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보다 어려운 마음의 문제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알 수 있었다.
오늘은 누군가의 마음이 ‘불안정한 직선’처럼 흔들리는 날이라는 걸.
겨울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가을 끝자락에 머물러 있었는데 최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 예보와 함께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 찾아온 단어는 바로 ‘수능’이었다.
아직 K-중3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시간 같지만,
오늘은 그들에게도 수능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이 계절,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건 수능, 기말고사, 축제라는 이름의 세 가지 서로 다른 일정이다. 흔들림이기도 하고 도전 에너지이기도 하다.
그중 무엇이 아이들의 마음을 가장 흔들고 있을까.
일상은 무료하지만 수업은 늘 그렇듯 진행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시험은 돌아오고, 피드백이 오가는가 싶으면 다음 시험이 이미 코 앞에 닥쳐 있다. 또다시 시작되는 시험 대비!!
칠판 앞에서 문제를 설명하고 있을 때였다. 뒷자리에서 작은 한숨이 들렸다. 그 짧은 숨 하나가
교실의 공기를 균열처럼 갈라놓았다. 중3은 작은 파문에도 금세 중심을 잃는다.
‘왜 그래?’ 하고 묻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 되는 나이. 공식처럼 정해진 답이 없는 마음의 문제다.
아이들은 습관적으로 “왜요? 왜요? 왜요?” 하고 묻는다. 그 질문 속에는 대개 깊은 의미가 없다.
아이들의 소리는 그저 습관이고, 리듬이고, 그냥 반사적인 소리일 때가 많다.
하지만 내가 건네는 ‘왜’는 다르다. 이해했는지, 정말 알고 있는지, 아이의 내면까지 닿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 아이, A의 연필을 잡은 손끝을 지켜봤다. 작게 떨리는 그 손이 오늘의 정답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는 무엇을 알고 싶었던 걸까.'
내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힘겨움에 대한 누군가의 온전한 이해였을까.
잠시 후 A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선생님, 저 이 문제 아는데요…
왜 또 안 풀리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문제의 오류가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마음의 각도가 흔들린 것이었다. 받아들이고 제대로 읽을 준비가 덜 되었을 때, 그 어떤 문제도 복잡해지는 법이다.
나는 A에게 천천히 말했다.
“문제를 모르는 게 아니라, 네가 오늘 조금 힘든 거야.”
A의 표정이 순간 멈췄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정답으로 인정해 준 것처럼
얼굴이 단숨에 가라앉았다.
중3은 이런 나이다. 조금만 무거워도 풀리던 문제도 안 풀리고, 어제의 자신감이 오늘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나이.
감정은 그래프처럼 일정하지 않고, 관계는 함수처럼 단번에 정의되지 않는다.
수업이 끝날 무렵, A가 말없이 노트 한 장을 내밀었다. 정답도, 풀이도 아닌, 삐뚤삐뚤한 글씨 하나. “오늘은 집중이 안 돼요. 그런데, 정말 잘하고 싶어요.”
그 한 줄이 그 어떤 풀이보다 솔직하고 아름다운 진심일 수 있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은 말 대신 작은 신호로 자신을 설명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신호를 조용히, 깊이 읽어주는 일이다.
A는 틀린 게 아니었다. 단지 마음이 조금 흔들렸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너는 오늘도 충분히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