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육아를 위하여
부부 모두 육아에 공평하게 참여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남편은 일을 하러 나가고 나는 휴직 중이니 주양육자는 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쉬는 날 없이 일주일 내내 아기만 보고 있기에는 심신이 지친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주5일 근무하고 주말에 여가 생활 없이 아내와 함께 육아만 한다면? 둘 다 피폐해 질 것같다.
나는 개인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엄마든 아빠든 가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져야 한다는 주의다. 짧게라도 잠깐 나가서 드라이브를 한다거나, 조용하게 커피를 마신다거나, 운동을 한다거나.
내가 육아에서 해방되기 위해 각별히 노력했던 것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여기에는 아기와 엄마,아빠 간에 애착 형성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평소에 아기가 사랑을 충만히 느낄 수 있도록 애착 형성에 신경 쓰고,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돌아올 거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아기가 태어난 뒤로 내 자신보다도 더 그 존재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보다 더 사랑하는 아기와 24시간 함께 하는데 우울증이 찾아온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아기 볼테니 바람 좀 쐬고 올래?"
"아니 괜찮아. 별로 가고 싶은 데도 없고, 혼자서 어딜 가야 할지도 모르겠네"
"아니 제발 나갔다 와. 제발"
남편은 나에게 바람 좀 쐬고 오라고 권했을 때, 내가 마다하는 것을 보고 심각성을 느꼈다고 한다.
집에 붙어 있는 거 싫어하고 밖에 돌아다니기를 절대적으로 좋아하는 내가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호르몬의 신비함이다. 산후우울증은 시나브로 돋아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핏덩이같은 아기를 두고 어떻게 엄마가 자리를 비우냐는 생각이 들었었다.
출산한지 6주가 되었을 무렵, 제발 나갔다 오라는 남편의 권유에 못 이겨 억지로라도 나갔다.
처음에는 집에서 고작 10분 거리인 공원엘 갔고 1시간도 채 안되서 돌아왔다. 그렇지만 이 1시간이 나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다음에는 어디 가지? 상상하고 있었고 점점 더 혼자 누리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처음이 어렵지 한 번 해보면 별 거 아니라는 말을 많이 하듯이 자유 시간을 가지는 것에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한 번 나갔다 온 뒤로 거의 매주 혼자서 드라이브를 나갔고, 1시간이었던 것이 2시간, 4시간 점점 늘어나더니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돌아온 적도 있다.
내가 없어도 육아는 잘 돌아간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어떤 회사에서 한 사람이 일주일 간 휴가를 떠난다고 생각해보자.
“이 사람 없으면 일이 안돌아가요.”
그 사람이 없으면 일이 안돌아 갈 정도로 빈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면 그 사람은 일을 잘 하는 사람일까?
반대로 그 사람이 없어도 일이 잘 돌아간다면 그 사람은 존재의 위협을 느낄까?
나는 후자가 일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배웠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규모가 작은 회사이다보니 신입사원을 하나하나 알려주고 친절히 교육시킬 수 있는 환경이 못 되었다. 그래서 재직자들에게 특별히 요구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위키 작성이다. 무슨 일이 되었든 업무 매뉴얼이 있었고 히스토리도 잘 기록되어 있었으며, 누구나 문서를 편집할 수 있었다. 중소기업 특성상 직원들의 입퇴사가 잦고 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았음에도 회사가 잘 굴러갈 수 있었던 건 위키 덕분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근무하다보니 ‘OOO 하는 법’ 을 작성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집안일이나 육아 조차도 나 말고도 할 수 있도록 매뉴얼화 하려고 했다.
아기의 하루 일과, 분유는 몇 시에 몇 ml를 먹이는지, 몇 시쯤에 잠드는지, 졸린 신호 캐치하는 방법, 낮잠 재우는 법, 밤잠 재우는 법, 울 때 대처법 등을 설명하는 육아 매뉴얼을 만들었다. 아기가 100일이 갓 지났을 때, 남편에게 이 매뉴얼을 전달하고 1박 자유부인을 성료했다.
내가 만든 육아 매뉴얼의 독자는 남편만 있을 줄 알았는데 시어머니, 시동생에게도 매뉴얼을 설명하는 날도 있었다.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자유부부 시간을 가졌던 날이기도 하다.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이 보고 싶어서 서울에 다녀오려고 했다. 시어머니와 시동생에게 긴급 보육을 부탁했는데 다른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쳐두고 와주셔서 정말 죄송스럽고 감사했다.
돌 이전 아기의 성장은 정말 빠르기 때문에 분유 먹는 횟수, 1회 분유량, 이유식, 낮잠 횟수, 낮잠 시간대가 계속 변한다. 그러므로 매뉴얼도 잦은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두 분께 아기를 맡기기 전에 급하게 현재 월령에 맞는 매뉴얼을 작성했다. 그리고 프린트를 하여 냉장고 앞에 붙여두었다.
긴급 보육을 맡기면서 내려놓은 세 가지가 있다.
1. 이유식은 시판 이유식으로 부탁하기
내가 집에 있을 때는 하루 세 끼 중 한 끼만 시판이유식으로 먹고 나머지는 만들어서 주지만 시어머니와 시동생에게 이유식을 만들어서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시판 이유식, 짜먹는 이유식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2. 잠투정이 심할 때 먹잠 허용하기
보통은 먹잠을 지양하지만 잠투정이 심할 것을 대비하여 그럴 때는 분유를 먹여달라고 안내했다.
3. 유튜브 영상 허용
아기와 놀아줄 수 있는 방법을 11가지 안내했는데 그 중 1개는 유튜브 동요 영상을 틀어주는 것이었다. 나는 두 돌 전까지는 영상 노출을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너무 보육이 힘들 때는 많이 자극적이지 않는 동요 영상을 보여줘도 된다고 알려줬다.
아이를 낳고 나서 병원갈 일이 많아졌다. 산부인과도 가야하고 안과, 치과, 정형외과, 피부과 등등 갈 곳은 많은데 남편이 집에 있는 토요일에만 가다보니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시간제 보육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직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있는 내게 시간제 보육은 신세계였다. 처음에는 적응 기간을 고려하여 1시간씩 예약하고 2시간으로 늘려갔다.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갖는 나만의 시간이다. 아기를 맡겨놓고 나는 주로 운동을 가거나 병원에 다녀온다. 평일 낮에 운동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다.
한편 아기에게 맞는 시간제 보육 시설을 잘 찾는 것도 중요하다. 나의 경우 처음 갔던 곳이 깨름직한 면이 있어서 한 번 시설을 옮겼다. 믿음이 가는 보육시설을 찾는 것도 행운이다.
엄마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 아기도 엄마의 삶을 존중해 주고, 저 스스로도 개인의 시간을 가지면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