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지방 법원의 판사와 약속을 잡은 날의 새벽, 나는 꿈을 꾸었다. 처음 보는 어느 정육점 안, 차갑고 무거워 보이는 은색 스테인리스 선반 위의 하얀 플라스틱 도마에는 죽어서 축 쳐진 소가 사지를 벌린 채 누워있었다. 이미 배는 갈라져서 내장을 다 쏟아낸 소는 끈적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이를 차갑게 바라본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것 같아 보이는 나는, 흰색 비닐로 된 앞치마를 두른 채 날카롭고 무거운 칼로 그 소를 도축하기 시작했다. 칼이 뼈에 걸리며 살이 잘려 나가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놀라서 눈을 떴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다시는 잠들지 못한 채, 그대로 뒤척이며 새벽을 맞았다.
이제 시간은 새벽 3시. 다시 잠이 오지 않는다. 부엌으로 들어가 정수기에서 나오는 차가운 물을 한 잔 마시고, 거실 소파에 앉아 아직 어두컴컴한 창밖을 바라본다. 20층의 아파트 창문에서 내려다 보이는 왕복 10차선 넓은 도로에는 간간히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들이 달리고 있다.
나는 한국 본사가 베트남에 세운 식품 제조 회사의 법인장이다. 40대 후반, 아내와 두 아들이 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평범한 회사의 관리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평범한 대학, 평범한 회사, 평범한 직장인. 그래서인지 아내에게 이런 말을 종종 했다.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힘든 거래.” 그렇게 별다를 것 없는 그러한 삶. 그러다 7년 전, 베트남으로 발령받아 나오게 되었다.
매출이 워낙 적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 회사였기 때문에 내가 나오기 전에 이 법인을 경험했던 8명의 영업 또는 제조 출신의 법인장들은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1~2년 안에, 짧게는 수개월만에 퇴사를 하거나 또는 퇴사를 당해야만 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친한 회사 직원들은 내가 베트남으로 나가는 것을 만류하기도 했었다.
회사로부터 주재원 파견 제안을 받은 뒤 많은 고민을 하였지만, 발령 전 잠시 나왔던 보름 간의 베트남 출장을 마치고 나서 결국엔 힘들고 어렵다고 소문난 이곳으로 나오기로 결정했다. 운명이 나를 이끄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또 어려운 여건에 있는 회사이기에 나같이 젊은 사람이 책임자로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아니겠냐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한국에서 답이 뻔하게 보이는 평범한 중간 관리자로 계속 남을 바에는 이렇게 인생의 큰 변화를 선택해서 한번 나의 삶이 어떻게 되는지 운명에 맡겨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해외 생활을 시작하여, 최근 몇 년 동안 회사의 매출도 많이 증가시키고, 이젠 베트남의 동종 업계에서도 이름을 알리고 있는 중이다. 이런 식으로 운 좋게 나의 모든 상황을 반전시켜 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베트남에 현지법인이 생긴 이후 최장수 법인장으로서 벌써 7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다. 처음 베트남에 나오면서 기대했던 대로의 꿈을 실현하고 있는 중이었다. 평범한 중간 관리자가 아닌, 주목받는 경영자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지금, 뭔가 어려운 상황이 다가오는 것 같다는 직감을 한다. 운명이 그리 쉽게 삶을 이끌지는 않는 것이다. '이제 꿈을 깰 때가 된 것인가?' 오늘 새벽의 이 꿈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평상시의 꿈이란 그저 그런 꿈에 불과하지만, 어떤 날은 몸서리치게 무서워지기도 한다. 그저 그런 꿈이 아닐까 봐 말이다. 마음 한편으론, 꿈으로 어떤 중요한 것을 감지하는 때가 있다고 믿어지기도 한다. 일반적인 아무 의미 없는 꿈이 아니라 특별한 의미가 있는 꿈을 꾸는 때가 있다. 오늘처럼 나는 가끔 기억에 남는 뚜렷한 꿈을 꾼다. 물론, 꿈이란 무의식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에 더 무게를 두려 한다. 대개의 경우엔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잊히지 않는 종류의 꿈이 있다. 20년전쯤 대학교를 졸업하고 막 취직했을 무렵, 하루는 꿈에서 커다란 목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너에게 알려주고 싶은 삶의 교훈이 있는데 한마디로 할 수는 없다. 사사기에서 역대하까지를 읽어라."라는 요지의 얘기 또는 느낌을 받고서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고는 바로 다시 잠들었다. 너무 피곤했나 보다. 그 뒤, 아침에 깨어났을 때 침대 옆 책상에 놓여있는 종이 위에 적혀있는 글자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사사 ~ 역대하" 내가 새벽에 잠깐 일어나서 비몽사몽간에 아무렇게나 연습장에 갈겨 적어둔 글자였다.
이 꿈을 꾸었던 그 당시에 나는 성경책의 순서를 모르고 있었다.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다. 혹시 이전에 교회의 설교시간에 듣고 머릿속 어딘가 무의식 공간에 저장되어 있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당시에 의식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성경의 순서를 모르고 있었다. 정말로 ‘사사기’가 앞에 있고 ‘역대하’가 그 뒤에 있다면, 그 꿈엔 분명 의미가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성경을 펼쳐 확인했고, 실제로 그렇게 적혀 있었다.
‘사사기-룻기-사무엘상-사무엘하-열왕기상-열왕기하-역대상-역대하’라는 순서대로 성경책의 차례가 나열되어 있었고, 신기한 마음에 어머니에게 바로 얘기했다. 어머니는 또 출석하던 교회 목사님께 이 얘기를 전달해서 괜히 내가 부끄럽던 기억도 있다. 설교시간에 목사님이 이 이야기를 언급하며 날 불러일으켜 세웠던 것이다.
'종교적으로 뭔가 의미가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확실히 ‘실제로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 당시, 여러 달이 걸려 해당되는 부분의 성경책을 꼼꼼하게 읽어보았지만, 사람 이름들만 잔뜩 나오는 장면들이 많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역사 이야기였다. 읽고 나서도 이 긴 이야기를 읽었다는 것에 뿌듯하긴 했지만 별다른 느낌이나 계시 같은 것이 있지는 않았다. 그 후에도 나는 이 이야기를 스스로 기억하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말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내가 그전에 들은 설교나, 혹은 읽었던 어떤 책의 내용이 무의식 중에 꿈의 형태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아닌가?' 그래 어쩌면 아닌 그런 이야기면 좋겠다.
오늘 오전 내내 어젯밤에 꾼 내가 소를 잡고 있던 꿈의 내용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왠지 기분이 좋지 않다. 스마트폰을 통해 검색해 본 결과, 소를 도축하는 꿈은 재물의 손실을 예견하는 꿈이라고 한다. 괜한 꿈을 꾼 것 같다. 아니, 괜히 검색해 본 것 같다. 다른 생각으로 이 이야기를 없애 버리고 싶다. 나는 T 지방 법원의 복도에 앉아있고, 나와 약속을 잡은 판사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출근하질 않고 있다. 직원들은 심각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마음이 어지럽다.
법원 대기실에서 성경책을 펼쳤다. 이 일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남기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20년 전에 꾸었던 성경에 대한 꿈을 다시 떠올렸다. 떨리고 무거운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성경 어플을 실행시키고 '사사기'를 찾아 읽기 시작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께 물었습니다." 사사기의 시작 구절이다. 나도 하나님께 묻고 싶었다. "하나님, 이 일이 대체 무엇입니까?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아뇨, 하나님, 이 사건을 해결해 주세요. 제발 그냥 아무 일도 아닌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