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씌어진 소설
《A가 X에게》_존버거
우리는 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까.
옛 교도소 73호 감방에서 발견된 편지 뭉치는, 한 시대의 잊힌 시간이자 누군가의 싸움이었다.
잊힌 시간 덩어리를 꺼내 자신의 방식으로 읽어 낸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남기 위해 싸우는 거예요.”
그 말은 결국, 타인을 향한 싸움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처럼 느껴졌다.
"희망과 기대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어요. 처음에는 그저 지속되는 시간에서만 차이가 있는 줄 알았죠. 희망이 좀 더 멀리 있는 일을 기다리는 거라고 말이에요.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요. 기대는 몸이 하는 거고 희망은 영혼이 하는 거였어요. 그게 차이점이랍니다. 그 둘은 서로 교류하고, 서로를 자극하고 달래주지만 각자 꾸는 꿈은 달라요. 내가 알게 된 건 그뿐이 아니에요."
삶의 기대와 희망, 그 어떤 것도 외롭게 떨어져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를 긴 시간 기다리는 기대처럼, 몸이 하는 기대 역시 그 어떤 희망만큼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변화 모두를 기대한다.
나는 A와 X 사이에 장벽이 있다고 믿었다. 그들 사이 사랑과 정의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나는 관계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수학을 떠올렸다. 서로 다른 값들이 연결되는 과정, 그 사이의 틈까지 포함한 구조로.
《A가 X에게》는 A가 X에게 답장을 받을 수도, 편지가 제대로 전달될지도 알 수 없는 편지를 보낸다. 어찌 보면 그 모습이 상수함수처럼 보인다. 또 대응 방식으로 보면 항등함수로 보이기도 하다. 관계의 방식인 함수가 그대로 보인다.
y=a(a는 상수)는 X에 어떤 값을 대입해도 Y값이 일정한 상수로 나타나는 상수함수는 다시 보면 맹목적인 추앙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는 끝내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관계를 꼭 포기해야 하는 이유는 아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관계를 해석하며, 조금 덜 오해하고 더 이해할 가능성을 만들어간다.
덧.
봄 꽃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처럼 환히 빛나는 작가님들 평안하시지요. 봄을 지나, 숨어 있는 여름이 싱그러움으로 드러납니다. 오늘은 연재를 잠시 쉬어갑니다. 독서클럽 책 후기로 대신 정리해 봅니다.
작가님들, 찬란한 봄이 사라지기 전에 충분히 누리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