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여자에게 남은 것

뮤지컬 <아이다>

by 말하는 돌

뮤지컬 <아이다>는 아이다의 사랑으로 끝나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가장 오래 남아 있는 인물은, 끝내 사랑받지 못한 여자가 아니라 살아남은 여자다. 암네리스는 죽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녀는 이 이야기에서 가장 고독한 자리에 도달한다.


암네리스는 처음부터 결핍을 모르는 인물이다. 그녀에게 세계는 늘 응답했고, 사랑은 의심 없이 주어졌다. 그녀의 웃음은 가볍고, 말은 빠르며,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왕녀로 태어난다는 것은 슬픔을 모르는 대신, 슬픔을 상상할 필요조차 없는 위치에 놓이는 일이다. 그래서 그녀는 사랑을 믿는다기보다, 사랑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아이다가 등장했을 때, 암네리스는 즉각적으로 적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친절하고, 다정하며, 조심스럽다. 이 태도는 위선이 아니라 무지에 가깝다. 암네리스는 아직 모른다. 사랑이란 누군가의 몫이 아니라, 누군가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는다. 사랑이 도망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아직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균열은 아주 느리게 시작된다. 사랑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그녀를 더 이상 보호하지 않는다는 감각이 먼저 온다. 라다메스의 시선이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 시선을 붙잡을 수 없다는 무력감이 그녀를 무너뜨린다. 암네리스의 고통은 질투가 아니라, 처음 겪는 비자발성이다. 그녀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마주한다.


이때 암네리스는 권력을 선택한다. 그것은 잔인함이라기보다, 그녀가 배운 유일한 언어다. 세계는 늘 그녀에게 권력으로 응답해 왔다. 그래서 그녀는 묻는다. 사랑이 나를 떠난다면, 나는 무엇으로 남을 수 있는가. 그러나 이 질문은 곧 되돌아온다. 권력으로 지켜낸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사실로.


결말에서 암네리스는 왕이 된다. 모두가 떠난 뒤에, 홀로 남아.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그녀가 권력을 얻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권력이 더 이상 그녀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죽음은 끝이지만, 암네리스에게 그것은 시작이다. 그녀는 이제 그들의 선택이 남긴 세계를 살아가야 한다. 사랑 없이, 그러나 기억과 함께.


암네리스의 마지막 감정은 분노도, 후회도 아니다. 그것은 이해에 가깝다. 너무 늦게 도달한 이해. 그녀는 비로소 깨닫는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방향이며, 권력은 보호가 아니라 책임이라는 것을. 이 깨달음은 그녀를 구원하지 않는다. 다만 그녀를 되돌릴 수 없는 자리로 데려간다.


그래서 암네리스는 이 작품의 가장 비극적인 인물이다. 아이다는 선택했고, 라다메스는 믿었지만, 암네리스는 선택하지 않은 세계의 결과를 모두 떠안는다. 그녀는 살아남았기 때문에 잊을 수 없고, 왕이 되었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없다. 그녀의 삶은 이후의 시간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아이다>가 끝난 뒤에도 이 이야기가 계속 남는 이유는, 암네리스가 무대 밖으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관객의 시간 속으로 걸어 나온다. 사랑을 너무 늦게 이해한 사람처럼,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된 사람처럼. 그녀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감당하는 일인가.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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