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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이동

신뢰의 역사적 형성과 함의

by 박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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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회는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되어 있다. 신뢰는 거의 모든 행위와 관계와 거래의 근간을 이룬다. 저자는 신뢰의 측면에서 인간의 역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수 있다고 설명한다. 첫번째는 지역적 신뢰(local trust)의 시대로, 모두가 서로 아는 소규모 지역공동체에서 살던 시대다. 두번째는 제도적 신뢰(institutional trust) 시대로 신뢰가 계약과 법정과 상표 형태로 작동해서 지역 공동체 안의 교환을 벗어나 조직화된 산업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토대가 구축된 일종의 중개인 신뢰의 시대다. 세번째는 분산적 신뢰(distributed trust)의 시대로 우리는 이제 그 초기 단계를 지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분산적 신뢰의 시대에는 신뢰가 수평으로 향하면서 인간과 더불어 프로그램이나 봇(bot)으로 흐른다. 더 이상 과거처럼 권력과 전문성과 권위가 에이스 카드를 모두 쥐고 있지 않다. 아니 카드 자체를 쥐고 있지 않다. 공유경제의 폭발적 성장은 분산적 신뢰가 작동하는 대표적인 예다. 우버나 에어비앤비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디지털 앱을 통해 서로 가까워지는 새로운 시대의 현실은 바로 사람들이 기술을 통해 타인을 신뢰한다는 점이다. 분산적 신뢰를 이해하면 우리가 왜 음식점과 챗봇에 점수를 매기고 우버기사는 물론 승객까지 모든 것에 열심히 평가를 남겨 각종 비즈니스의 성패에 거의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또 한 편으로는 한 번의 실수나 잘못이 지워지지 않는 평판의 흔적으로 남게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책은 처음 두 장에 걸쳐 우리가 현재까지 오기에 신뢰가 얼마나 중요하게 작동했는지를 살펴보고 이어지는 세 장에 걸쳐 분산적 신뢰가 가능한 세 가지 조건으로, 새로운 개념에 대한 신뢰, 플랫폼에 대한 신뢰, 타인이나 봇에 대한 신뢰를 탐색한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신뢰를 구축하는 방법과 신뢰를 잃을 겅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더해서 신뢰가 한 곳으로 집중되지 않고 분산될 때 누구에게 책임이 돌아가는지를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인간의 소외다. 이미 중국에서는 사람들의 취업부터 열차나 비행기의 탑승자격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모든 영역을 평가하는 조지오웰 급의 신뢰점수제도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미래 사회를 지배할 인공지능에 대한 신뢰가 급속히 확산되는 현상도 주목해야 한다. 컴퓨터를 신뢰하다 보면 사람들과 신뢰를 쌓는 것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새로운 기술로 가능해진 분산적 신뢰는 인간관계의 규칙을 다시 쓰고 있다. 분산적 신뢰는 세계와 서로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바꿔 다시 오래된 마을의 신뢰 모형으로 돌아가게 한다. 다만 마을이 전세계로 확장되고 인터넷의 거물들의 보이지 않는 고삐에 묶인채 끌려 다닌다는 점만 다를뿐이다.


지금은 그 어느때 보다도 새로운 신뢰의 시대가 주는 함의를 이해해야 한다. 누구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누가 실패하고 어떤 불리한 결과가 나올지 파악해야 한다. 새로운 신뢰 이동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이야기도 아니고, 새로 출현한 비즈니스 모델이야기도 아니다. 사회 혁명이자 문화혁명이다. 시장의 힘과 인간의 탐욕에 성패가 달린 바로 우리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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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산적 신뢰의 한 축을 이루는 디지털 평점에 대한 신문칼럼(2021.1.2_중앙일보)이 있어 옮겨본다. 바로 분산적 신뢰사회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노력이다.


[기술이 우리의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이끌기도 하지만, 인간은 기술을 주체적으로 변형하고 새롭게 해석해 재구성하기도 한다. 후자의 견지에서 우리는 물질과 비물질이 병합된 피지털(physical digital) 세계에 드리운 그림자를 걷어낸 포용적 기술의 미래를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플랫폼 기술에 다치지 않고 어떻게 이로부터 노동의 연대를 끌어낼 수 있을지, 조작과 가짜 평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찾아내 격리할지, 별점과 평점의 숫자를 '랭킹(순위)' 시스템이 아닌 공감이나 상생 지수로 어떻게 전환할 수 있을지, 가상의 디지털에 속박된 물리적 사물의 질적 가치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등, 좀 더 우리 사회 '별점의 사회학'에 대한 심층 논의 가 필요하다. 그것이 가상 플랫폼에 의한 물질세계의 황폐화가 아닌, 플랫폼을 매개로한 공생과 화합을 모색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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