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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 익는 날, 낯선 뒷마당에서 고향을 보다

이국에서 만난 정겨운 여름, 자연과 마음이 함께 익어가다

by 김종섭

오늘은 오랜만에 지인의 집을 찾았다. 지난 4월 17일 , 그날 이후 처음 방문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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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석 달이 흘렀다. 그렇게 보면 ‘시간 참 빠르다’는 말이 왜 인사처럼 되었는지 알 것도 같다. 뒷마당 풍경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이전에 잎만 무성했던 나무에 이제 열매가 가득 달려 있었다. 그동안 관심 없이 지나쳤던 나무가 자두나무였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옆에는 풋사과가 달린 사과나무도 가을을 준비하는 듯 조용히 서 있었다.

▶[자두가 주렁주렁 열린 뒷마당 나무]두 달 전엔 잎만 무성했던 나무에, 이제 자두가 가득 열려 있었다.

자두는 탐스러운 노란빛 위로 붉은 홍조가 부드럽게 감돌고 있었다. 그 색깔만 보아도 충분히 잘 익었음이 느껴졌다. 하나를 조심스레 따서 입에 넣어보았다. 탱글한 껍질을 깨물자마자 달큼한 과즙이 입안 가득 퍼졌다. 덜 익었을 땐 시큼한 맛이 강했을 텐데, 지금은 과육이 부드러워 씨만 남기고 순식간에 삼킬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먹을 만큼 넉넉히 따가세요” 하셨다. 풀밭 위에는 이미 떨어진 자두가 흐트러져 있었고,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나무 위 자두들도 낙과될 것처럼 보였다. 아주머니는 “남은 자두는 매실액을 담가 드실 거예요. 그래도 나눠 먹는 게 기쁨이지요” 하고 웃었다.


나는 몇 개만 따서 아내에게 맛 보이려 주머니에 담았다. 아주머니는 비닐봉지를 건네며 더 많이 따가라고 권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봉투 하나가 자두로 소복하게 찼다.

▶[자두와 산나물을 담은 봉투 사진]아주머니의 마음까지 담긴 자두와 산나물 한 봉지

달 전, 이곳에서 뜯어간 산나물을 반찬으로 요리해 먹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뒷마당엔 여전히 산나물이 자라고 있었고, 나는 혹시 지금도 먹을 수 있는지 물었다. 아주머니는 “계속해서 새순이 돋고 있다”며 나를 산나물이 있는 쪽으로 이끌었다. “낫이라도 있으면 풀 베듯 쉽게 뜯을 텐데요” 하고 웃으며 손으로 산나물 한 줌을 뜯어 자두 봉투 위에 얹어주었다.


이곳에선 흔한 풀일지 몰라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면 여름이 지나 무성한 잡초로만 남게 된다. 욕심내어 많이 가져오면 금세 시들기에, 며칠 먹을 만큼만 조심스레 뜯었다.


산책 중에 본 고사리들이 떠올랐다. 이미 질겨 먹기 어려운 상태였기에, 산나물도 이미 늦었을 거라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주머니 말대로 새순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자연은 어쩌면 이렇게도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가. 바통을 건네듯 다음 세대를 틔우는 자연의 힘이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자두와 산나물을 물에 깨끗이 씻었다. 자두는 냉장고에, 산나물은 채반 위에 펼쳐 물기를 뺐다.


며칠 전 사온 두부 한 모가 냉장고에 남아 있었다. 어제는 그걸로 강된장을 만들어 아내와 저녁밥을 맛있게 먹었다. 오늘은 그 강된장에 산나물과 함께 저녁을 차려 보기로 했다. 방금 뜯어온 산나물을 송송 썰고, 전에 만들어 두었던 우엉조림과 오이를 함께 썰어 넣었다. 그 위에 밥을 얹고, 계란프라이를 하나 올린 뒤 강된장을 비빔장 삼아 비빔밥을 만들었다.


요즘은 요리도 하나의 시처럼 느껴진다. 손끝에서 글이 아닌 새로운 맛이 탄생하는 신기함에 흥미가 생겨났다.

▶[산나물 비빔밥 사진]산나물, 우엉, 오이, 계란프라이가 어우러진 여름 저녁 한 그릇

식사는 특별했다. 산나물 특유의 씁쓸한 풍미는 오히려 입맛을 끌어올렸고, 강된장은 그 맛을 깊게 감쌌다. 디저트는 당연히 오늘 딴 자두였다. 이국 캐나다에서 이런 식탁을 다시 차릴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마치 고향의 여름날로 되돌아간 듯한 따스한 기분이 스며들었다.


맛이란 단순히 혀끝의 감각만이 아니다. 정서와 풍경,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과의 기억이 담길 때 비로소 완성된다. 오늘의 식사는, 아내와 나만의 진짜 ‘맛집’에서의 한 끼였다.


고맙다. 여전히 그냥 풀이 아니라, 나물로 남아 있어 주어서. 오늘은 그렇게, 뜻하지 않게 마주한 풀잎에게 마음을 건넸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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