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마리 로랑생이 아카데미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의 자화상은 어딘가 불안하고 슬퍼 보였다. 그러나 이듬해 그가 그린 또 다른 자화상에서는 전혀 다른 기운이 느껴진다. 1905년의 로랑생은 자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있다. 그 얼굴에는 오만함마저 깃들어 있다. 하지만 그 오만은 젊음의 무모한 자만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스스로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자각한 인간의 결기다.
이 시기 로랑생은 청년 앙리 피에르 로셰를 만나 연인이 된다. 로셰는 단순한 연인을 넘어 평생의 친구이자 수호자였다. 어쩌면 기욤 아폴리네르보다도 그녀에게 더 깊은 영향을 준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화상으로서 처음으로 로랑생의 작품을 구입한 알프레드 플레흐트하임이나 폴 로젠버그 같은 미술계의 거장들에게 그녀를 소개했다. 또한 니콜 그루나 오토 폰 뷔체 등, 훗날 로랑생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 역시 로셰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녀의 예술 세계는 점차 현실 속 인맥과 시장의 관계망 속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조르주 브라크에게 인정받고, 자신의 작품을 사려는 이들이 나타나면서 로랑생은 화가로서의 자신감을 조금씩 확신으로 바꾸어갔다. 이 자화상은 바로 그 시점에서 그려진 그림이다. 검소하고 청초한 분위기의 옷차림, 검은 리본으로 묶은 곱슬머리, 꾸밈없는 표정 속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정직하게 응시한다. 이제 더 이상 불안한 소녀가 아니라, 세상 앞에 자신을 내세우는 젊은 화가의 얼굴이다.
그림은 어깨까지의 반신 초상이다. 인물은 몸을 살짝 돌리고 고개를 비스듬히 들어 관람자를 응시한다. 정면도 아니고 완전한 측면도 아닌, 어딘가 비껴선 각도다. 이 ‘어긋난 응시’는 로랑생의 자화상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주저하면서도, 끝내 피하지 못하는 사람의 태도다. 반쯤 감긴 눈꺼풀 아래로 떨어지는 시선은 관객을 보는 듯하면서도 결국 자신을 향한다. 그 눈빛에는 냉정함과 피로, 그리고 어떤 깊은 사색이 배어 있다. 젊은 여성 화가가 세상과 마주하며 느꼈을 내면의 불안, 그리고 예술가로서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긴장감이 그 응시 속에 응축되어 있다.
로랑생은 이 시기에 아직 특유의 파스텔빛 세계를 확립하기 전이었다. 화면을 채우는 색은 회갈색, 황토색, 그리고 약간 붉은 기가 감도는 살빛이다. 배경은 거의 비어 있지만, 목재의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한 표면이 인물의 얼굴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붓질은 얇고 매끄럽지 않다. 곳곳에 남아 있는 거친 터치는 그녀의 불안정한 감정과 호흡을 그대로 전한다. 볼과 턱 주변에는 조밀한 붓 터치가 모여 있고, 그 속에는 작가의 긴장과 떨림이 배어 있다. 명암 대비는 크지 않지만, 눈 주위의 어둠과 입술의 붉음이 시선을 끈다. 그 붉은 기운은 단순한 생리적 색채가 아니라, 내면의 열기와 자기 확신의 흔적이다. 색채의 탁함은 미숙함이 아니라 정직함이다. 그녀는 자신을 ‘예쁘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미의 기준으로부터 벗어난 얼굴을 고집스럽게 마주한다.
무표정해 보이는 얼굴에는 묘한 감정의 층위가 깃들어 있다. 살짝 다문 두꺼운 입술은 단호함과 방어의 제스처처럼 보인다. 그 아래 굳어진 턱선에는 의지와 긴장이 공존한다. 그녀는 세상을 향해 시선을 들고 있지만, 완전히 맞서지는 않는다. 반쯤 감긴 눈에는 아직 자신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젊은 예술가의 내면이 비친다. 그러나 그 망설임 속에서도 확실히 느껴지는 것이 있다. “나는 나 자신을 그린다.”
이 자화상 속의 표정은 결의와 불안이 맞물린 얼굴이다. 여성이자 화가로서, 시대와 싸워야 했던 한 인간의 자의식이 그 위태로운 균형 위에서 빛난다.
1905년의 자화상은 로랑생의 회화 세계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훗날 그녀가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색채로 그려낸 소녀들과 여성들의 세계, 꿈결 같은 낭만의 시기를 예고하기 전에, 이 그림은 가장 거칠고 진실한 자화상으로 남는다. 장식도, 이상화도 없다. 오직 ‘존재하려는 의지’만이 있다. 화가로서의 자신을 세우려는 고독한 의식, 그 첫 문장이다.
이 자화상은 마치 선언처럼 보인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여성이며, 화가다. 이 두 이름이 충돌한다면, 그 충돌이 곧 나의 예술이다.”
1905년의 로랑생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는 미의 규범에서 벗어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거울 속의 얼굴은 완벽하지 않지만, 정직하고 생생하다. 그것은 한 젊은 여성이 스스로를 ‘그림 속 주체’로 세우는 최초의 순간이었다. 훗날 그녀가 그려낼 파스텔빛의 세계가 ‘이상화된 여성’의 유토피아였다면, 이 시기의 자화상은 오히려 ‘인간 로랑생’의 가장 진솔한 고백이다. 회색빛의 화면과 어긋난 시선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찾아가는 길의 첫 장을 열었다. 그 얼굴에는 불안과 확신, 결의와 고독이 동시에 빛난다. 그리고 바로 그 복합적 감정이, 한 여성 예술가가 세계 속에서 스스로를 세우는 최초의 예술적 순간을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