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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데이나 Apr 24. 2024

두바이에서 홍수를 만날 확률

두바이 2년 차에 만난 기록적인 비

내가 사는 이곳은

1년 강수량이 200mm도 안되는 사막도시 두바이다.


두바이에서 비가 와봤자지 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 화요일, 100mm가 넘는 비가 번개와 돌풍을 동반하여 쏟아졌다. 75년 만에 기록적인 비라고 한다. 이번에는 한국 태풍 저리 가라 하는 날씨다.


한국에서야 매년 장마와 태풍으로 장대비가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이곳은 가랑비에도 물이 찰 정도로 배수구 수가 적은 곳이다. 비가 그만큼 안 오는 곳이니 필요성도 못 느꼈을 터, 아무도 75년 동안 이렇게 큰 비가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어째 전날부터 하늘이 심상치 않다


비도 오기 전날부터 이미 정부와 교육청의 지시로 학교는 휴교가 결정되었다.


아... 라마단기간이라 2주간의 단축수업이었지, 3주간 봄방학에, 일주일간 휴일이었지, 거의 5주 만에 정상수업으로 돌아왔는데, 단, 하루 만에 다시 휴교라니.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그래, 비 올 때 괜히 나갔다가 물웅덩이를 만나는 것보다야 집에 있는 게 낫다 싶었다. 도시락은 안 싸도 되는 게 어디인가. 새벽 기상도 없으니 그걸로 족하다.



그리고 새벽 5시. 


드디어 거센 비가 내렸다. 이때만 해도 빗소리가 시원하니 좋기만 했다.



아이들 온라인 수업을 켜주고, 마트 주문을 하려 하니 배달일이 틀뒤로 나온다. 한국마트 못지않게 당일 배송이 되는 이곳인데, 비가 많이 오긴 했나 보다.

휴교가 제일 무섭다


해도 뜨길래, 이 정도 가지고 왜 이리 호들갑인가 싶긴 했다. 한국 장마 출근길   보면 정말 기절하겠다 했는데 이게 웬걸, 오후 2시경 하늘이 뿌연 녹색 구름에 가려지더니, 야자수가 요동치고 비가 한국 태풍 저리 가라로 많이 왔다.


짚 앞 호수는 물이 넘쳤고 화단은 웅덩이가 된 지 오래다. 남편이 출근했다면 걱정이 될 날씨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편은 출장 중이었다.



오후 4시경. 


또 비가 그치고, 슬슬 비가 개는 분위기에 먹을거리라도 사서 오자 하고 10m 앞 길 건너 마트를 가기 위해 물을 건넜다.  앞에 마트가 있는 게 이리 고마울 수가.

마트가는 길도 물바다가 되었다.

계산하고 나오는 짧은 10분 사이 또 비바람이다. 5분도 안 되는 거리였는데 나는 오랜만에 비를 쫄딱 맞았다. 두 녀석은 물놀이라고 신이 났지만  나는 아이들이 날아갈 것 같아 두 아이 손을 꼭 잡고 얕은 물을 건넜다.  나 사막도시에 있는 거 맞나? 한국 장마철로 돌아온 기분이다.


아이들 숙제는 또 왜 이리 많은지, 숙제 챙기랴, 비는 안 새나 챙기랴, 배달도 안되니 애들 밥 하랴 정신이 없었다. 또 뉴스가 없으니 인스타그램에 의존해 길은  괜찮은지, 진짜 어디도 나갈 수 없는 건지 계속 체크를 했다. 우리 집은 다행히 물이 새지 않았지만, 차는 나갈 수없을 만큼 집 앞 도로에 물이 찼다. 두바이 비를 만만히 본걸 후회했다.



저녁 6시.


이제 끝났나 했지만, 왓츠앱 학교 단톡방에 따르면 한  더 비바람이 온다 했다. 인공강우인지 실제 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 예보는 기가 막히게 잘 맞는다. 예보에 걸맞게 어마무시하게 비가 내렸다. 두바이 사람이 다 된건지,장마에 단련된 나도 이젠 덜컥 겁이 났다.


퇴근길이라 길에는 차와 물이 뒤섞여 난리도 아니었다. 셰이크 자이드 로드라는 이곳의 올림픽대로에 차를 버리고 간 사람들이 다수라 했다. 슈퍼카들도 비에는 별수가 없나보다.

침수된 자동차들


그리고 휴교는 금요일까치 연장되었다.



다행히 비요일 새벽에 멈췄다. 하지만 이런 비의 경험이 없던 두바이는 난리가 났다,


이랬던 길이
이렇게 되었다


도로는 호수되었고, 화단에는 물고기가 헤엄쳤고, 저지대 빌라는 물이 찼다.


지하철, 버스, 비행기는 모두 취소되었고, 한국에출발한  비행기는 두바이 상공에서 3시간 대기 후 근처 오만공항으로 비상착륙을 했다. 



믿을 수 없지만,

비로 두바이의 모든 것이 멈췄다.


일년치 일을 다 해내는 펌프카


배수구대신 펌프카들이 쉴 새 없이 돌아다니고, 두바이의 뜨거운 태양이 물을 말렸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UAE의 다른 도시 샤르자와 두바이 남쪽은 여전히 물로 길이 막혀 있다. 사막이었던 곳은 호수가 있는 풀이 무성한 초원이 되었다.

초원인가 사막인가


출장을 갔던 남편은 돌아오는 비행기가 취소되어 에미레이츠 항공기를 타고 겨우 토요일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월요일.

드디어 아이들은 학교에 갔고, 두바이 기온은 35도를 웃돌며 바로 여름이 되었다. 두바이에선 일어나기 힘든 일주일이었지만, 또 모두들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사막도시에서 산지 1년만에, 홍수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두바이에 살면서 참 별일을 다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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