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못하는 고향

<비테프스크 위에서> (1913)

by 말하는 돌

마르크 샤갈은 1906년 당시 러시아 제국의 수도이자 국가 예술 제도의 중심지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했다. 유대인은 내부 여권 없이는 도시 출입이 허용되지 않았기에, 그는 친구의 도움으로 임시 여권을 마련해야 했다. 이 첫 이동은 단순한 진학이 아니라, 제도적 경계를 통과해야만 가능한 삶의 연습이었다. 그는 명망 있는 미술학교에 입학해 2년간 수학했지만, 이 교육 역시 안정된 소속의 결과라기보다 예외적 허용의 산물이었다.


1907년 무렵부터 그는 자연주의적 자화상과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이 시기 샤갈은 비정규 프리메이슨 단체인 ‘러시아 민족들의 그랑 오리앙’의 활동적인 회원이었고, 그중에서도 ‘비테프스크’ 로지에 속해 있었다. 이 선택은 정치적 신념이라기보다, 공식 제도 밖에서 관계를 맺고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 지식인의 조건을 반영한다. 그는 이미 제도의 내부가 아닌 주변부에서 세계를 관찰하는 위치에 있었다.


샤갈은 1910년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머물며 비테프스크를 자주 방문했는데, 이 반복된 이동은 고향을 하나의 안정된 출발점으로 만들기보다는, 떠나야 하지만 완전히 떠날 수 없는 장소로 각인시켰다. 비테프스크는 실제로는 작은 변두리 도시였으나, 그의 삶에서는 언제나 과도하게 크고 무거운 이름이었다. 고향은 장소라기보다, 그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였다.


이 감각은 1914년, 전쟁으로 인해 고향에 발이 묶이면서 더욱 명확해진다. 잠시의 귀환이 영구적인 체류로 변하고, 떠났다고 믿었던 장소가 다시 삶의 중심으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이 고향은 더 이상 돌아갈 수 있는 과거가 아니다. 전쟁과 불안, 공동체의 위태로움 속에서 고향은 이미 잃어버린 장소가 된다. 바로 이 시간의 균열 속에서 〈비테프스크 위에서〉가 그려진다.


화면에서 인물은 과도하게 크고, 아래의 마을은 작게 축소되어 있다. 이 스케일의 역전은 현실적 원근법이 아니라 기억의 중량을 따른다. 고향은 실제 공간으로서 비테프스크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호출된 기호로 배치된다. 집들은 작고 단순하며, 개별적 생활의 흔적은 거의 없다. 이는 현재의 장소가 아니라, 더 이상 접근할 수 없기에 오히려 선명해진 기억의 표면이다.


중력 역시 명확하지 않다. 인물은 떨어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상승하지도 않는다. 이 애매함은 의도적이다. 중력은 삶의 조건을 상징한다. 샤갈의 인물은 고향이라는 땅을 잃었지만, 완전히 해방되지도 않았다. 이는 파리로 떠나기 전, 이미 정서적으로 망명 상태에 놓여 있던 그의 생애 조건과 정확히 겹친다.


아래의 비테프스크는 고요하다. 이 고요는 평화가 아니라, 정지된 시간이다. 샤갈은 고향을 생동하는 공동체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그는 그것을 이미 지나간 세계,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세계로 남긴다. 집들의 단순화된 형태는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을 따른다. 세부는 사라지고, 구조만 남는다. 이 하늘은 초월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땅을 잃은 이들이 잠시 머무는 층위다. 하늘은 결말이 아니라 과정이다. 〈비테프스크 위에서〉는 도착의 장면이 아니라, 떠남 이후에도 계속되는 머뭇거림을 기록한 그림이다.


샤갈은 고향을 반복해서 그린다. 그러나 그것은 향수의 재현이 아니다. 그는 고향을 되돌아갈 장소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그는 고향을 계속해서 시선을 끌어당기는 조건으로 남긴다. 고향은 땅이 아니라, 중력이다.〈비테프스크 위에서〉는 그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 고향은 아래에 있다. 보이지만 닿을 수 없다. 그래서 이 그림은 망명의 선언이 아니라, 망명 이전부터 이미 시작된 이탈의 상태를 기록한다. 고향을 잊지 못해서가 아니라,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떠 있었던 삶. 그 상태가 하나의 회화 형식으로 고정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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