년 이과수에서 체결되었다. 연이은 두 선언으로 양국이 이과수에서 안보와 경제 두축에서 완전한 화해를 이루고 협력의 토대를 세웠으니, 양국 관계에 있어 상징적인 장소인 셈이다.




이과수 폭포는 이과수 강의 하류에 형성된 270여개의 폭포로 이루어져있다. 이곳은 브라질 뿐 아니라 남미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손꼽힌다. 쉴새없이 엄청난 기세로 쏟아지는 폭포의 모습은 그저 압도적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조망할 수 있는 폭포의 모습이 다르다. 브라질쪽에서는 여러 개의 폭포를 한 번에 파노라믹 뷰로 바라볼 수 있다면 아르헨티나에서는 이과수 폭포의 하이라이트인 악마의 목구멍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다. 사람마다 호불호는 갈릴 수 있으나, 둘 다 보고 실망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본 이과수 폭포(악마의 목구멍)
악마의 목구멍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관광객들

이과수는 그 유명세 때문에 미디어에도 자주 등장하였다. 가장 유명하고 고전적인 예로 영화 "미션"을 들 수 있다. 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부터 이과수 폭포가 등장한다.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제작된 이 영화에서도 브라질(당시 포르투갈)과 아르헨티나(당시 스페인)의 관계는 좋지 못하다. 영화의 주된 갈등은 원주민들과 선교회의 활동영역에 대한 영토 관할권이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넘어가면서 시작된다(1750년 마드리드 조약).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수백년동안 남미대륙에서 선을 긋고 지우고 다시 긋고하면서 영토 싸움을 하였고, 앞에 말했던 시스플라티나 전쟁도 이러한 영토 다툼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폭포는 그곳이 누구의 땅인지 구분없이 흐른다. 하염없이 흐르는 폭포수를 보면 이곳을 둘러싸고 펼쳐졌던 국가 간의 싸움이 하찮게 느껴진다. "아마존과 빙하"에서도 다루었듯이 자연의 섭리는 국경을 초월한다. 그래서 국경을 긋는 일이 무의미하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자연지형물을 관리하기 위해서 양국 간의 협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과수 폭포가 양국 협력의 상징이 된 이유도 이때문일지 모른다.


오늘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이웃이다. 두 차례의 이과수 선언을 통해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많은 통합이 이루어졌고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이제 두 나라가 진심을 다해 싸우는 장소는 그라운드 위 뿐이다. 


우리나라도 이웃 국가들이 있다. 이과수 폭포와 같이 국경을 맞대고 있진 않지만 한쪽에서는 황사와 미세먼지가 날아오고 다른 한쪽에서는 방사능 오염수 배출이 문제다. 중남미 국가들에 비해 이웃 국가들과 함께한 역사가 길다보니 애증의 골도 깊다. 풀어야 할 문제도 복잡다단하다. 

이과수 폭포는 270여개의 폭포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사진은 그 중 일부분)
폭포로 향하는 보트투어




아내가 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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