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발라동과 여성 모델
1924년, 수잔 발라동의 붓끝에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붉은 암체어에 깊숙이 몸을 묻고, 무릎을 끌어안은 채 옆을 응시하는 그녀. 짧은 붉은 민소매 상의와 흰색 스타킹, 발끝까지 불길처럼 번지는 붉은 구두가 그녀를 감싼다. 발라동 특유의 굵고 단호한 윤곽선과 겹겹이 얹힌 붓질은 피부의 결과 온기를 거칠면서도 생생하게 살려낸다. 스타킹 위로 드러난 허벅지와 팔에는 살집과 근육이 그대로 숨 쉬며, 이는 19세기 화단이 길러온 매끄럽고 비현실적인 여성 누드와는 확연히 다른, 육체의 현실성과 무게를 전한다.
그녀의 시선은 멀리 위를 향하고, 입술은 굳게 다물린 채 사유의 기슭에 머문 듯하다. 관람자와의 시각적 교류를 단호히 거부하는 이 표정은, 오히려 시선을 그녀의 내면으로 이끈다. 붉은 상의와 구두, 의자의 패브릭은 하나의 응집된 색 덩어리로 화면 중앙에 열기를 쌓고, 어두운 배경은 그 불빛 속에서 인물의 몸과 표정을 더욱 뚜렷하게 떠오르게 한다. 바닥에 놓인 꽃다발은 애정의 흔적인지, 거절의 잔향인지 알 수 없지만, 은밀한 고독과 단절의 기운을 암시한다.
이 장면에서 발라동은 전통적인 여성상, 유혹과 관능의 대상으로 연출된 이미지를 거부한다. 대신, 현실 속에서 숨 쉬고 있는 한 여성의 육체와 존재를 정면으로 포착한다. 그녀의 시선은 감상자의 욕망을 자극하기보다, 여성이 살아가는 시간과 그 무게를 꿰뚫는다.
색채 심리학적으로 읽었을 때, 이 화면은 더욱 선명해진다. 붉음은 생명을 데우는 피의 온기이자, 숨 막히는 욕망의 불씨이며, 동시에 다가서면 데일 듯한 경계의 표식이다. 발라동은 상의와 구두, 의자의 비단결 같은 패브릭에 그 붉음을 스며들게 하여, 어둠 속에서 홀로 타오르는 덩어리의 빛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빛은 낯선 시선이 덧씌운 관능의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육체가 품은 힘, 타인의 욕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기둥 삼아 선 존재의 선언이다.
이에 맞서는 흰빛은 스타킹과 속옷에 고이 내려앉아 있다. 흰색은 순수와 청결, 보호의 이미지를 불러오지만, 드러난 허벅지와 맞물리며 순결과 관능, 보호와 취약성 사이에서 진동하는 긴장을 만든다. 붉은 옆의 흰빛은 이 상반된 의미를 날카롭게 부각시킨다.
배경의 검정과 짙은 녹색은 고립과 침잠, 단절의 정서를 불러온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여인은 홀로 붉게 부상하며, 관람자는 그녀의 표정과 몸짓 외에 시선을 둘 곳이 없다. 이는 발라동이 남성 중심 회화 전통의 시선을 차단하고, 여성을 배경의 장식이 아닌 전면의 주체로 세우는 장치다.
발라동의 색채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여성 주체성을 세우는 하나의 견고한 구조다. 붉음은 심장에서 뛰어오르는 힘과 생명력, 흰빛은 사회가 부여한 규범의 모순과 양가성, 검정은 고독과 깊은 내면의 심연을 품는다. 세 가지 색은 서로를 밀어내고 끌어당기며 팽팽한 긴장을 이루지만, 동시에 화면 전체를 장악한다. 그 속에서 발라동의 여성은 소비되는 대상이 아니라, 정서와 주체성이 교차하는 중심에 선 존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