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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 Jul 11. 2021

글쓰기 수업를 마치며

14주동안 들었던 글쓰기 강의를 나오며 남기는 기록

  마지막 강의가 끝나고 단톡방에는 봇물처럼 후기가 쏟아졌다. 14주동안 수강생들은 격주로 글을 내었고 스승은 글쓰기 이론을 강의하고 우리글을 고쳐주기도 했다. ‘단순히 글에 대한 강의가 아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고 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수업이었다’고 평한 수강생이 있을만큼 강선생님 강의는 훌륭했다. 전체적으로도 좋았지만 마지막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 알고 계신 분이었다. 과정을 늘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지만 확실히 마무리, 결론의 무게를 지나칠 수 없다. 스스로와 싸우던 악몽 같은 중간이 뭉텅 잘려나간 자리에 울려 퍼지는 노래는 그 시간을 달래고도 남았다.

   

   스승의 인생 전반을 아우르는 게 ‘글쓰기’였을 테니 강좌 한 꼭지 한 꼭지가 잠언시집이었다. 어쩌면 글쓰기를 끝내고 가장 아쉬웠을 사람은 선생님이 아니었을까 싶다. 글에 관한 이야기가 일곱 번의 강의로 어찌 다 설명이 되었겠는가? 글쓰기 강좌를 듣는 동안 선생님이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인문학 강의도 듣게 되었고, 선생님이 쓴 책들을 찾아 읽고, 잠깐씩 SNS에 올리는 그분의 글도 이따금 읽었다. 그러니까 글쓰기 강좌가 열리는 14주 내내 스승의 말과 글에 압도되어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 터널을 지나고 나서 만나는 하늘이 해방감을 주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책 쓰기를 한번 해보겠다고 덤볐던 스무 명 가운데 몇 사람만 빼고 대부분이 수업 중반에 절망을 겪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피똥 싸면서 고민했던 그 의자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좀 더 위로받고 용기를 내지 않았을까? 글쓰기는 내 안의 것을 사람들에게 가닿는 언어로 재생산해서 꺼내놓는 작업이다. 그래서 너무 내 안으로 파고 들어가면 안 되는데 14주 동안 내내 그러고 살았다. 줌회의실에서 빠져나온 몇몇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투정과 음악이 마지막 강의실에서 울려퍼졌다. 그때서야 내 안에서 걸어 나왔다. 긴장이 풀렸다.     


   그날, 눈이 매우 아팠다. 눈꺼풀이 떨리는 게 괜찮아지는가 싶더니 눈 끝이 뾰족하게 아려왔다. 눈치를 너무 많이 봤던 건가? 몇 달 동안 눈과 싸워온 느낌이다. 내 글엔 눈을 감고, 음악에 맞춰 춤이나 추다 가고 싶다고 느꼈다. 내 글이 거추장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숙제해서 낸다는 것은 그 가르침을 내 글에 녹여내야 하는 눈치작전이다. 칭찬받고 싶은 건 당연하니까. 당연한 내 마음을 또 긍정하지 못하고 좀스럽게 몰아치기도 했다.


  “사람들의 병통은 남의 스승이 되는 것을 좋아하는 데 있다”라고 맹자가 그랬다. 스승이 되고자 욕심을 내는 것 자체가 병통의 원인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내가 잘 썼는지 못 썼는지 내 글의 스승은 되고 싶었다. 그래서 통증이 시작된 건지 모르겠다. 강의가 끝나고도 그 감이 없기에 글쓰기 동료를(스승을) 두라는 강 선생님 말씀에 공감했다. 내 글의 스승 자리를 나 혼자 독차지 하지 않기를......  

   

  내 글쓰기는 강의초반에 칭찬을 한 번 받았다. 전혀 예상 못 했기에 그 칭찬의 맛은 몹시 달았다. 약은 독이라고 했던가. 독이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어깨에 힘을 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차라리 그냥 ‘나름 잘 썼다. 이런 식으로 써보면 괜찮을 거 같다’라고 가벼웠다면 달라졌을까? 하지만 돌아간대도 나는 그 달콤함을 택하리. 그 칭찬은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가느다란 힘이 되어주었으니까. 그래서 다른 수강생이 쓴 <어느 완벽주의자를 책임져야 하는 이야기>가 정말 와닿았다. 그 칭찬 이후로 머릿속으로만 고민할 뿐 글을 쓸 수 없을 지경이었다. 자꾸만 소설을 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어색했다. 내 글을 어떻게 평가하든 내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내 글에 매달렸다. 다행히도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고 마지막 수업쯤에는 글을 다시 낼 수 있었다.

    

  마지막 글은 즐겁게 썼다. 오랫동안 내게 변함없는 사랑을 주는 남자를 앞에 두고 달콤한 밀크티를 먹으면서 썼다. 음료값 그가 내주었다. 1시간 뒤 그가 떠나고 난 뒤에도 홀로 남아 조금 더 쓰기도 했다. 그렇게 두어 번 카페에서 글을 쓰고 원고지 20매 초고가 완성되었다. 잠시 글을 잊고 스승님이 했던 다른 글쓰기 강의를 유튜브로 찾아보았다. 초고를 완성했다면 무엇을 쓰고 싶은지 깨닫게 됐을 것이니 머릿속에 잘 정리된 초고를 바탕으로 새롭게 그 글을 써보라고 하셨다. 내 글은 길지도 않으니 다시 써봐도 될 것 같았다. 많은 감정과 사족들이 머릿속에서 잘려나간 채 다른 글이 나타났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맨 밑 서랍에 있었던 <머릿니와 미순 언니> 초고의 첫머리를 옮겨본다.   

  

밤새 뒤척였다. 머리가 가려워서 자다 일어나서 긁었다. 퀭해진 얼굴로 식탁 앞에 앉아 아이들 밥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무심코 머리카락 한줄기를 쭉 뽑아냈다. 어릴 때 생긴 습관이었다. 비듬이 생겼나, 모래가 끼었나 손끝으로 잡히는 알갱이를 보다 깜짝 놀랐다. 뭉툭한 배를 가진 새까맣고 큰 미생물, 물어보고 검색할 것조차 없이 30년 전 그 머릿니였다. 쌀벌레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 퉁퉁한 배를 손톱으로 누르면 뚝! 소리가 나서 어머니는 뚱니라고 불렀다. 으악! 벌떡 일어나 욕실로 달려갔다. 짧은 머리를 빡빡 감고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샅샅이 말렸다. 크고 작은 머릿니들이 적어도 10마리 넘게 수건에 묻어나왔다. 욕실에 하얀 수건이 쌓여갔다. 눈앞이 하얘졌다. 며칠 전부터 가려웠지? 손가락을 헤아렸다. 일주일을 넘겼다면 저 뚱니가 내 머리카락에 알을 낳았을지도 모른다!     


이 부분을 초고를 보지 않고 다시 글로 써보았다.   

   

그날 아침, 머릿니를 내 머리에서 뽑아낸 건 순전히 어릴 때 생긴 습관 때문이었다. 열 살 이전의 기억들 대부분이 내 방어 기제 속에 사라졌지만, 머릿니와 관련된 몇 가지 기억과 습관은 30년 가까이 남아있었다. 머리를 긁다가 손톱 끝에 아주 작은 이물질이 느껴지면 엄지손가락을 들이밀어 머리 밖으로 잡아낸다. 그게 머릿니가 아니란 걸 확인하는 3초간의 무의식. 그 습관이 진짜 머릿니를 앞에 두고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는 만날 일이 없겠지. 고향만큼이나 멀어졌던 머릿니가 내 머리에 찾아왔고, 아이들 머리에 알을 낳았다.   


  상당히 많이 줄여지기도 했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게 어떤 건지 감이 왔다. 초고에는 장황하게 머릿니에 대한 설명이나 옛 추억들이 두서없이 소환되더라. 물론 그 글도 읽을 때 생동감이 느껴져서 좋긴 한데 뭔가 호들갑 떨고 있다는 느낌이 싫었나 보다. 나는 머릿니가 미순 언니를 떠올리게 해주었고 내가 아주 까맣게 그 존재를 잊고 있었다는 것을, 그것에 대한 반성을 쓰고 싶다는 걸 초고를 완성하면서 깨달았기에 가능한 ‘새로 쓰기’였다. 마지막 숙제를 내면서 내가 도전해본 것은 ‘새로 쓰기’였다. 그 전엔 엄두도 못 냈던 일인데 어깨 힘을 빼고 나니 가능했다. 이 글이 더 나은가는 역시 난 잘 모르겠다. 새롭게 써보는 과정들이 해볼만 했고 즐거웠다.     


  글쓰기 수업을 받기로 했다고 했을 때 맞은편에 앉은 분이 왜 글을 쓰는지 물었다. 스스럼없이 이런 답이 튀어나왔다. 사과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내 무지와 오만으로 인해 상처 주었던 사람들에게 좀 더 깊이 있는 언어로 제대로 사과하고 싶어서 글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물론 멋진 답을 골라냈을 내 겉치레도 없지 않겠지. 그래놓고 쓴 글들이 그 ‘사과’엔 도달하지 못했으니까. 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행동했던, 또는 행동하지 않았던 나를 깨닫기 위해서 쓴다고 해야 옳겠다. 진작에 읽었으면 멋지게 이 글 마지막에 인용해도 좋았을 책이 눈에 들어온다. 정희진의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오늘은 강선생님 글쓰기 책을 잠시 덮고 이책을 읽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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