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같은 정책의 중독
2025년, 미국 연방정부는 또 한 번 셧다운의 문턱에 서 있다. 의회가 예산안 합의에 실패하면서 수십만 명의 공무원이 임금 불안을 겪고, 국립공원은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으며, 여권 발급과 같은 행정 서비스마저 차질을 빚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숫자 다툼이 아니다. 코로나19 시절 “임시”로 늘린 보건·복지 지출이 이제 구조적 부담으로 굳어져, 어느 정당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셧다운은 정치의 인질극일 뿐 아니라, 과거의 긴급정책이 오늘의 족쇄로 바뀌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코로나19 당시 미국은 건강보험 보조금 확대, 메디케이드 자격 유지, 각종 지원책을 쏟아냈다. 모두가 “위기 상황”이라는 말 앞에 고개를 끄덕였고, 비용은 뒷전이었다. 문제는 불길이 사그라든 지금도 소방호스가 계속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임시 조치는 국민에게 곧바로 새로운 권리로 인식되었고, 줄이려는 시도는 ‘후퇴’로 여겨진다. 정치권은 표를 두려워하고, 재정은 더 깊은 구멍에 빠져든다. 결국 비상용 해법은 만성병으로 굳어지고 만다. 불과 며칠 내로 미국 정부는 셧다운의 수렁에 빠질 위기의 국면에 다시 한번 서있다.
이 장면은 워싱턴만의 것이 아니다. 파리 거리에서 울려 퍼진 함성 역시 같은 뿌리를 가진다. 프랑스 정부가 연금 개혁을 추진하자 시민들이 즉각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유는 단순한 연령 문제가 아니다. 과거 포퓰리즘적 사회보장 확대가 이미 ‘생활의 권리’로 굳어져, 손대는 순간 정치적 지뢰밭이 되어버린 것이다. 워싱턴의 셧다운 협상과 파리의 시위는 다른 무대에서 연출되는 같은 드라마다. 정치인들은 과거의 선심 정책을 뒤집지 못하고, 국민은 이미 정상으로 굳어진 혜택을 결코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마치 주 4일제를 5일제로 늘리자고 하면 곧바로 혁명이 일어날 것 같은 나라 — 그게 지금의 프랑스다.
여기서 진짜 질문은 간단하다. 비상 상황에서 뿌린 혜택을 언제, 어떻게 거둘 것인가? 재원 없는 복지 확대는 당장은 따뜻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 세대의 짐으로 남는다. “오늘의 자비가 내일의 위기”로 변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긴축이 답일 수도 없다. 중요한 건 제도의 설계다. 재정 기반, 초당적 합의, 종료 조건 없는 확장은 결국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된다. 정치는 늘 ‘임시방편’이라 부르지만, 그 임시가 영구화되는 속도는 LTE보다 빠르다.
이 교훈은 한국에도 그대로 비친다.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산, 한정된 재정 여력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여전히 각종 복지 공약을 쏟아낸다. 기초연금, 무상급식, 각종 공공 지원책은 ‘당연한 권리’로 굳어가지만, 재정 구조를 어떻게 감당할지는 뒷전이다. 지금은 표로 이어지지만, 미래에는 프랑스식 시위나 미국식 셧다운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복지는 사치가 아니라 필요다. 하지만 복지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마치 장기 투자처럼 지속 가능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단기적 감정에 밀려 “오늘의 연민”을 무제한 확장하면, 내일의 재정위기로 돌아온다. 복지는 곧 사회적 투자이며, 투자가 그렇듯 원금(재정 기반)과 이자(지속 가능성)를 고려해야 한다.
정책도 인간관계와 닮았다. 위기 속에서 건넨 작은 호의가 습관이 되면, 나중에는 의무가 된다. 중요한 건 당장의 따뜻함이 아니라, 미래까지 감당할 수 있는 설계다. 한국 사회가 지금 미국과 프랑스의 거울 속에서 봐야 할 것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다. 복지를 줄이라는 게 아니라, 복지를 투자처럼 설계하라는 것. 오늘의 연민이 내일의 위기가 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