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다
수백 권의 우울증 관련 책을 읽었다. 많은 다큐를 봤고 영화를 보고 논문도 읽기까지 했다. 내가 우울증에서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했던 일 중 가장 비중이 컸던 몇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로 감사 일기 쓰기였다. 감사 일기는 먼저 감사한 일을 찾아 ‘감사합니다’라고 마무리하며 일기를 쓰는 것이다. 심리학과 교수 로브터 에먼스(Robert Emmons)는 매일 매일 감사일기를 쓴 그룹과, 일반적인 일기를 쓴 그룹을 비교하는 연구를 했는데 그 결과 감사 일기를 직접 쓴 그룹의 75%가 행복지수가 높아지고 숙면에 도움이 되었으며 업무 성과까지 높아졌다고 한다. 감사일기를 쓰는 행동은 긍정적 감정을 느끼는 두뇌를 활성화시켜서 행복감을 증진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감사 일기는 오프라 윈프리가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해서 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다만 나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라도 해야 하는 심정이었다. 감사 일기를 쓴 그룹의 75%가 행복지수가 높아졌다고? 그렇다면 나도 해보자. 감사 일기에 관해 구글링이 시작됐다. 예시를 찾아보니 보통 5가지 정도만 써도 충분하단다. 감사함을 억지로 찾아 하루에 5가지를 써보기로 했다.
감사 일기를 쓰기로 마음 먹은 첫 날. 큰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한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 처음에는 1개도 쓰기가 힘들었다. 말 그대로 감사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울증에 걸린 뇌를 ‘긍정감 결여’라고 부른다 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부정적인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긍정은 나와 너무 먼 거리에 있는 단어였다. 인터넷을 뒤져 감사 일기 예시들을 찾았다.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일에 감사하는걸까.
‘아침에 눈 뜰 수 있어 감사합니다.’
‘걸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아프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남편이 아이의 목욕을 도와 준 일에 감사합니다.’
결론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감사해하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쓴 감사 일기를 보면서 과연 이게 진심일까 생각했다. 정말 진심으로 감사해서 감사하다고 쓰는 걸까? 나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일에 감사하다고 썼지만 사실은 감사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서 입으로 커피만 홀짝 마시고 다시 누워버리는 나 자신을 비난만 했다. 그런데도 그냥 썼다. 내가 진심이든 가식이든 일단은 써보기로 했다. 의지가 약하고 의심이 많은 내 뇌는 매일매일 감사일기를 쓰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이틀에 한 번은 꼭 쓰려고 볼펜과 수첩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잤다. 연구 결과도 있고 실제 경험을 해보고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으니 일단 해보자.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이상하게 한 달 정도 지나자 감사한 일을 쓰는데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감사한 일이 순서없이 계속 떠오르기 시작했다. 망설이지도 않고 감사한 일 다섯 가지를 쓰고 있었다. 한 달 전만 해도 감사한 일을 찾기 위해서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이것도 감사한 일인가?’, ‘이거를 어떻게 감사하게 생각해야하지?’ 하면서 감사일기를 쓰기 위해 생각을 쥐어짜내고 있었다. 그런데 감사 일기를 몇 달 쓰면서부터 내 마음에 조금씩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산책을 하며 아무 사고 없이 햇빛을 맞을 수 있음에 감사해하고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돈이 있어서 감사해하고 있었다. 감사 일기는 이렇게 나를 조금씩 변화의 길로 들어서게 하고 있었다. 내가 실제로 쓴 감사 일기의 몇 가지를 가져와봤다.
‘오늘 울지 않고 하루를 보낸 기분에 감사합니다.’
‘비가 오는 날을 만끽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나는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사 마실 수 있는 돈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감사 일기는 이렇게 ‘어떤 일’을 경험하게 한 것을 감사해하는 것도 좋지만 나처럼 ‘돈’이 있어 감사하다, 느낀 ‘기분’에 감사하다고 쓰는 것이 내 경험상 더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것 같다. 그러니까 감사한 일을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감사 노트 일기를 쓰기까지 나도 수많은 고민을 했고 볼펜을 손에 쥐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잘 알겠지만, 우울증은 나를 자꾸 땅 속으로 끌어 내리고 어깨에서부터 무언가가 짓누르는 느낌 때문에 볼펜을 손에 쥐기까지 몇 달이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공했다. 당시에 나는 성공이 하나 쌓였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 내가 성공 기록을 하나 더 쌓았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오늘부터 당장 감사 일기를 쓰세요.’라고. 스마트폰 메모에도 좋고 카카오톡으로 나에게 보내는 카톡도 좋고 아끼는 수첨에 적어도 좋다. 당신이 지금부터 ‘감사 일기 쓰기’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며칠이 걸리고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말해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작하기까지가 얼마나 걸릴까가 아니라 언젠가는 써야 한다는 생각이다. 감사 일기를 써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잊어버리지 말고 늘 머릿속에 담아두자. 그럼 문득 갑자기 벌떡 일어나 쓰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감사 일기는 우울하고 불안하고 부정적인 생각밖에 할 줄 모르는 나를 조금씩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당신도 꼭 내가 경험한 이 감사 일기 쓰기를 시작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