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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기네 Jan 14. 2024

#4 이탈리아) 100년 전통 파스티체리아 레골리

그리고 로마의 크림빵 마리토초(Maritozzo) 이야기

로마의 트라스테베레(trastevere)를 걷다가 한 이탈리안 가족이 ‘마리토초(Maritozzo)’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조금 전 들렸던 파스티체리아(패스트리 샵)로 들어간다. 카운터에 진열되어 있던 큼지막한 하얀 크림번이 다시금 떠올랐다. 사 먹어볼 거 그랬나 하는 후회와 함께.


그 후회가 나를 이끈 곳은 100년 전통의 파스티체리아 ‘레골리(Regoli)’다.

길가에 겸손하게 위치한 작은 규모의 그곳엔 안팎으로 사람들이 북적인다. 유리창을 진열장을 꽉 채운 마리토초 트레이가 잘 찾아왔다는 안도감을 환영하는 듯하다.

레골리의 문을 가득 채운 맛집 인증 스티커들 방문객을 환영하고 있다.
눈꽃같이 입에서 녹아버리는 하얀 크림번이 바로 마리토초다.

안 잘라질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가른 브리오슈 사이에 눈꽃같이 채워진 하얀 크림이 아래로 흐르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가득 채워진 마리토초는 레골리의 대표적인 제품이다. 아침 카푸치노와 함께 하기 위해서 ‘바(bar)’에서 주문 순서를 기다린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카푸치노와 마리토초는 마치 내가 로마사람이 된 듯한 감성이 들게 한다. 한 손에 빵을 들고 한입 베어 물자 마자 느끼는 그 부드러움은 그 이름에 담긴 전설처럼 사랑을 고백하는 그런 맛이었다. 


이렇게 손으로 잡고 큰 한입 베어무는 것이 그 매력이다.
바'Bar'와 테이크 아웃 샵으로 나눠져 있는 레골리- 이탈리아인들은 바에 서서 커피와 간단한 스낵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선다. 


> 마리토초에 담겨진 오래된 이야기


유럽의 많은 디저트가 그러하듯이 마리토초의 선조 역시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 시초는 크림 없는 건과일만 들어간 브리오슈였다고 한다. 그러다 중세시대에 금식을 행하는 사순절 기간 동안 허락된 유일한 디저트가 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 이름 ‘마리토초’는 ‘남편’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마리토(marito)’에서 왔는데, 남자가 마리토초 안에 반지를 숨겨서 좋아하는 여자한테 사랑을 고백할 때 주는 디저트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으레 그렇듯이 그런 사랑스러운 전통이 지금은 사라졌지만, 마리토초는 로마인들에게 아직도 사랑받고 있다.



> 마리토초에 담긴 현대 이야기


라치오(Lazio) 지역 어느 바에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마리토초. 많은 이탈리아 중부지역 사람들은 마리토초를 먹으며 자랐다고 한다. 한 로마청년이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리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닫힌 문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빵냄새에 끌려 다가간다. 밤새 내일 판매할 빵을 만들고 있는 와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직원하나가 고개를 내민다. ‘마리토초 하나만 먹을 수 있을까요?’라는 어이없는 질문에 직원은 난감해하며 졸라 되는 청년들을 돌려보내려고 노력한다. 그때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나온 셰프가 ‘그냥 하나 줘.’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에 톡 쥐어 주던 그 맛. 현대사 번외 편에서 들을 수 있었던 마리토초 이야기. 이렇듯 마리토초는 아직까지도 로마인들의 가슴 깊은 곳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테이크 아웃으로 맛볼 수 있는 디저트들


레골리의 바 옆에 위치한 가게에서는 테이크아웃 제품들을 구입할 수 있다. 리코트 크림이 가득 찬 판제로티 panzerotti, 부드러운 푸딩 같은 바바레시 Bavaresi, 나폴리의 스폴리아텔레 sfogliatelle 등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디저트들로 가득 차 있기에 현지의 디저트를 맛보고자 하는 여행객들에게는 최선의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만약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꼭 마리토초를 먹어보자.

후회 없는 결정일 것이다. 


Regoli Paticceria

주소: Via dello Statuto, 60, 00185 Roma RM, 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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