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미완의 언어 동화
서시
사람의 도리는 사람이라서 지켜야 하고
세상의 법은 최소한 지켜야 하듯
말과 글의 도리는 서로 마음을 나누려 지켜야 하고
말과 글의 법은 최소한 지켜야 하지
문법이란 어려운 게 아니라
마음을 나누려 최소한
지켜야 되는 하나의 규칙에 불과할 뿐.
1
아버지께 혼이 났어. 오후 햇살이 따뜻했지만 아직까지는 바람은 차가웠어. 어쩌면 차가운 소소리바람보다 찬 것은 내 마음일지도 몰라.
‘내일이면 개학인데, 하필 오늘 꾸중을 듣다니. 전부 그 녀석 때문이야.’
씩씩거리며 골목을 돌아 나오는데 나는 갑자기 뻥- 하고 터지는 소리가 깜짝 놀랐어.
일요일이면 골목 어귀에 자리 잡은 뻥튀기 할머니의 기계가 가스 불 위에서 돌아갔어. 옛날에는 장작을 패서 풍로를 놀리던 뻥튀기 장수가 시골 동네마다 돌아다녔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시곤 했어. 우리 동네 뻥튀기 할머니는 가스 불을 쓰시니 신식이라고 하셨지. 가끔씩 엄마랑 옥수수며 말린 떡가래를 가져다 튀겨 먹어.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일품이지. 일요일마다 골목 어귀에 자리를 잡은 할머니는 우리가 예쁘다며 옥수수, 쌀, 떡가래, 콩 뻥튀기를 한 움큼씩 주셔.
그런데 오늘은 기분이 엉망인데 할머니가 날 놀라게 하신거지.
“할머니, 깜짝 놀랐잖아요. 뻥이요∽를 맨날 먼저 하시더니.”
나도 모르게 할머니께 화를 내고 말았어. 그랬더니 뻥튀기 할머니가 되래 고함을 치시는 거야.
“아, 녀석아. 뻥이요∽를 하고 안 하고는 내 맘이지. 왜 니가 간섭이냐?”
“놀랬잖아요. 사람 나오는 데 갑자기 그러시니.”
“내가 니가 나오는 지 안 나오는 지 어케 아냐? 말도 아닌 소리 하고 자빠졌네. 녀석하곤.”
할머니 말에 슬며시 꼬리를 내리며 살짝 웃었지. 얘기 했지? 사실은 할머니랑 나랑은 꽤 친하거든.
다른 때 같으면 자루에 담긴 뻥튀기도 얻어먹었는데 오늘은 영 기분이 아니야.
난 할머니를 뒤로 하고 까뮈를 만나러 갔어. 까뮈는 말이 조금 어눌하고 피부색이 약간 검은 편이지. 왜냐고? 엄마가 베트남에서 오셨거든.
옛날에는 농촌에 다문화 가정이 많았데. 요즘은 옛 도심에도 외국인을 엄마로 둔 친구들이 많아. 우리 반에도 세 명이 다문화 가족 친구들이야. 엄마가 필리핀에서 온 까뮈, 중국인 엄마를 둔 예인, 베트남 엄마를 둔 원영. 반에서 조금 까부는 친구들은 여지없이 그 세 친구를 못살게 굴었어. 까뮈는 원래 이름은 영제야. 왜 까뮈라 불리냐구? 실은 우리 아버지랑 까뮈 아버지는 오래된 고향 친구사이야. 고향 친구끼리 같은 동네에 사는 것도 참 복이라고 늘 자랑을 하셨지. 그래서 아버지가 까뮈 별명을 지어 주셨대. 우리 아버진 말글손 작은도서관이란 곳을 운영하면서 말과 글을 연구하시지. 그게 뭔지는 잘 모르지만 말야. 도서관에서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면 늘 밖으로 강의를 다니시곤 해. 아버진 책을 많이 보셔서 그런지 말을 참 잘하시는 거 같아. 어쨌든 두 분은 꽤 친하셨대. 아버지랑 까뮈 아버지께서 술 마시다 농담을 한 게 발단이 돼서 까뮈 별명이 나왔다고 들었어.
“이봐, 친구. 유명한 <이방인>이란 작품을 쓴 알베르트 까뮈 알지? 제수씨가 필리핀에서 왔으니까 한국에선 이방인이잖아. 그러니 영제는 ‘까뮈’라 부르면 멋지겠다. 언젠가 멋진 작가가 될 것 같지 않나?”
“장난하나? 너 울 애가 피부가 검다고 놀리나?”
“아, 이 친구. 아니래도. 진짜 좋은 의미로 말한 거라니까.”
“의미는 좋은데 어감이 거 참. 애매하네…….”
뭐, 그렇게 두 분이 티격태격 하다가 영제를 까뮈로 불렀다고 하더라고.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방법은 없어.
우리가 4학년이 되던 해, 그러니까 작년에 까뮈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현장에서 일하시는 까뮈 아버진 늘 웃는 모습이셨는데, 그만 사고로 돌아가시고 말았어. 그 뒤로 까뮈 엄마는 혼자서 까뮈를 키우며 지내고 계시지.
난 까뮈랑 친해. 같은 동네에서도 자랐고, 어렸을 때부터 자주 만나니 자연스레 친해졌지. 까뮈가 조금 까맣고 말이 어눌해도 아무렇지도 않아. 우린 친구니까. 그런데 까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많이 조용해졌어. 말도 많이 없어졌고. 그래서 말이 더 늘지 않는 것 같아. 그래도 난 언제나 마음 깊은 까뮈가 참 좋아.
4학년이 되고 까뮈는 점점 더 소심해 지는 것 같았어. 그러니까 애들이 까뮈를 놀려먹느라 바빴지. 훈서는 그런 친구들이 너무 미웠어. 결국엔 참을 수 없는 일이 터지고 만 거야.
어제 동네 놀이터에서 까뮈랑 놀고 있는데, 반에서 제일 힘이 센 동우가 까뮈를 심하게 놀렸어.
“야, 까뮈, 넌 엄마가 필리핀 사람인데 영어도 못하냐? 우리 학원 필리핀 영어선생은 영어 잘하는데. 니네 엄마도 필리핀 사람 아이가? 아, 필리핀 깡촌에서 살아서 그러네. 초등학교도 못 나온 거 아냐?”
“........”
아무 말도 못하는 까뮈를 동우는 더 매몰차게 몰아쳤어.
“참, 병신 같네. 우리말도 못하고. 영어도 못하고. 새까맣게 거을린게 완전 튀기네. 너희 나라로 가라. 아버지도 없는 게.”
“야. 이동우. 너 그딴 소리 할 거야? 너도 아버지 없잖아.”
엉겁결에 튀어나온 말에 후회가 됐어. 힘센 동우에게 이길 자신이 없었거든. 그래도 한번 쏘아붙이고 나니 속은 시원하더라고.
“야 장훈서, 너 뭐라 그랬어?”
결국엔 동우와 내가 한판 붙고 말았어. 된통 터지고 말았지만 말이야.
토요일에 모임에 갔다가 늦게 오신 아버지께 오늘 혼나고 말았지. 남자 자식이 밖에 나가서 맞고 다닌다고. 아버진 늘 죽더라도 이기고 오라고 하시거든. 아버지께 혼나고, 동우에게 맞고, 멍청하게 말 못하는 까뮈를 생각하니 그냥 막 화가 밀어 오르는 거야.
“야 까뮈. 너 진짜 그 따위로 할 거야? 왜 말도 못해?
“미 미안. 그냥 아무 말도 하기 싫었어.”
“너 때문에 나만 혼났잖아. 아버지한테.”
“미안. 그, 그런데 괜찮아? Are you OK?"
" 그럭저럭. 야 그런데 배고프지 않냐? 집에 라면 있어? 라면 먹자."
2
그렇게 긴 겨울 방학이 지나고 개학날이 됐어. 이제 우리도 5학년이 된 거야.
월요일 아침부터 아버지의 세설이 시작됐어.
“빨리 일어나서 챙겨야지. 학교 지각할라.”
허둥지둥 일어나 시계를 봤지.
‘이런, 오늘 개학인데.’ 방학 내내 늦잠 자던 버릇이 결국에는 일을 내고 말았어. 서둘러 집을 나섰어.
“오늘 정훈이 입학식이라 엄마랑 학교 갈 거다. 마치고 도서관으로 오면 돼.”
“네, 나중에 뵐게요.”
서둘러 학교로 갔어. 나도 벌써 5학년이 된 거야. 내 동생 정훈인 장난꾸러기이자, 재미있는 말과 춤으로 가족들에게 웃음을 안기는 녀석이야. 동생도 벌써 1학년이 된다니. 시간이 참 잘 가는 것 같아.
3월인데도 날씨가 쌀쌀했어. 학교 앞은 학원과 학습지를 홍보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여. 멋진 정장을 입은 아저씨들과 예쁜 옷을 입은 이모들은 전단지와 사탕도 나눠주셔. 공짜니까 우리는 아침부터 횡재한 거지. 그래도 무거운 가방 메고, 전단지와 공책이 든 봉지를 서너 개 들고 나니, 영 불편한 건 사실이야.
‘쳇, 이제 공부도 많이 해야겠는 걸. 그래도 다행히 아버진 공부는 많이 안 시키니 다행이야.’
“까뮈, 기분 어때?”
“응, 훈서. 안녕. 같은 반 되니까 좋다.”
반달눈을 가진 까뮈가 날 보며 웃어.
“원영아. 안녕.” 친구들을 보니, 학교에 다니는 일도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원영이는 까뮈와 같이 3학년 때 우리 아버지와 함께 하는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같이 했던 친구야. 다문화가족이다 보니 부모님들이 서로 마음이 맞았나 봐. 우리말도 더 많이 할 기회를 가지고, 문화도 좀 잘 알길 바래서 아버지께 부탁했다고 들었어. 까뮈, 원영, 예인와 나, 그리고 내 동생 정훈이까지 우린 아버지와 함께 다양한 체험 학습을 다녔다. 산에도 오르고, 계곡에 가서 가재도 관찰했다. 미술관에서 석고체험도 했다. 서로 힘을 합해 환경 신문도 만들고, 글쓰기 대회에도 나가서 상도 받았어. 같이 뛰어놀고 활동하다보니 더욱 친해진 친구들이었지. 엄마가 다른 나라에서 온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어. 늘 뭉쳐 다니니 다른 애들도 쉬이 놀리진 못했지. 하지만 아버지가 바빠져서 4학년 때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반도 달라지면서 조금은 서로에게 멀어지기도 했고. 5학년이 되면서 우린 다시 같은 반이 되었어. 좋은 친구들과 한 반이 된다는 건 맛있는 된장국을 먹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잖아.
교실 뒤쪽에 자리가 비어 있었어. 종이 울려, 얼른 자리에 앉았지. 키 작은 나는 아마 나중에 앞자리로 옮겨야 할 것 같아. 지금까지 계속 그랬으니 말이야. 선생님이 들어오셨어. 이번에 새로 오신 선생님이셔. 선생님은 이름과 전화번호를 칠판에 크게 적으셨어.
“여러분, 반가워요. 제 이름은 권 영미에요. 일 년 동안 여러분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노란 머리칼이 어깨를 넘어 내려온 하얀 얼굴의 여자아이가 들어왔어.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지. 난리가 난거야.
“훈서야, 미국 아이다.” 까뮈가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어.
“그러게. 우와, 우리 학교에 미국 아이가 전학을 왔네.” 노랑머리의 외국 아이의 등장에 교실은 들썩이기 시작했어. 가만히 보니 꽤 귀여웠지.
“넌 아버지가 영어 가르치니 너도 영어 잘하지? 나중에 영어로 얘기해봐.” 원영이가 씩 웃으며 말했어.
“난 영어 잘 못해.”
하지만 속으로 이야기를 걸고 싶은 욕심이 살짝 생겼지.
“그레이스, 세이 헬로 투 유어 프렌즈, 플리즈.” 선생님은 그레이스를 보며 다정히 말했다.
“예스, 맴, 땡큐”역시 미국아이의 발음은 좋았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 미쿡 왔어요. 한쿡 온 지 육개월 됐어요.”
의자 끝에 간당간당 앉아 있던 나는 깜짝 놀라 넘어질 뻔 했어.
‘우와, 우리말을 정말 잘한다. 그런데 우리말이 진짜 우습다.’
“I'd like to be a good friend with you all. Thank you.(저는 여러분과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요)" 그레이스의 인사는 짧게 끝났어.
‘좋은 친구?’
말이 무척 빨랐어. 다 알아 듣지는 못했지만 그레이스의 인상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어.
“Grace, take your seat over there, please." 선생님이 손을 내밀어 내 옆자리를 가리켰어.
‘이런, 그레이스가 내 짝지가 되다니…… .’
얼굴은 붉어지고, 이마엔 땀이 송송 맺혔다.
“그레이스는 아버지가 마산에서 일하시게 되어서 가족과 함께 왔어요. 그레이스처럼 외국 학생이 우리나라 일반 학교에 다니는 경우는 아주 드물어요. 또, 그레이스는 아직 한국말이 서투니 많이 도와주고, 잘 챙겨 주면 좋겠어요.” 선생님은 몇 가지 안내사항을 전달하셨고, 이내 쉬는 시간이 되었어.
“Hi, My name is Grace. And yours?"
갑작스런 인사에 너무 당황했다.
“하, 하이. 훈서. 장 훈서.”몽그작거리며 겨우 말을 이었다.
집에서 아버지랑 몇 마디 나누는 것과는 완전 딴판이었어.
“만나서 반가워요.”어색하지만 우리말을 하는 그레이스가 귀여웠다.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내 자리로 몰려들었어. 정확히 내가 아니라 그레이스에게. 한바탕 왁자지껄 소란을 피운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고, 방과 후 교실로 학원으로 뿔뿔이 흩어졌어. 나는 아버지 도서관으로 향했다. 교문을 나서는데 그레이스가 쫓아왔다.
“훈서, Wait! Come with me."
그레이스와 나란히 걷는 것이 나쁘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겪은 가장 난감한 순간이었어.
“어디에 너 살아요?”우스꽝스러운 우리말이 정말 웃겼어. 나도 모르게 쿡쿡 웃음이 났지.
“What are you laughing at?" 의아한 듯 묻는 그레이스가 깜찍했어. 하지만 그레이스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순 없었어.
“뭐라 했노?”
“뭐라 했노?”
그레이스는 내 말도 우스꽝스럽게 따라했다. 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우린 그냥 걸었지. 육교를 건너, 나는 도서관으로 갔어.
“나 가야돼. 안녕.”
“You have to go? I hope……. Bye. See you."
바람에 날리는 그레이스의 노란 머리칼을 잠시 바라봤어.
‘이상하다. 같은 영어인데 왜 다르지?’
영어를 사용하는 까뮈 엄마 영어랑 뭔가가 조금은 다른 느낌이 들었어. 물론 까뮈가 쓰는 영어도 뭔가 조금은 다른 느낌이야. 끔 까뮈 엄마를 만나면 까뮈 엄마는 영어로 말씀을 하셔. 그런데 까뮈 엄마 영어, 그러니까 까뮈가 하는 영어랑 그레이스의 발음이 조금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거야. 꼴똘히 생각을 해봤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길을 건너려는데 자동차의 경적이 울렸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그레이스를 생각하며 계단을 오르다가 피식 웃음이 났어.
3
“오, 훈서. 왔나?” 아버지는 화분에 여러 식물을 심고 계셨어.
“뭐 하세요?”
“응. 봄단장 좀 해야지. 도서관 분위기도 시원하게 살리고. 친구들이 놀러오면 녹색식물이 있으면 좋잖아. 하하하.”
“훈서야. 오늘 정훈이 입학식 멋지게 잘했다. 정훈인 2반인데, 넌 몇 반이니?”
정훈이에게 책을 읽어주던 엄마 말에 난 엉뚱한 말이 나오고 말았어.
“아, 예, 오늘 완전 대박 사건이 있어요. 미국 여자애가 우리 반에 전학 왔어요. 노란 머리에 갈색 눈인데요. 키는 저보다 조금 크고. 그리고 제 짝지에요. 영어도 잘하고, 우리말도 엄청 잘해요. 아버지 따라 왔다는데, 그리고……”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내 말에 엄마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뭐? 진짜? 미국애가? 와! 훈서 완전 좋겠네. 그래, 영어로 말은 해 봤어? 정훈아, 형아 짝지가 미국 애래.”
“아이쿠! 참. 당신도 너무하네. 좀 천천히.”
아버지도 내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듯 끼어들었다.
“그래, 훈서야. 미국 친구가 반에 들어오니 좋니?”
“그럼요. 어른 외국인은 가끔 보지만, 어린이는 처음 보거든요. 아버지가 만나서 이야기 해볼래요? 뭐라고 하는데 잘 못 알아듣겠어요. 그리고 우리말도 아주 우습게 해요.”
“그렇구나. 미국아이가 우리말 하는 게 우습게 들렸구나. 맞아. 아마 우리 영어도 그들에겐 이상할 걸.”
아버진 알 수 없는 말을 했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잘 생각해봐. 까뮈나 원영이, 예인이가 하는 우리말이 뭔가 조금은 다르지 않던?”
“그건 엄마가 다른 나라에서 왔으니 말이 섞여서 그런 거 아니에요?”
“맞아. 소리란 민족의 고유한 정서를 담고 있는 거야. 우리나라도 각 지역별로 말투가 다 다르잖아. 심지어는 단어도 다르고. 소리란 그렇게 민족의 특성을 나타내는 거야.”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냥 책이나 볼래요.”
난 의자에 앉아 책을 잡았어. 얼마 전부터 읽고 있는 동화인데 꽤 재미있어. 작가가 누구냐 하면, 바로 우리 아버지야. 내가 말 안했나? 아버진 여러 곳에 강의도 다니지만 작가야. 동화도 쓰고 시나 수필도 써. 그래도 늘 돈이 없다고 우는 소리를 하시긴 하지만.
“훈서야. 아버지가 잠시 이야기 해줄게 있는데…….”
“뭐에요?”
“소리의 차이 말이야. 가수들이 목이 잘 쉴까? 아닐까?”
“가수가 목이 쉬면 가수 못하잖아요. 콘서트를 한두번 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머뭇거리가 엄마가 옆에서 거들었어.
“당연하지. 가수가 목이 쉬면 가수 못하지. 그래서 가수들은 목으로 소리를 내지 않고 배로 숨을 쉬고 내뱉지. 그런 호흡을 우린 복식호흡이라고 해. 가수들이 목이 잘 쉬지 않는 것처럼 서양인들도 목이 잘 쉬지 않아. 그 이유가 바로 호흡의 차이에서 오는 거지.”
“어? 우리는 고함 좀 치고 노래 크게 부르면 금방 목이 쉬는데. 도대체 호흡의 차이가 뭐죠?”
“우리 한국소리는 낱글자 모두를 정확하게 발음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 그래서 소리가 끊어지는 느낌이 나지. 그런데 영어는 굉장히 빠르게 들리잖아. 말 그대로 숨을 한번 들이쉬고 내뱉는 동안에는 호흡이 끊어지지 않지. 마치 가수들이 노래 부르는 것처럼.”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
“어떤 차이가 있단 말이죠? 도통 모르겠네.”
“그럼 이 영어를 읽어봐.” 아버진 스케치북에 영어를 썼다.
<Do you understand what I mean?>
“두 유 언더스탠드 왓 아이 미인?” 나는 최대한 영어 발음을 살려서 읽었다.
“내가 한번 읽어볼게. 쥬언드스땐와다이미인? 차이가 느껴지니?”
“아버지 발음은 빨라요.”
“단순히 빠른 게 아냐. 넌 두. 유. 언더스탠드. 왓. 아이. 미인? 하고 끊어 읽었고, 난 그냥 숨을 한번 내쉴 때 전부 소리 냈지. 그게 차이야.”
“아, 머리 아파.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또, 의미 전달을 잘 하려면 중요한 소리는 강하게 해줘야해. 그걸 단어에서는 강세(accent)라고 하고, 문장에서는 억양(intonation)이라고 하는 거야. 그것만 잘 지켜도 영어 발음이 굉장히 좋아지지. 열심히 연습해 봐.”
아버지는 일장연설을 끝내고, 나가셨어.
“어디 가요? 애들은 제가 데리고 갈까요?” 엄마도 가방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섰지.
“나 오후에 강의가 있어. 먼저 간다. 나중에 봐요. 다들. 참 훈서는 까뮈한테 한번 가보고.”
‘참, 까뮈를 깜빡하고 있었어. 까뮈 혼자 집에 있을 건데.’
“아버지, 까뮈 도서관에 놀러오면 안돼요?”
“되지. 왜 안돼? 오늘은 안되고. 조금 있으면 까뮈하고 전에 친구들 다시 수업할 거야. 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