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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Oct 14. 2016

이상한 나라의 홍이병

갓 이등병 마크를 달고 자대에 배치되어 어리바리한 훈련병 티를 아직 벗지 못하던 그 시절, 전입한 부대에서는 체육대회 준비로 한창이었다. 모든 질문에는 그렇습니다, 아닙니다 등으로만 대답할 것과 그 어떠한 일에도 불가능은 없다는 자신에 찬 눈빛과 잘할 수 있다는 복창을 유지해야 한다는 선임들의 가르침을 받들어 어설픈 축구실력도 마라도나급으로, 평균을 조금 웃도는 달리기 실력도 칼 루이스급으로 부풀리고 정신무장을 한 채 체육대회 당일날 소대 대항 계주에 출전했었다. 세 번째 주자로 배정된 내가 바통을 넘겨받았을 때는 다행히 우리 소대가 일등으로 달리고 있었고, 칼 루이스로 환생한 나는 전심전력을 다해서 전역을 한 달여 앞둔 최고참 병장에게 그대로 바통을 넘겨줬고, 우리 소대는 일등으로 골인할 수 있었다. 벅찬 맘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소대장을 비롯한 부대원들은 확보한 포상휴가 한 장의 기쁨에 들떠있었는데, 일병으로 진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무반 선임이 화장실로 나를 호출했다. 나는 몰래 숨겨놓은 빵이라도 주는가 싶어 부푼 맘으로 따라갔는데 화장실 문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불이 번쩍였다. 영문도 모른채 얼얼한 얼굴을 만지고 있으니 선임은 위엄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

"이등병 새끼가 빠져가지고 죽으라고 앞만 보고 달릴 생각은 안 하고, 뒤를 돌아봐? 실실 쪼개기나 하고 말이야!"

불안한 마음에 달리는 도중 뒤를 한번 돌아본 게 화근이었다.

나는 지금 이상한 나라에 와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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