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자화상에 투영되던 마리 로랑생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우울함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한다. 미술학도 시절, 그녀의 작품 속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불안, 그리고 기욤 아폴리네르나 피카소 등과의 예술적 교류 속에서 품었던 예술적 야심이 뚜렷했다. 그러나 망명 시절의 괴로움과 분리의 아픔을 날카롭게 그려내던 표현 방식은 이제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화가로서 널리 알려지고자 했던 열망, 성공 이후 새로운 예술을 모색하던 시기의 세련됨과 적적함, 그리고 그 고요함은 더 이상 화면의 중심에 남지 않는다. 그녀는 더 이상 감정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지워나간다. 동시에, 실제 나이보다 젊고 아름다운 모습만을 남겨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려는 보수적인 태도도 나타난다.
“청색을 훌륭히 사용하는 위대한 예술가”로 칭송받던 로랑생은, 이 1928년 자화상에서도 파란 리본 장식과 날개 모양의 모자를 쓰고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다. 그 미소는 단순한 아름다움의 제스처가 아니라, 자신이 이룬 성공에 대한 안도감과 자신감의 표현이다. 동시에, 흐릿한 눈동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미래를 응시하고 있는 듯한 여운을 남긴다.
이 자화상에서 로랑생은 반측면으로 앉아 있지만, 시선은 거의 정면을 향한다. 1924년 자화상 속 내향적이고 고요한 응시와 달리, 이번에는 관람자와의 마주침이 이루어진다. 그 눈빛은 여전히 차분하지만, 이제는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인 사람의 평정함으로 가득하다. 입가에는 미세한 미소가 번져 있으며, 그것은 외부를 향한 장식적 표정이 아니라 자신에게로 돌아온 확신의 징표이다. 그녀는 더 이상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그리며, 그 안에서 완성된 여성의 얼굴을 드러낸다.
배경의 푸른색, 회색빛 의상, 그리고 얼굴의 흰색은 파스텔의 섬세한 변주를 이루며 그녀 특유의 색채 세계를 완성한다. 그러나 이 색채는 단지 온화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1920년대 후반의 로랑생은 이전보다 더 정제된 명도 대비를 구사하며, 부드러움 속에 단단함을 새긴다. 푸른 배경은 인물의 얼굴을 더 환하게 떠올리게 하는 깊이의 장으로 작용하고, 흰 리본과 분홍빛 입술은 그녀 회화의 핵심 언어인 ‘여성적 표현’의 완성형이다. 로랑생의 색은 부드럽지만 결코 흐릿하지 않다. 온화함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의 투명함이 있다.
형태 역시 이전보다 훨씬 단순화되었다. 세밀한 묘사는 사라지고, 부드러운 면의 구성만이 남았다. 얼굴은 조각처럼 매끈하게 다듬어졌고, 머리카락과 배경은 경계가 흐릿하지만 일정한 리듬을 가진다. 전체적으로 평면적인 구성 속에서도 감정의 깊이는 오히려 더 살아 있다. 그녀는 더 이상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다. 감정을 조형화하고, 그 감정을 ‘형태’로 다스릴 줄 아는 단계에 도달했다. 이것이 바로 감정의 절제이자, 회화적 성숙의 증거다.
머리 위의 흰 리본은 로랑생이 스스로 남긴 서명과도 같다. 리본은 부드러움과 순수, 여성성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자기 꾸밈’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것은 남성의 시선을 의식한 장식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위해 선택한 아름다움이다. 1924년 자화상에서 꽃이 ‘내면의 회복’을 의미했다면, 1928년의 리본은 ‘자기 확립의 선언’이다. 그녀는 이제 타인의 눈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며, 스스로를 꾸미는 행위를 통해 자아를 완성하고 있다.
이 작품이 완성된 1928년, 로랑생은 이미 파리 예술계에서 확고한 명성을 얻은 화가였다. 전쟁과 망명, 아폴리네르와의 이별, 그리고 여성 예술가로서의 불안한 시작을 지나온 그녀는 마침내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했다. 하지만 이 자화상에는 화려한 자부심이나 과시가 없다. 오히려 그 속에는 깊은 고요와 평온이 자리한다. 그녀의 얼굴은 빛을 받지만, 그 빛은 외부의 조명이 아니라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빛이다.
1924년의 자화상이 ‘성공 이후 다시 자신을 찾는 초상’이었다면, 1928년의 자화상은 ‘자신을 완전히 획득한 초상’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회화의 언어를 통해 자신을 완성했고, 그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요를 손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