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랑은 정말 공정해야 할까요?
사람이 살아 있음의 증명은 관계에서 시작한다.
좋든 싫든 탄생과 더불어 우리는 각자 자리에서 관계를 시작했다. 개인과 집단으로 집단과 집단으로 때론 개인과 개인으로...
인간이 살아있음을 공식적으로 못 박아두는 게 관계라면 관계의 출발로 비극이 시작되기도 한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타자를 비난할 수는 없다. 세상 그 누구도 주변인들을 평가하며 비난의 말을 쏟아낼 수는 없다. 평가나 비난은 대부분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시작되고 개인의 주관적 견해이기 때문이다.
기억을 되짚고 다시 살펴보아도 처음 관계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시점은 전혀 기억이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각자의 노력 없이도 가족 간의 관계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기억하는 관계 맺기는 언니의 친구들과 또 그녀들의 동생들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그전에 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는 일차적으로 여러 사람과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친인척들, 친구들, 선생님, 문구점 아저씨 아줌마, 동네서점 주인.., 그 후에 직접적 관계가 아닌 관계를 통한 다음 관계의 시작은 언니로부터 시작했다. 언니가 친구들과 만날 때 동생의 맘을 생각하고 어린 동생에 대한 책임감으로부터 그 관계는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언니와 친구들은 수애와는 다르게 모두 세련되고 나이만큼 성숙된 느낌이 그녀의 동경을 좀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끌어당겼다.
첫 번째 의지가 들어간 관계에서부터 시작된 동경은 처음으로 그녀를 살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수애는 할 수 없고 그녀들은 할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시간을 이미 겪고 지나온 그녀들의 삶은 어린 수애의 시선에서는 자유롭고 다소 과감해 보였다. 그것이 그녀 시선에서의 첫 번째 동경이 되었다.
삶을 돌이켜 보면 지나온 과정 속에 수애가 동경해 온 삶은 얼마나 자주 있었을까? 여러 번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을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을 순간들이 있었으리라. 다만 그것이 미래의 그녀를 평가하는 순간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 채 순간에 집중하고 있었다.
과거 수애는 누군가를 평가하고 논한 적이 몇 번이나 되었을까?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험담이나 비난은 그것을 능동적으로 하는 주체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과 감정에 의지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주변인들을 돌아보면 주변을 평가하기 좋아하고 그 행위를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일상에서 그 과정을 반복해 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착각하기도 한다. 평가에 있어서 긍정적 코멘트나 칭찬은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는 자신에 대한 위안으로 평가의 과정에 대해 합리성까지 부여해서 자신의 입장이나 태도를 완벽하고 떳떳하게 만들었다. 자칫 비난이나 비판이 들어 있을 때, 그것이 전체에서 보이는 객관적 상황을 대신하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이나 표출되는 감정을 집단적으로 묶어서 상대를 몰아세우기도 했다.
학교 공부를 끝내는 시점에 수애는 조금의 시간적 여유도 없이 결혼을 했고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경험과 집단에 다시 소속되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을 만큼 타이밍은 절묘했다. 그 선택, 결혼으로 잠깐의 쉼이나 중간자적인, 흔히들 얘기하는 과도기의 백수나 자유인으로서 여유를 누릴만한 시간은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그 속에서 겪는 외로움은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작된 평가라는 것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다. 이겨낸다는 건 잘 극복한다는 것, 환경과 상황에 맞게 잘 적응해 가는 것, 때로는 조금씩 변해가는 현실에 지나치게 스며드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평가라는 것에 대해서 내가 당하는 입장에서도 결과적으로 긍정적 모습으로 비칠 것에 대해서만 맘을 쓰게 된다. 어느 순간 평가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도 전에 그것을 수긍하며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칭찬에 익숙했던 수애는 행하는 많은 것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고 일단, 시작한 일을 이왕이면 틀어짐이 없이 끝까지 마무리했으며 모든 일은 항상 그렇게 잘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결혼 전, 남편은 칭찬으로 그녀의 격을 높여 주기도 했었고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믿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한없이 높여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눈을 떠 보니 수애는 결혼을 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으며 며느리로의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었다. 생계를 꾸려나가며 빡빡한 생활을 끊임없이 헤쳐 나가려고 애쓰는 한국의 개미 일꾼이자 열정을 다하는 주부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미 그전과는 격이 다른 그녀의 모습에서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한 가지가 있었다. 그건 자신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비난이나 평가절하는 절대 안 된다는 강한 신념으로 몸의 적응보다는 정신적으로 견뎌 내느라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 붙은 수식어나 타이틀은 지금까지도 긍정적인 것으로 남게 되었다. 아주 흡족한 모습으로.
몸이 조금씩 힘들어지면서 불현듯 그게 무엇이며 도대체 수애는 자신의 몸을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평가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그들의 감정에까지 그녀가 휘둘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좀 편안해지고 자유로와 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차차 자신을 살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아 움직였다.
결혼 이후의 생활에서 새롭게 다가왔던 건 사람들이 수애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평가를 참으로 잘, 자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객관적인 것처럼 편안하고 평범하게 하고 있었다. 제3의 타자를 칭찬할 때도 감정에 휘둘리고 감정이 감정을 딛고 그것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주관적 입장에서의 단점을 쏟아 낼 때는 함께 자리하지 않은 타자를 향해 격렬하게 감정을 증폭시켜 표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감정이 평가나 비난이 아닌 지극히 객관적 입장에서의 집단적 결과로 나온 총평인 것처럼 늘어놓기도 했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로 나온 그것들은 특별히 객관적인 것처럼 위장되어 있었다.
결혼이라는 것은 그 속에서 수애에게 자연스러운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어 주었다. 그것이 편안함으로 때론 불편함으로 다가와서 오래전에 잠재되어 있던 그녀 감정을 무너뜨리고 다치게 했어도 오늘의 일상에서는 견디려고 한다. 수애에게 일상을 견딘다는 것은 이제는 평범함일 뿐이다. 그리고 주변에서 행하고 있고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평가와 그 행위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처음의 감정을 돌아보고 움직임을 살피려고 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시작은 어딘가에서 발생했으며 그것은 누적되면 될수록 좋은 감정으로 증폭되고 결국 평가와는 관계없이 스스로 감정을 소중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 믿음이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주고 다음 계절로 점프하는 오르막에선 설렘을 담은 향기로 다시 찾아온 봄을 더 빛내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