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여덟이 되고나서 읽은 책 3권에서 '서른여덟'을 발견했다. 책 제목으로도 쉽게 볼 수 있는 '서른'도 '마흔'도 아닌 38살을 책 속에서 발견하는 건 길을 걷다 우연히 내 이름이 들어간 간판을 발견하는 일 마냥 반갑고 신기했다. 이제 내 나이가 된 서른여덟은 갑자기 눈이 멀어버리는 나이, 코끼리가 수명을 다하는 나이, 젊음을 유지하는 나이라고 책은 말했다.
- 21살 봄, 누군가 내게 꿈이 뭐냐고 던진 질문에 고심끝에 했던 대답은 '나는 내일 당장 프라하에 가고 싶으면 갈 수 있는 38살이 되고 싶어' 였다. 그 말을 하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며 17년이 지나오는 동안, 왜 하필 프라하를 말했던걸까, 왜 하필 서른여덟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21살의 나는 십대 때 본 프라하의 연인이 어지간히 인상깊게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38살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스테리다.
- 그래서 그 서른여덟살이 된 나는 내일 당장 프라하에 가고 싶으면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나? 전혀. 최저가 비행기티켓을 찾아야 하고 여행 경비를 따로 모아야 하고 휴가를 미리 신청해야하는데 내일 당장은 불가능이지.
- 서른여덟 2월, 우여곡절 끝에 무역회사에 취업을 했다. 공부해온 데이터 분석과는 무관하지만 또 하다보면 이 업계의 데이터 분석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살아있는 직무로. (굳이 이어지지 않아도 상관없어질 것 같긴 하지만.) 무역은 또 전혀 새로운 분야라 이 또한 쉽지 않겠다 생각중이다. 업계 용어를 배우고, 프로세스를 배우고, 회사 사람들의 대화 방식을 배우고, 그 속에서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눈치껏 또 배우고. 그리고 지금은 상상도 못할 많은 것들을 또 배우겠지.
처음 한국에서 회사 생활 시작할 때, 뉴질랜드에서 영주권 여정을 시작할 때, 난 이번만 악착같이 열심히 하면 편해질꺼라는 기대를 가졌었다. 그리고 서른여덟이 되어서야 악착같이 열심히 하는 태도가 어떤 보상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걸 느낀다. 보상은 커녕, 이 태도는 어느 조직에서든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꼭 가져가야 하는 기본중의 기본일 뿐이고 만일 이게 없다면 그 조직에서 일하는 내일이 불확실하겠다 싶다. 내가 10년 후에도 무언가에 대체 되지 않고 일할 수 있냐는 질문을 해야하는 오늘의 서른여덟로서는 어떤 보상보다도 불확실한 내일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러니 기꺼이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야한다.
- 출근을 2주 정도 앞두고 회사에 들어가면 거기서 구르고 깨지며 한판 굿을 또 하겠구나 혼자 생각했다. 친구는 이제 사회생활 처음하는 이십대도 아닌데 미친척 칼춤을 춰보라고 했다.
- 서른여덟의 나는 언젠가 프라하에 가는 날을 위해 한판 굿도 칼춤도 기꺼이 해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