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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으니 Dec 28. 2022

꿈을 쓰다.

평생 엄마로만 살 뻔했다.


"야호! 왜?

내 책이 top 20위 4주!

지금은 여성을 위한 자기 계발에서 10위야!"


남편이랑 저녁에 만나서 시장을 보러 가다가  요즘 내가 핸드폰으로 검색하는 것 중 빠지지 않는 것이 내 책을 네이버, 예스 24 시에 검색하는 것이다. 처음에 내 책을 쓸 때 이런 글을 썼다고 웃으면 어떻게 할까 하고 걱정했다. 인지도도 없는 평범한 아줌마의 글은 많은 시련을 겪었다. 그러면서 내 개인적인 내용을 세상에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쓰면서 나를 이해하고 모자란 나를 꼭 닮은 책이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를 남편이 들으며 "그 순위가 왜 그렇게 좋은 건데!" 했다. 글을 쓰면서 책을 내면서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도 평범한 책을 그래도 사랑을 해주네!" 하는 것이 나를 기쁘게 했다. 작가는 글을 잘 쓰기 때문에 책을 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 방학이 끝나면 한꺼번에 일기 숙제를 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감수성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성당에서 가을 소풍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비가 내려 산속에 있는 절에 들어가 우리들은 처마에 앉아 성가를 부르고 시도 적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성가를 목청껏 불러서 스님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단풍잎이 너무 예뻐서 나도 단풍잎에 물들 것 같다며 시를 썼다. 그 백일장에서 최 우수상을 탄 이후로 나는 글을 쓸려면 늘 힘들어하던 아이였다. 그러던 내가 왜 글을 쓰려고 했을까?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이 있듯이 나는 열심히만 살면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열심히 살았는데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다. 처음에 나는 더 잘 살면 행복할 것 같았다. 나는 늘 행복하다고 웃고 말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싶어 책을 더 찾아 읽었다. 그러면서 중년에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다가 나를 찾으며 글을 썼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그 순수함이 내 책을 내게 했다.


글을 쓰면서 내 안의 있는 마음의 상처를 온전히 꺼내면서 마음의 치유가 되었다. 처음 초고를 쓸 때에는 무엇이 나를 힘들게 했는지를 알게 되었고 퇴고를 할 때는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중년에 잘 살기 위해 책을 읽다 만난 작가는 "자기 계발의 최고는 책 쓰기!"라고 했다. 그 어떤 것보다 글을 써보고 다른 것을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때 그 말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글을 쓰고 나니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글을 쓰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의 정체성을 찾는 것에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게 해 주었다. 아직도 현실과 많은 어려움은 있지만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를 단련시키고 있다. 힘든 것은 모든 문제를 내가 해결해야 하기에 어려움을 헤쳐나갈 사람은 나라는 것이다. 그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책이고 코치고 작가가 되고 있다.


내가 초고를 쓰면서 <실행의 답이다>라는 책을 읽으며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평범한 50대 중년의 주부의 좌충우돌하는 자기 계발하는 이야기를 썼다.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작가들의 스토리가 제일 기억에 남아서 나는 스토리텔링으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나와 내 가족의 이야기를 썼지만 에세이라기보다 나를 위한 자기 계발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중년에 무엇을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글부터 쓰면서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주부라서 가족보다 자신을 위해 생활하기 어려운 현실을 표현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많은 주부들이 <평생 엄마로만 살 뻔했다>라는 제목에서 엄마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며 울컷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찾으며 나와 같은 주부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용기를 주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렇게 나는 평생 엄마로만 살지 않고 글이 주는 힘을 알리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이어오고 있다.


한동안 노트북도 고장 나서 새 노트북을 살까 말까 고민을 했었다. 그러나 내가 노트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큰 아들이 사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새 노트북으로 '정말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그것은 책 출판이 계속 더디면서 의욕을 잃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 어떤 일을 하든 필요할 거라는 생각으로 구입한 노트북은 내가 제일 많이 쓰는 핸드폰 다음이 되었다.


<평생 엄마로만 살 뻔했다>를 쓰지 않았다면 나는 나로 살기보다는 주부로 또 가족들을 위해서 애쓰는 예전의 나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예전의 나는 시급 만 원을 받으며 나를 위해서 가족을 위한 시간으로 채웠다. 시급을 받는 것이 서러운 것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나의 한 시간 한 시간이 내가 원하는 시간이 아닌 것으로 흘러가는 것이 슬펐다. 그리고 가족들은 엄마가  베푸는 사랑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해 주기 위해 내 일로 더 행복하고 싶다.


지금은 비록 글을 쓴다고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로만 내 시간을 쓰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아침을 맞는다. 작가는 글을 써야 하기에 주부로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글을 쓰며 하루를 시작하려고 한다. 엄마보다 "글지으니"라는 이름을 부르며 꿈을 쓰고 있다. "평생 엄마로만 살 뻔했다!"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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