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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Nov 23. 2020

7년 동안의 잠, 땅 위로!

새롭게 시작된 엄마의 성장주기, 허물을 벗고 날아갈 수 있기를

  아이를 키운 지 꼭 8년이 지났다. 올해를 맞이할 1월 즈음 잠을 자면 좋은 꿈, 행복한 꿈을 그렇게 많이 꾸었다. 올해 내가 뭔가 참 잘 풀리려나보다 웃으며 시작한 한 해가 벌써 저물어간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첫애 육아일기부터 블로그에 쓰기 시작했으니 그것도 꼭 8년이 지난 것이다.


오랜만에 예전에 쓴 공책을 보다가 이런 메모를 보았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여성의 성장주기는 7이다. 곧 7세, 14세, 21세..... 49세, 56세...... 등으로 변주된다.(남성은 8이다. 8세, 16세, 24세). 14세 전후에 초경이 시작되고, 49세 전후가 되면 폐경이 된다.

 

 한참 고미숙 님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책을 읽으며 더불어 사주명리학과 동의보감에 눈을 떴을 때 적어놓았던 글이다.

  돌이켜보니 서른 살, 아이를 낳음과 동시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서른일곱, '탈의식'이 일어나면서 독서모임을 만들고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다. 6년이면 우리 몸 세포가 전부 새로 바뀌고 10년이면 강산도 바뀌는 것이 헛말이 아닌 것처럼 아이 낳고 7년 뒤 내 생은 새로운 지표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오랜만에 만난 비혼인 친구에게 내가 아이를 키운 기간 7년은 '잃어버린 7년'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잃어버렸다는 건 다시 찾고 싶다는 바람과 더불어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는 걸 나도 모르게 인정한 꼴이다. 물론 그 시간은 내가 삶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선택했다고 할 수는 없다. 이끌리듯 따라가고, 이렇게 하는 것이 '정상'인 것  같아서 그 범주에 들려고 애쓴 흔적이었다.


삶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그 7년은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기 위해 안으로 수렴하고 수축할 시간을 가져야 할 겨울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장주기를 안다는 것은 스스로를 겸손하게 만든다. 서른 살 '내가 제일 잘 나가'를 외쳤던 내가 그다음에 겨울이 올 줄 알고 있었다면 덜 고통스럽고 덜 자만하지 않았겠는가? 아니, 겨울도 꼭 필요한 계절이고 들여다보면 예쁜 계절이라고 위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른 매미가 되기 위해서 땅속에서 7년 동안 잠을 자는 매미 이야기를 쓴 박완서 선생님 그림책 <7년 동안의 잠>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저 매미가 이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 같구나 싶었다. 내용은 이렇다.


  흉년이 든 땅속 개미마을 근처에서 한 개미가 굼벵이로 꼼짝 않는 매미를 보고 식량을 발견했다고 다른 개미들을 불러 광으로 옮기려고 한다. 그때 늙은 개미가 와서 이 매미는 어른 매미가 되기 위해 7년 동안 땅속에서 잠을 자야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해준다.


개미들끼리 매미를 둘러싼 토론이 이어지면서 결국 매미를 이해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런 젊은 개미들을 바라본 늙은 개미는 개발로 인해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딱딱한 땅이 많아져서 매미가 길을 잃은 것 같다며 모두 힘을 모아 땅 밖으로 옮겨주자고 한다. 수많은 개미들이 매미 굼벵이를 들어 올리고 땅에 가까워지자 매미도 스스로의 힘으로 땅 밖으로 나가 허물을 벗고 날개를 펼친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개미들은 날아오른 매미를 축복해준다.

  아이를 낳게 되면 많은 어머니들이 땅 속에 갇힌다. 어떤 개미가 말한 것처럼 한가하게 놀면서 애나 키우는 주부라고 비난하기도 하고, 어째서 복직을 하지 못하는지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내가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면 다른 여성의 희생이 필요하다. 아이를 낳아보기 전에 나는 마치 자동차 공장에서 자동차 만들듯이 아이 키우기도 계획했던 대로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배가 불러오고 현실과 맞닥뜨리면서 3개월 휴직이 1년이 되고 퇴사로 마음먹기엔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다른 출구가 없다. 낳지 말았어야 하는 출구밖에 없다.


  아이 키우기는 한 사람의 주양육자와 한마을 수준의 보조 양육자 도움으로 이루어진다. 주양육자의 역할을 보조 양육자에게 나누어주는 계획을 촘촘히 세우다 보면 너무 복잡하고 돈과 품이 많이 들어 결국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고 만다. 아이의 조부모나 부모 말고는 주양육자가 되기도 힘든데 조부모도, 배우자도 도맡지 않기로 선택하면 결국 양육은 선택권이 없는 어머니에게 남겨진다.


네가 죄를 지었으니 네가 징역을 살아라 같은 죄책감이 그때 생긴다. 돌아갈 수 없다.

'여성에게 모성애를 강요하고 모성애가 희생 그 자체라면, 태어난 것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 셈이다.'*


세상 많은 것들이 바뀌었는데 여성의 자리만 당연하게 지켜지고 있다. 이제 땅을 벗어나 나무에 올라 날개를 펼치고 싶은데 그동안 더 단단해진 땅 표면을 뚫지 못해 땅속에 머물거나 길을 잃는다. 우리 사회는 그런 땅속 매미를 비난하고 잡아먹는데 힘을 쓸게 아니라 노인 개미와 더불어 수 백 마리가 붙어 매미를 땅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줘야 마땅하다. 땅속에 갇힌 이야기가 땅 밖의 사람들에게 자꾸 이야기되면 다음 해에 나오기 위해 7년 전에 땅속에 들어갔던 매미들은 좀 더 쉽게 땅 위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다음 해 에는 내가 훨훨 날아 어떤 나무에 도착하는 이야기를 쓸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래서 나는 '잃어버린 7년'이 아니라 '7년 동안의 잠'이라고 바꿔 말한다. 내가 땅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해서 헤맬 때 수많은 개미의 도움을 받고 싶고 나중에 그런 개미가 되어 다른 땅속 매미들을 돕고 싶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인용한 글 원문_'그 말을 들은 테레자는 삶의  최고 가치는 모성애이고 모성애란 큰 희생이라고 믿었다. 모성애가 희생 그 자체라면, 태어난 것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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