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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킴 Mar 18. 2021

정리하고, 버리고, 자유를 얻었다

최근,  대지 않고 있던 물건들을 정리했다. 먼저 나의 타임캡슐을 열어보니,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의 졸업장, 명찰, 공연 티켓, 학생수첩 등의 자잘한 물건들이 나왔다. 결혼과 이민 그리고  번의 이사까지 끌려다닌 나의 신줏단지이다. 물건을 꺼내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빠께서 매년 도와주신 식물 채집과 동물 채집으로 받은 상장, 소소한 일상이 적혀있던 수첩, 수업 시간에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쪽지 등을 보니 코끝이 매워졌다. 그러나 진한 감동은 잠시였을 !


추억 여행에 빠져 마냥 행복할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고통스러운 기억 또한 떠오르는 것이었다. 아마도  정신세계엔 과거를 아름답게 포장한다는 므두셀라 증후군이 1 존재하지 않나 보다.


사진첩도 꺼내 보았다. 이것 역시 행복과 불행이 함께 보관되어 있었다. 내 인생의 일부라는 이유로 분별없이 많은 사진을 끼고 살아온 탓이다. 지난 과거에 미련을 갖고 살아온 내게 화가 치밀었지만, 사진첩을 넘기며 나의 삶과 마주했다. 사랑을 많이 받은 어린 시절, 좋은 친구들과의 인연,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사람들, 불같았던 남편과의 연애와 쉽지 않았던 결혼과 신혼 생활, 이를 보상해준 남편의 사랑과 아이들이 준 행복, 등을 바라보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미소 짓다, 눈물을 글썽이다, 분노하며 혼자 생쇼를 한 것이다. 서랍 정리 하나를 해도 나의 행적이 고스란히 보여 감상에 젖곤 하는데, 오십여 년이란 시간을 바라보는 파장이 오죽했겠는가.



페르낭 크노프 <기억들>


필요 없는 사진들을 . 내게 평화를   있고 훗날 아이들이 우리 부부를 따뜻하게 추억할  있는 사진만 골라 모았. 이렇게 진액만 추출해 모으니 사진첩의 부피가 오분의 일로 줄어들었다. 문제는 남아있는 사진들을 어떻게 처분하느냐였는데, 찢어 버리자니 징글맞게 양이 많았고, 연기를 피우며 태우는  궁상맞아 싫었다.


고민 끝에 나는 시간과 노동력을 들여  혼자만의 의식 갖기로 했다. 사진을  장씩 찢으며 힘들었던 시기 또한  인생에서   날려 보내기로  이다. 그래서 손가락이 얼얼할 때까지  많은 사진을 찢고  찢은  내다 버렸다. 지우고 싶은 기억도 함께 담아서.


 사진과, 사진에 얽힌 기억과,  기억에 대한 나의 집착을 쓰레기통에 날려버리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쓰레기를 버리고 자유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문득 친구 부모님의 유품 정리를 도운 일이 생각났다.  생각없이 손을 내주었다가 죽을 고생을 던 기억!. 파내고 파내도 나오던 물건 더미에 느꼈던 공포와 멀미......지금 생각해도 어질하다.


평생 여자여자 하던 친구의 어머님께서는 고급 도자기와 인테리어 소품을 모으셨다. 그리고 바느질과 공예를 취미 이상으로 즐기셨는데, 거기에 쓰였던 재료가 경악할 정도로 많았다. 나는 그렇게 많은 천과 비즈, 리본 등을 동대문 부자재 재료상 이외의 공간에서  적이 없다. 그뿐인가. 저장 강박증이 있던 아버님께서는 연도별로 묶은 신문 보따리와 지난 몇십 년간의 전화번호부,   볼펜 같은 잡동사니를 모아두셨다. 심지어 자식들의 성적표와  먹은 사탕과  , 평생 받은 월급 명세서까지 정리해 쌓아 두셨다. 나는 가끔 일손을 놓고 친구 오빠의 엉망인 성적표를 보고 킬킬거리기도 하고, 이제는 생산되지 않는 과자나 사탕 케이스를 보며 희한해 하기도 했었다.  분께서는 본인들의 팔십여  인생을 고스란히 남겨두셨던 것이다.


한 달가량을 고생한 것 같다. 손끝 매서운 두 여자가 죽어라 정리하니 집안에 빈 공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벽장과 광을 다 털어내고 이제 곧 끝이겠구나 하고 한숨 돌리려는 때...... 장식장을 빼곡히 채운 사진 더미가 나왔다. 우린 절망의 탄성을 수도 없이 질러댔다. 그리고 분노의 목소리로 훗날 자식들에게 최소한의 것만 남기고 가겠다는 맹세를 했었다.


사라 지 <Triple Point>


그때 일을 회상하니 여태 끼고 살아온 내 신줏단지에 대한 미련이 없어졌다. 내가 어려서 달고 다니던 명찰이며, 일상의 메모가 적힌 학생 수첩이 후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친구 어머니께서 평생 모으셨던 비싼 앤틱 소품들도 컨템퍼러리 스타일을 좋아하는 친구에겐 쓸모없는 물건일 뿐인데...... 하물며 지극히 개인적인 고물들이라니!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봤다. 텐트를 치고 캠프파이어를 했던 가족 여행, 동화책 전집을 선물 받았던 생일, 걸스카우트의 여름 캠프.... 등이 생각났다. 그러나 이들을 누르고 내게 선택된 것은 영화 <메리 포핀스>를 관람했던 어느 봄날이었다. 영화가 나의 혼을 쏙 빼놓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날은 막냇동생이 첫 극장 나들이를 했던 날이어서 기뻤다. 최초로 온 가족이 함께 극장에 간, 특별한 날이었다. 그때 나와 동생들은 너무 좋아 걷질 못하고 콩콩 뛰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영화가 끝난 뒤, 우리를 맞아주었던 빨간 풍선! 우리 세 자매는 극장에서 받은 풍선을 바라보며 하늘을 날던 메리 포핀스 이야기를 했었다. 그 기억이 강렬해서, 나는 아직도 풍선을 볼 때면 그날의 빨간 풍선을 떠올리곤 한다.


이토록 행복했던 하루였지만 내겐 기념할 수 있는 물건이 남아있지 않다. 그날 부모님께선 사진기를 가져가지 않으셨고, 어린 나는 영화표를 간직할 줄도 몰랐으며, 좋아했던 빨간 풍선 또한 행방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형체 없는 기억은 평생 모은 잡동사니와 사진첩보다 더 큰 감동이 되어 살아가는 힘이 돼주곤 했다. 행복한 기억은 어떻게든 살아남아 긍정적 감정을 일으키기 마련인가 보다.


정리를 끝내고, 텅 빈 타임캡슐과 홀쭉해진 사진첩을 보니 현재의 내가 보였다. 되돌릴 수 없는 일들, 좋지 못한 인연들을 지워 버린 모습이다. 이제 마음 떠난 과거를 보내고 새로운 삶을 맞으려 한다. 그리고 남기고 싶은 추억은 내 기억에 맡겨두려 한다. 이 자유로움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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