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자기 앞의 생>
누구나 한 번쯤 살아가면서 타인과의 이별을 경험한다. 더구나 그 상대가 사랑하는 사람일 때, 그리고 그 이별이 영원할 때, 감당하지 못할 만큼 힘겹고 아파한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들은 그런 순간을 목격할 때,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을 위로하려 한다.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강렬한 감정으로든, 별다른 내색 없이 따뜻한 손으로 차가워진 손을 잡아주는 편안한 감정으로든.
아직은 싸늘한 이른 봄 국립극단은 연극 〈자기 앞의 생〉을 무대 위로 올렸다. 이 연극은 에밀 아자르(1914~1980, 본명 로맹 가리)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을 각색한 것이다. 여전히 독일인을 무서워하는 유태인 로자 아줌마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무슬림 소년 모모의 비참한 삶의 순간들을 다룬 소설 『자기 앞의 생』은 적당한 아니, 미지근한 온도로 로자 아줌마와 이별한 모모의 슬픔을 그려내며, 일상적인 위로의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슬픔의 감정이 흘러넘치기보다는 모모의 모습을 건조하고 냉소적인 문체로 그려낸다. 게다가 모모의 삶 속 모든 순간이 극적이기 때문에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마저 그런 순간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를 통해 에밀 아자르는 순간의 감정에 매몰되기보다 결국은 살아가야만 하는 자기 ‘앞의’ 생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죽음이 갈라놓은 영원한 이별조차 생의 작은 조각에 불과한 이 차가운 현실을 깨닫게 하는 방식으로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원작 소설과 비슷하게 연극 〈자기 앞의 생〉은 ‘이별’을 다루고 있을까?
3월 어느 금요일 저녁 공연, 로자 아줌마 역을 맡은 이수미 배우와 모모 역을 맡은 오정택 배우가 열연을 펼쳤다. 그들의 안정적인 연기는 우리나라 관객에게는 다소 낯선 유태인의 괴로웠던 삶과 생소한 무슬림 문화, 그리고 비참한 삶의 공간이 되는 허름한 파리의 슬럼가 같은 생경한 배경 설정에 대한 이해보다 인물 간의 대화에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어린 모모 역할을 성인 오정택 배우가 맡아 연기한 것은 안정적인 연극의 감동을 위한 것이었다. 특히 이수미 배우는 섬세하게 로자 아줌마를 연기했다. 또렷하게 전달되는 대사들 속에 숨어 있는 노인 특유의 숨 차오름과 나이 든 말투는 우리네 할머니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연극 〈자기 앞의 생〉은 대부분의 장을 2인극 형태로, 모모와 로자 아줌마가 이끌어 나간다. 관객은 모모의 삶에서 비중 있는 모세, 하밀 할아버지, 롤라 아줌마 그리고 나딘 아줌마 같은 인물들뿐만 아니라 스쳐 지나간 수많은 기억들까지도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대화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덕분에 두 사람의 관계에 한층 집중하게 되는데, 이 지점에서 바로 소설과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모모의 눈을 통해 본 세상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관계를 중심으로 그들의 세상을 코앞에서 지켜보게 된 것이다. 관객은 공연 내내 두 사람의 사랑에 오롯이 몰두하면서 연극 〈자기 앞의 생〉만의 향기를 맡는다. 실제로 로자 아줌마와 모모는 넓은 무대 전체를 이용하지 않고 관객 가까이에 위치한 비교적 제한된 공간에서 연기를 펼친다. 지하실의 소파는 거의 무대 끝자락에 놓여 있으며, 이는 관객과 배우들의 물리적 공간을 축소시킬 뿐 아니라 심적 거리감 또한 좁혀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관객은 무대 위 배우들의 숨소리까지도 감각할 수 있었다.
서로에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로자 아줌마와 모모의 거리는 연극이 진행될수록, 아니 로자 아줌마가 죽음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갈수록 밀착되며 가까워진다. 이따금 7층 집을 벗어나 외부의 이야기를 가져와 서로에게 전했던 두 인물은, 더 이상 그 공간을 벗어나지 않으며 대화의 내용 또한 그들 서로에 대한 것으로 한정된다. 모모의 친엄마를 살해한 친아빠가 나타났을 때 마지막 힘을 다해 모모를 지켜내는 로자 아줌마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더 심한 치매 증상을 보이며 과거 시절로 돌아간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즉 그녀가 보다 편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안전한 공간으로, 지하실로 자리를 힘겹게 옮긴다.
마지막 지하실에서의 연출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모모 곁에서 숨을 거둔 로자 아줌마와 함께 그녀를 품고 있는 소파 자체가 무대 밖으로 밀려 나가는 장면은, 마치 모모의 생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로자 아줌마의 사라짐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했던 영상을 무대에 짧게 비춘 것은, 불과 몇 초 전 숨을 내뱉던 누군가와의 영원한 이별조차 생의 뒤에 쌓이는 추억으로 순식간에 바뀌어 버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연출이다. 로자 아줌마의 마지막 가냘픈 숨을 뺨 어귀에 간직한 채, 모모는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우산 친구 아르튀르와 춤을 추며 이별의 슬픔을 녹여낸다. 그렇게 슬픔이라는 감정 자체에 흠뻑 빠져 깊이 잠식하듯 춤을 추고 나서야 모모 자신의 생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모습을 끝으로 연극의 막이 내려진다.
고요했던 마음에 자잘하게 돌을 던져 울림을 주던 배우들의 대사 하나하나, 몸짓 하나하나가 마음 가득 물이 차올라 먹먹하게 하다가 결국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리게 만든다. 훌쩍이는 소리가 객석을 채웠으니 비단 개인적인 경험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누구나의 마음 한 귀퉁이에 숨어 있던 이별의 순간을 모모가 로자 아줌마와의 추억을 상기하며 애도하듯 다시금 꺼내 보며 녹아내리게 된 것이다.
앞서 에밀 아자르는 영원한 이별의 순간에 토닥여주는 따뜻한 손길보다는 앞으로 생이 펼쳐질 현실을 가리키는 냉정한 시선으로 소설 『자기 앞의 생』을 써 내려갔다고 했다. 연극 〈자기 앞의 생〉은 그런 원작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린 겨우내 꽁꽁 얼어버려, 이별의 감정에 무감각해진 혹은 마음 저편으로 애도의 감정을 묻어버린 관객의 눈동자와 귓가 그리고 코끝에 ‘나는 당신 옆에 여전히 이렇게 서 있으니 마음껏 녹아내려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반짝이는 눈빛으로, 속삭이는 목소리로, 따뜻한 숨결로 전하고 있다.
연극 〈자기 앞의 생〉은 어느새 봄이 찾아와 꽃을 피우는 것처럼 관객 마음으로 들어와 이별에 대한 아픔을 상기시키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다시 앞의 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