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제품 처음엔 가슴 벅찼지만 이제는 다른 감정이 밀려온다
이민 생활을 하면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한국 제품을 마주하면 가슴이 뛸 때가 많이 있었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벅찬 감정이 앞섰다. 해외 대형 마트에서 익숙한 브랜드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고국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도 조금 무뎌졌다. 코스트코에도 점점 더 많은 한국 제품이 입점되고 있고, 김치부터 즉석식품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농심 돈코츠 라면을 발견하는 순간, 또다시 이전과는 다른 감정이 밀려온다. 단순한 반가움을 넘어, 아쉬움과 씁쓸함이 함께 뒤섞였다.
ㅣ스쳐 지나가려다 멈춘 라면 박스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던 중, 중앙 통로 팔레트 통째로 옮겨온 라면이 진열되어 있다. 한국 컵라면 정도는 예전부터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려 했다. 요즘은 가는 곳마다 한국라면이 열풍이라 한국제품일 수도 있다는 궁금함으로 다가섰다.
가까이 가서 보니 포장에는 한자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고, 영어는 물론 한자와 일본어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한글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중국 라면인가? 아니면 일본 제품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앞부분에 어디서 듯한 로그와 함께 영문으로 적힌 ‘Nongshim’ 발견하고 라면이 한국 제품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한글이 없는 전혀 없는 농심 라면, 캐나다 현지 소비자들은 이 라면을 보면서 과연 한국 제품이라고 생각할까? 그보다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 제품으로 여길 가능성이 더 높다.
ㅣ브랜드가 앞서는 글로벌 시장, 그리고 한국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만 해도 현지인들 중 삼성이나 현대가 한국 브랜드라는 걸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삼성이 일본 브랜드 아니야?"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세계 시장에서는 제품이 어디서 만들어졌느냐보다 ‘브랜드’ 자체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떤 회사들은 브랜드의 글로벌 이미지를 위해 출신 국가를 일부러 감추기도 한다고 한다. 명품 브랜드들이 특정 국가의 이미지를 벗어나려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국 역시 한때 ‘Made in Korea’라는 표기를 앞세우기 부담스러워했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제품의 품질이 인정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 정체성을 강조하지 않는 전략이 자리 잡기도 했다. 오늘 본 농심 돈코츠 라면 역시 그런 전략의 일환일까?
ㅣ반가움과 아쉬움의 공존
코스트코에서 한국 제품을 발견할 때마다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건 여전하다. 하지만 오늘의 라면처럼, 한국어 없이 판매되는 모습을 보면 복잡한 감정이 든다. ‘Nongshim’이라는 브랜드가 이제는 글로벌하게 자리 잡았다는 점은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정작 한국의 흔적이 사라진 듯한 모습은 어딘가 씁쓸했다.
라면 하나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이유를 모르겠다. 예전에는 코스트코에서 한국 제품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는데, 이제는 그 이상의 것들을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오늘처럼 제품 구분을 위한 노력 없이 한국제품임을 알아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오늘의 소소한 발견을 기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