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도시의 물 이야기
혹시 물은 잘 나오나요?
내 머릿속에 '두바이=사막'이었으니, 이곳은 당연히 물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물은 잘 나올지 걱정이 되어, 먼저 두바이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두바이의 물을 물었다.
"물은 잘 나오는데, 가끔 찬물이 안 나오고, 미지근한 물이 나와요."
예상했던 답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물이 부족하지는 않다는 대답에 마음이 놓였다. 뜨거운 물이 안 나오던 경험은 한국에서도 몇 번은 있었지만, 차가운 물이 안 나오는 경험이라니. 하여간 두바이는 예상이 늘 빗나가는 곳이다.
두바이에 도착한 첫날. 피곤한 몸으로 샤워를 하면서, 콸콸 나오는 따뜻한 물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수많은 걱정 중 하나였던 씻는 물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싶었다. 두바이는 사막도시이지만, 바닷물을 식용과 생활용으로 만드는 담수화 기술로, 물의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부엌에서의 물은
걱정을 좀 해야 한다.
모르는 게 약이었을 텐데. 한국에서처럼 주방 수도꼭지에 필터를 달았더니,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필터가 흙빛이 되었다. 한국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필터색이다. 녹물이었다면 지어진 지 10년 정도 된 이 집의 문제인가 싶겠지만, 필터에 남는 것은 녹이 아닌 진짜 흙모래였다. 두바이는 사막에서 물을 만드는 기적은 해냈지만, 이 모래들까지는 어쩔 수가 없었나 보다. 두바이에 오기 전 정수기를 사 와 필터만 셀프로 교체해 볼까 고민했던 게 우스웠다. 여기서 정수기를 썼다가는 필터가 모래로 꽉 차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두바이는 생수를 사 먹는 게 기본이다. 국 끓일 물이나, 야채, 과일을 씻는 것도 수돗물이 아닌 생수를 이용한다. 그래서 로우 소디움, 제로 소디움, 미네랄 워터, 드링킹 워터등 성분과 추출방식으로 분류된 다양한 물들이 현지 브랜드인 알아인, 마사피, 오아시스부터 에비앙, 볼빅 같은 해외브랜드들의 이름을 달고 마트에 즐비해 있다. 레스토랑에서도 싸게는 3천원, 비싸게는 만원이 넘는 물까지, 돈을 내고 생수를 먹어야 한다. 두바이에서 "물 더줄까?"라며 친절하게 묻는 종업원들의 호의에 계속 Yes를 외치다가는 계산서를 보며 깜짝 놀랄것이다.
나는 처음엔 1.5리터 물들을 매번 마트에서 사 오다가, 물이 줄어드는 속도가 사 오는 속도보다 빨라, 5 갤론짜리, 회사 다닐 적 보던 그 파란 투명통 생수를 2통, 주 1회 정기 배달로 먹기 시작했다. 5 갤론의 물이 11.5 디르함, 약 4천5백 원이다. 한 달 물값이 3만 6천 원 정도이니, 한국 얼음 정수기 렌탈값과 비슷하다.
그 생수통 위에 졸졸졸 나오는 워터펌프를 꽂아 생수를 끌어올린다. 특히 밥을 하려고 쌀을 씻을 때면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없지만, 흙빛 필터를 보며 차마 수돗물로 쌀을 씻거나 국을 끓일 수는 없다. 두바이살이 3년차인 나의 타협은 야채나 과일은 수돗물로 씻되, 꼭 마지막은 졸졸졸 생수물로 헹군다. 이 펌프를 단 생수통은 부엌 인테리어를 망치는 주범이기도 하지만, 버릴 수 없는 두바이 우리집 필수품이다. 수돗물까지 그리울 줄이야. 특히 상추를 씻을 때마다 수돗물에 콸콸 씻던 한국의 주방이 생각난다.
나의 이런 물걱정과는 상반되게, 아이들은 물이 모자랄 때마다 학교 급수대에서 물을 먹는다. 과연 깨끗한 물인가 하고 의심을 거둘 수는 없지만, 그래, 배탈 한번 안 나는 게 어디냐. 흔한 물갈이조차 없었다. 진짜 잘 걸러진 물이거나 아니면 아이들은 모래도 씹어먹을 수 있는 나이라는 말이 맞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건 그냥 모르고 싶다. 해외살이에서 때로는 모르는 게 정말 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