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카프리에 갓 다녀온 내게 이런 난장판은 견디기 어려웠다. 아무리 걸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요 상점가인 비아 로마에 도착했고, 상점들은 대게 예뻤지만 역시 인파와 쓰레기로 넘쳐나서, 이를 피해 걷다 보면 보도를 벗어나 차량이 너무 많은 도로로 들어서기 일쑤였다……
땀으로 범벅이 되고 발에는 물집이 잡힌 채, 나는 방금 내가 횡단한 도시를 돌아보며 이곳에 한번 더 기회를 줘볼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대신에 또다시 택시 기사 스물일곱 명을 손사래로 물리치면서 역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피렌체 행 표를 샀다. 설마 여기보다야 낫겠지.
-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중에서
작가 빌 브라이슨은 390 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유럽 여행기에서 나폴리는 단 8페이지 만을 할애하였습니다. 심지어 첫날 나폴리에 크게 실망한 그는 바로 다음날 카프리로 떠나버렸고 카프리에서 돌아온 날 실망 만을 다시금 확인한 채로 피렌체 기차에 오릅니다. 괴테가 말했습니다.
나폴리를 보고 죽으라
그러나 그는 아마도 나폴리를 더 보다간 죽을지도 모른다고 느꼈나 봅니다.
안타깝게도 위에 그가 묘사한 저 모습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나폴리의 한 모습입니다.
명성보다 악명이 더 높은 도시, 넘쳐나는 쓰레기, 소매치기, 날치기, 낡은 건물들….
이탈리아 사람들 조차 나폴리에 들어설 땐 결혼반지부터 뺀다는(훔쳐갈 까 봐….;;) 나폴리입니다.
그런데 이런 악명에도 불구하고 나폴리에는 설명할 수 없는 매력에 이끌려 발걸음을 하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그런데 또 조상덕에 관광객 때문에 먹고사는구나라고 보이지도 않는 건, 맛있다는 식당에 가면 어째 관광객보다 나폴리 사람들이 더 북적이니 말입니다. 오히려 나폴리의 현재 상황을 비춰본다면 이 곳에서 삶의 터전을 삼고 있는 이들은 우울해 마땅함에도……이 땅의 풍요로움과 태양 그리고 바다는 이들을 우울하게 내버려 두지 않나 봅니다. 마치 그냥 나폴리에 산다는 것에 취해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만 같습니다.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만약 빌 브라이슨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다면 꼭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이 나폴리를 횡단하다 땀에 범벅이 되고 발에 물집이 잡혔을 때 곧장 기차역으로 향하지 않고 감부리누스(caffe gamburinus)에서 커피 설탕 크림과 카카오 가루를 마구 뿌려주는 커피에 럼에 절인 바바(baba)를 맛보았다면 당신은 절대 나폴리를 떠나지 않았으리라고. 다시 발걸음을 돌려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면 진짜 나폴리를 만나게 되었을 거라고….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슬퍼졌습니다. 깨어나자마자 나폴리에서 마셨던 에스프레소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아니,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나폴리라면 치를 떨던 이탈리아 친구가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고 2시간을 달려 나폴리에 도착해 커피 한잔을 마시고 로마로 돌아왔노라 이야기해주었던 밤, 이게 무슨 허세고 객기냐 웃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당장 기차표를 끊고 나폴리로 달려가고 싶었습니다.
어제는 당신도 함께 나폴리에 계셨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직 먹거리를 사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북적거리는 모습과 소음을 제 평생 본 적이 없습니다.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이들이 사시사철, 날이면 날마다 과일을 재배할 수 있는 축복받은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데 생각이 미칩니다.
나폴리는 천국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 도취된 듯한 자기 망각 속에 살고 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자신을 좀처럼 인식할 수가 없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어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는 옛날에 미쳤거나 아니면 지금 미쳐 있다.'라고…
– 괴테 이탈리아 기행 중
로마에서 2시간을 달리면 나폴리에 도착합니다. 일요일에 좋은 날씨까지 더해지면 도시는 인파로 북적입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갤러리아 움베르토 1세로 향합니다. 그곳의 작은 귀퉁이 조그만 제과점, La sfogliatella Mary에 발을 멈춥니다.
바로 바바와 스폴리아텔라 리챠를 맛보기 위해서입니다. 이탈리아에서 디저트를 돌체(dolce)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달콤함입니다. La dolce vita, '달콤한 인생' 그 달콤함을 언어가 아니라 음식으로 표현해 달라면 바바(baba)를 안겨줄 겁니다.
바바는 19세기 폴라드 왕에 의해서 처음 이름이 붙여지는데 그가 좋아했던 아라비안 나이트의 알리 바바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를 처음 개발했던 프랑스 제빵사의 레시피가 나폴리로 오게 됩니다. 고대 로마가 몰락하고 나폴리는 노르만족, 신성 로마 제국, 프랑스 앙주 왕가, 스페인 아라곤 왕국, 스페인 부르봉 왕가와 사르데냐의 사보이 왕가로 이어지는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 지배자들은 나폴리의 전통과 요리 레시피들을 제대로 남기지 않았다고 하나, 그 와중에 남은 레시피가 이 바바였다고 합니다.
이스트에 발효시킨 반죽을 원통형 컵에 담아 구운 후 럼을 넣은 설탕시럽에 절입니다. 빵이 부풀어 오른 모양 마치 물에 불은 초코송이 같습니다. 촉촉하고 끈적하며 부드럽고 강렬한 하나의 맛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이 맛은 그냥 딱 유쾌한 나폴리 사람들 같습니다.
그리고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이 집의 명물 바로 스폴리아텔라 리챠(sfogliatella riccia)!!!
나폴리에서 더 아래로 아말피 해안길의 절벽 꼭대기에 위치한 작은 마을 콘카(Conca), 스폴리아텔라 리챠의 공식명칙은 스폴리아텔라 디 산타 로사(sfogliatella santa rosa)입니다. 이 마을에 위치한 산타 로사 수녀원의 한 수녀님이 17세기 초반에 개발합니다. 달콤한 리코타 치즈로 속을 채우고 반죽의 결을 살린 패스트리인데 마치 조개를 연상시키는 모양입니다.
1800년대 나폴리의 유명 제빵사 파스쿠알레 핀타우로가 이 조리법을 손에 넣고 지금은 전통 나폴리 과자가 되었습니다. 9년 전 남편과 아말피 도시들을 여행할 때 이 돌체를 맛보고 싶어 절벽 꼭대기 수녀원을 찾아갔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수녀원은 문을 닫고 호텔로 탈바꿈하기 위해 공사 중이었고 아쉬운 대로 아래 마을로 내려가 스폴리아텔라를 맛보았지만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후 이 돌체는 저에게 그 어떤 기대감도 주지 못했는데, 햇살이 비추는 모퉁이 작은 제과점에서 갓 구워져 나온 스폴리아텔라는 이를 맛본 것 만으로 나폴리를 온 충분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바삭하게 씹히는 패스트리와 완벽하게 달콤함과 담백함을 조화시키며 스며 나오는 따뜻한 리코타 치즈라니!!!!
갤러리아를 빠져나와 플래비쉬토 광장(piazza del plebiscite)으로 향합니다. 돌체를 먹었으니 에스프레소를 안 마실 수 없죠. 광장의 오른쪽 1860년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나폴리의 이정표, 감브리누스 (gran caffe gambrinus)에 멈춥니다.
들어서자 진한 커피 향과 커피를 만들고 서빙하느라 분주한 에너지가 카페를 가득 채웁니다. 나폴리 특유의 수동 레버 커피머신에서 쉴세 없어 뿜어져 나오는 증기 너머로 장인의 포스로 커피를 뽑고 계시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습니다. 19년 전 아르바이트하던 카페에서 처음 들었던 바리스타,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는 백발이 되어서 커피를 뽑는다는 이야기는 상상 속 동화 같은 이야기만 같았는데……그 백발이 되어도 커피를 뽑는 이가 제 눈앞에 서있었습니다.
이 곳에서 커피를 주문할 땐 꼭, 카페 스트라파짜토(caffe strapazzato)라고 소리칩니다. 에스프레소를 뽑을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제일 진한 커피 액에 설탕을 넣고 머랭 치듯 저어주면 놀랍게도 거품이 일며 말 그대로 커피크림이 만들어집니다. 증기로 데워진 잔에 커피크림을 한 스푼 넣고 그 위에 에스프레소를 뽑은 후 카카오 가루를 듬뿍 뿌려줍니다. 찐득하게 입 속으로 스며들어오는 커피가 금세 끝나는 게 아까워 잠시 멈추고 아껴먹고 싶지만 그 전율을 멈추기 싫어 단숨에 마셔버립니다. 커피잔이 이다지도 작은 것에 하염없이 원망하며……비워진 잔에 애꿎은 스푼만 달그락달그락 소리칩니다.
점심은 이탈리아 마르게리타 피자의 원조 브란디(Brandi)로 정합니다. 시간이 남으면 플레비쉬토 광장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광장에는 나폴리 답게 공 차는 아이들로 북적이고 아들은 정신없이 광장을 누비며 뛰어다닙니다. 뛰어노는 아이가 귀여워 광장 계단에 앉은 소녀 무리들이 난리가 납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아이 사랑은 남녀노소를 불문합니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너도 나도 몰려와 한바탕 즐거운 추억을 남깁니다. 그런데 아들이 소녀들 손에 든 피자를 탐하기 시작하고 다 먹어 치우지 않는 이상 절대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아 황급히 점심 식당으로 향합니다.
제대로 나폴리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골목길에 들어서자 브란디의 간판에 눈에 들어옵니다.
Pizzeria Brandi
Salita S. Anna di Palazzo, 1-2, 80132 Napoli, Italia
진한 토마토 맛과 쫄깃한 피자 빵 그리고 부드럽고 구수한 모짜렐라 나폴리 사람들이여 피자만으로도 그대들은 충분히 축복받았으니 다른 곳에서 이야기하는 도시의 악명은 감수해야만 할 것 같소!!
식당에는 언제나 미국 단체 팀들로 가득합니다.
피자헛의 나라에서 온 그들이 피자의 나라에서 맛보는 원조는 어떤 느낌일까요?
나폴리가 속해있는 캄파냐 주의 토지는 베수비오 화산과 폼페이를 상기시켜 보아도 알 수 있듯 화산암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해초 성분을 자연적으로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습니다. 이 비옥한 부식토에서 바다와 화산의 향기를 머금은 맛있는 야채와 과일들이 자랍니다. 카르초피, 살구, 사과, 무화과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맛의 레몬들까지!! 이 캄파냐에서 다른 어떤 지역보다 먼저 토마토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이것으로 수많은 음식들이 개발되었습니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파스타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경질 소맥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과거 로마에서 나폴리까지의 긴 구간에는 습지대가 펼쳐져 있었는데 무솔리니 시대에 와서 많은 땅들이 건조되었다고 하나 최근까지도 습지대가 펼쳐집니다. 습지로 인해 암소 사육이 불가능하자 캄파냐 주민들은 늪이 많은 지대에서 주변 식물들을 융자적 뜯어먹는 버펄로를 사육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이유로 로마와 캄파냐에는 예전부터 암소 우유 대신 버펄로 우유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버펄로의 생우유는 맛이 없지만 이를 가공하면 자연의 기적과도 같은 놀라운 걸작이 탄생하는데 바로, 버펄로 모차렐라, 모짜렐라 디 부팔라입니다!
25그램의 작은 모짜렐라부터 500그람의 모짜렐라 지간테(gigante, 이탈리아 말로 거인, 자이언트)까지…. 일반적인 상식에 따르면 모짜렐라는 다른 나라로 수출할 수도 없고 며칠간 보관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만들어진 그날 그 장소에서 소비해야 한다고 하는데 현재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모차렐라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것이기에 우리가 캄파냐에서 만나는 모짜렐라는 가장 완벽한 맛과 신선한 모짜렐라입니다.
이는 정말 그 어떤 설명도 필요가 없고 그 차이는 이 곳에서 진짜 모짜렐라가 내 입 속에 닿는 그 순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폴리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 바로 모짜렐라 지간테!! 이 곳의 모차렐라는 엘레나 코스튜코비치 가 쓴 “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 에서 그녀가 쓴 글에서 완벽하게 표현됩니다.
동그란 모짜렐라를 조각조각 얇게 썰고 커다란 토마토도 중간이 빈 엽전 모양으로 둥글게 자른다. 이 위에 바질 잎사귀와 소금, 작은 오레가노 조각, 검은 올리브를 얹는다. 그리고 이 그림 같은 접시 위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십자형으로 붓는다. 완성된 요리는 언제 어디서 먹든 신의 자비에 감사하게 되는 음식이다.
머리에 떠오르는 낭만적인 환상에 따라 마음대로 이 음식의 이름을 불러보자. 하지만 별다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냥 보이는 모습 그대로 인살라타 카프레제(insalata caprese) 라 부르기로 하자.
낭만적인 환상의 또 다른 이름, 모짜렐라.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나폴리의 골목길들을 가로질러 차를 세워둔 주차장으로 향합니다. 나폴리를 뒤로하고 로마로 향하던 마음을 대문호 괴테의 글로 대신합니다. 그 역시 나폴리를 뒤로하고 로마로 향하였으니 로마로 돌아가는 나는 마치 대문호의 이탈리아 여행에 동행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 아쉬움보다 황홀함에 빠져듭니다.
6월 3일 일요일, 삼위일체 축일
아마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를, 이 세상 둘도 없는 이 도시의 생기 있는 모습을 뒤로하고 나는 반쯤 몽롱한 기분으로 도시를 빠져나왔습니다. 하지만 후회스럽거나 고통스러운 마음은 남지 않는다는 사실에 만족할 따름입니다. 어쨌든 이곳에서는 아주 잡다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말, 그리고 기기묘묘한 물고기들을 실컷 보았습니다. 이 도시의 지리적 위치와 수려함에 대해서는 자주 묘사되고 칭송되어 왔기 때문에 다름 말이 필요 없습니다. 이곳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나폴리를 보고 죽으라’는 말뿐…”
– 괴테 이탈리아 기행 중, 나폴리를 떠나며
다가오는 6월 3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금지됐던 지역 간 이동이 가능해집니다.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말은 괴테의 시대에나 나올 이야기라고 생각했지 우리의 시대에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닼 6월의 어느 날, 우리는 이른 아침, 로마를 뒤로하고 나폴리로 달려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당연’이 내일의 ‘불가능’이 되어 버린, '언젠가'라는 말이 힘을 잃은 이 시대의 우리는 '바로 지금' 달려가야만 한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written by iand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