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치운이는 요새 뭐하느냐고 물었고 이혼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이혼했지. 이혼했는데, 이혼한 사람도 일 년 내내 이혼만 하고 있는거 아니거든.' 김금희 작가의 세실리아 중
- 저 문장을 읽는데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상태와 행위는 다르니까. 나는 어쩌고 있나, 취업준비를 하고 있지. 하고 있는데, 6개월 내내 취업준비만 하고 있는건 아니다.
지원서 작성은 루틴으로 가져가며 하고 있고, 화상 면접이라도 보자는 연락이 오면 평소보다 긴장 되고 들뜬 마음으로 며칠이 지나가고, 그 면접 결과를 기다리며 지원서를 또 쓰고 또 며칠이 지나가고, 결과를 받고 낙심 했다 또 희망이 될 곳을 찾으며 또 며칠이 지나가고, 그 오르락 내리락을 여러번 반복하고 있다. 취업 준비생의 마음 상태가 기본적으로 불안 초조일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가끔 떠오르는 희망이 한방에 불안 초조를 흔적도 없이 퇴치시켜 버릴 때마다 희망의 강력한 힘을 여실히 느끼며 그 안에 머물고자 하고 있다.
그리고 취준생이라는 시간이 인생이 준 방학이다 싶은 때가 많다. 덕분에 작년에는 성인이 되고 가장 많은 책을 읽었고, 부산에서 백수 생활 중이신 아빠와 영상 통화를 더 자주 했으며, 뒤늦게 지창욱에 빠져 그가 출연한 드라마를 있는대로 찾아보고, 새롭게 네트워킹에서 알게된 사람과 커피챗을 빙자한 이민 살이에 대한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러다 연말 휴가 시즌 채용 공고가 없을 때는 더 이상 할게 없어 지붕을 시원하게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누워 물 위에 떠 있는거라 상상하며 심호흡을 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했다. 이렇게 저절로 명상이 되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 불안 초조를 예상 했었다니. 그러니 취준을 하고 있긴 한데 내리 계속 취준은 아니다. 그리고 그래야 좋은 취준이 된다고 난 믿고 있다.
- 네트워킹 모임에서 만난 한 여자분의 링크드인 프로필은 화려해보였다. 커피챗을 청하고 그녀의 회사 근처에서 함께 피시 스테이크를 먹었다. 그 자리에서 화려해보이던 링크드인 프로필 사이 사이에 숨어있던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새벽 3시까지 야근했던 시절의 이야기, 스트레스로 손목이 아팠던 이야기, 빠른 승진에 대한 동료들의 시기, 질투를 이겨내야 했던 이야기, 꿈을 찾아 퇴사 후 1년간 취업이 되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거리낌 없이 말해 줄 수 있던 그녀가 내게 말해준 또 다른 이야기는 자신이 처음 뉴질랜에 와서 아주 작은 회사에서 일하던 때, 일을 가리지 않고 정말 열심히, 일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의 만남은 충분히 값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날 인터뷰를 보자는 한 회사의 요청을 받았다. 데이터 관련 포지션이긴 하지만 시장보다 낮은 연봉에, 업무도 이것저것 섞여서 많아보이긴 했다만 뭐든 내게 주어지는 것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해봐야겠다는 다짐으로 오늘 인터뷰를 보고 왔다.
게라지 한켠에 책상과 컴퓨터를 두고 키위 남자 4명이 일하고 있는 현장에 꽃무늬 원피스를 휘날리며 들어선 아시안 여자가 나였다. 허허허. 이런 환경에서도 일하는 것 괜찮겠어요? 네, 저는 다 상관 없어요. 라고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 나오는데 아무래도 여긴 날 떨어뜨릴 것 같다는 느낌이 온다. 왜 하필 꽃무늬 원피스를 입어가지고. 다음 희망을 캐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