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발라동과 여성 모델
하루 끝의 무게가 푸른빛 방 안에 고요히 내려앉는다. 차가운 색조 속에 깃든 묘한 온기는 역설적이게도 삶의 피로에서 피어오른다. 짙은 커튼과 무늬 있는 침대보가 방 안을 조용히 감싼다. 그 정적의 한가운데, 한 여인이 누워 있다. 낯익은 포즈. 오달리스크처럼 천천히 눕혀진 몸. 하지만 그 몸 위에는 누드의 관능도, 응시를 유도하는 연출도 없다. 그녀는 옷을 입었다. 수잔 발라동은, 성적인 신호로 가득한 과거의 회화들이 벗겨낸 것들을, 다시 입혔다.
여인은 줄무늬 파자마 바지와 민소매 셔츠를 입고 있다. 그녀의 옷은 전통적 여성성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목과 가슴에 걸친 햇볕 자국은 창백한 피부를 찬미하던 미의 전통을 무심히 비껴간다. 시선을 사로잡는 두툼한 허벅지, 처진 가슴, 거칠어진 손. 미의 규범을 거스르는 이 몸은 스스로의 시간을 살아가는 몸이다.
담배 한 개비가 입술에 매달려 있다. 그것은 반항이라기보다 권태에 가까운, 혹은 사유의 한 방식처럼 보인다. 그녀는 우리를 보지 않는다. 그녀의 시선은 화면 바깥 어딘가를 향해 있다. 누워 있지만 무너지지 않고, 응시받고 있지만 여전히 자기만의 생각에 잠긴 얼굴. 그 눈빛은 관람자를 끌어들이지 않고 오히려 멀리 두며 스스로의 내면으로 침잠한다.
그녀의 발밑에는 책들이 놓여 있다. 그 사소한 오브제 하나가 이 여인의 세계를 결정짓는다. 마네의 올랭피아가 꽃과 하녀, 고갱의 타히티 여인이 배경의 이국성과 함께 소비되던 것과는 다르다. 이 여인은 읽으며 생각한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세계에 몰두한다. 그녀는 바라보는 자가 아닌, 바라봄으로부터 이탈하는 자다.
발라동은 이 여인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방 안에는 단순한 모델이 아닌 하나의 지적인 존재, 보헤미안 여성, 시대의 경계를 넘어선 자의 몸과 표정이 존재한다. 그녀는 더 이상 꾸며진 신화의 주인공이 아니라 자기 서사의 주체로서 여성이다. 발라동은 이 여인을 사랑하거나 이상화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를 정면으로 보았고 그 사실을 회화로 남겼다. 자신의 피로를 가진 몸, 말없이 숨 쉬는 존재로서 여성이 이 푸른 방 안에서 조용히 숨을 쉰다.
<푸른 방>은 어떤 선언보다도 조용하고, 어떤 고백보다도 단단하다. 이 그림은 말한다. 우리는 늘 누군가의 시선 속에 놓여 있지만, 언젠가는 그 시선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그리고 발라동은 바로 그 시작이었다.
발라동의 삶은 언제나 경계 위에 있었다. 하층 계급의 태생, 끊임없이 전전했던 생계형 직업들. 그녀는 여성의 자리가 가정 안에만 머물도록 강요되던 시대에 거리로 나아갔다. 발라동은 화가들의 작업실을 오가며, 때로는 누드모델로, 때로는 정물처럼 서 있으면서, 남성 예술가들의 시선 속에 자신의 몸을 내맡겨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시선의 틈 사이로, 발라동은 '보는 법'을, 그리고 '그리는 법'을 배웠다.
발라동의 손은 조심스레 선을 긋기 시작했고 이내 날것의 삶을 담아내는 붓질로 자라났다. 그녀가 포착한 세계는 화려하지 않았다. 무대 위의 신비한 여인도, 환상 속의 이상향도 아닌, 자신이 살아온 삶의 언저리, 곁에 있던 평범한 이들의 얼굴과 몸짓들이 가득했다. 발라동은 전문 모델이 아닌 이웃과 친구들, 그리고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화폭에 실어, 일상의 진실을 거짓 없이 응시했다. 그녀의 그림은 말한다. 예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여성의 손끝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모델의 영혼에 도달하고 싶다면, 정면으로 바라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 수잔 발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