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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영 Oct 21. 2021

나는 서울이 아닌 시골에서 살꺼야

시골에 정착하다.

동물 복지를 공부하러 영국으로 떠날 당시 나는 강아지 3마리와 함께 살고 있었다. 입양을 가지 못하는 문제견들만 키우다 보니 다들 한가락하는 애들이라 나 없이 부모님이 컨트롤하기 힘들어 하셨다. 하는 수 없이 나의 개들을 지금 내가 있는 이곳 시골로 내려 보내기로 결정하였고 나는 그 연락을 받고 영국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었다. 나의 유학으로 인해 나의 아이들이 고통받는다는 생각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부모님은 아이들이 시골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한껏 누리고 있다고 하셨지만 나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유학생활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한달음에 시골로 내려가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왔다. 서울 입성을 뛸 듯이 기뻐할 줄 알았는데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무료해했고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런 아이들이 안타까워 하루에 한 번하던 산책을 두 번으로 늘렸지만 산책으로는 그 무료함이 달래지지 않는 듯했다. 결국 나는 다시 짐을 싸들고 아이들과 함께 무작정 시골로 내려왔다. 나의 부재로 그간 힘들었을 나의 털뭉치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싶었다. 그와 더불어 유학 생활로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싶었다. 그 당시에는 나는 내가 이렇게 시골에 눌러앉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서울에서 장장 5시간이 걸려 도착한 시골은 고요하게 나를 맞이했다. 물론 나의 아이들이 짖어대는 소리로 시끄러웠지만 나는 이상하게 고요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자연이, 숲이 나에게 좀 쉬었다 가라며 속삭이는 것 같았다. 며칠이 그렇게 흘렀다.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힌 채 서울로 돌아가는 날을 점점 미루고 있었다. 그냥 자연이 달래주는 심적 안정감이 좋았고, 작은 육체노동으로 서서히 건강을 되찾아가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아이들이 행복해했다. 나와 온종일 함께 있는 것도, 방문만 열면 바로 야외인 것도, 숲 길따라 걷는 산책도 아이들은 몹시 행복해했다. 그렇다. 여긴 내가 찾던 파라다이스였던 것이다. 서울보다 생활하기는 불편하지만 서울 생활에서 느껴보지 못하는 따스한 충만감을 이곳에서는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이곳에서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 프루스트는 그의 저서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 놀라운 행복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분명한 건 그 행복의 근원은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것, 아니 지금 여기의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었다.”    



어릴적 나의 소원은 항상 ‘행복하게 해주세요’였다. 생일 케익의 촛불을 끌 때도,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 때도 항상 같은 소원을 말했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음에도 나는 유독 ‘행복’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대체 행복은 언제 어디서 오는 건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았다. 나는 전형적인 ‘~하기만 하면 행복할 텐데’ 증후군에 빠져 있었다. 지금 당장 즐겁고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음에도 그러지 못하고 ‘몸무게 5kg만 빠지면 좋을 텐데’, ‘이 학위만 취득하면 좋을 텐데’라며 행복을 미뤄두었다. 그야말로 행복은 쫒아야 하는 대상, 내가 이루고자 하는 삶의 종착지 같은 것이었다. 저 미래 어디쯤에 위치한 내가 노력해야만 쟁취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하염없이 염원할 뿐이었다.      


그런 내가 시골에 온 뒤부터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의아했다. 성공을 한 것도,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닌데 그냥 마냥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버스에 몸을 싣는 대신 나의 아이들과 아침햇살을 맞으며 산책을 하고, 밤에 피곤에 지쳐 잠이 드는 대신 오늘 하루를 잘 보냈음에 감사하며 편안히 잠이 들었다. 이런 일상이 너무 좋았다. 강의와 동물병원에서 조금씩 번 돈으로 아끼며 살아가도 불편함이 없었다. 둘러보니 나는 이미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어 굳이 새것이 필요치 않았다. 소비를 줄이는 데에는 생각보다 큰 힘이 들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유학까지 갔다 와서 빨리 써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시골에 처박혀 있는 것을 의아해 했다. 모두 빨리 서울로 복귀하라고 성화였다. 나를 이해해주는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무엇이 더 소중한가를 끝없이 고민하였고 그것은 나의 성공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나 그리고 개와 고양이들의 행복을 위해 이곳에서 함께 보내는 것이었다. 

     

또한 내가 배운 동물 복지를 꼭 남들에게 보이는 것으로 표출할 필요가 없음을 느꼈다. 지금 내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직접 적용해보는 것, 실제로 내가 배운 것을 써먹는 것처럼 값지고 보람된 일은 없었다. 배운 것을 꼭 수입과 연결시켜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식을 지식으로만 끝내지 않고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영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는 모습은 각기 다르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자긍심과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그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어쩌면 모두 다 똑같은 길로 걸어가는 삶에 싫증이 났을 수도 있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때가 있다. ‘내가 만약 계속 평범하게 서울에서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럼 남들처럼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을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어쩌면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나도 카톡의 프사가 모조리 아이들 사진으로 도배를 하거나 여행 사진으로 가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자는 이런 삶에 미련이 없냐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삶이 있다는 것을 내가 모르고 한 평생을 살았으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번 돈의 대부분을 유기견과 유기묘를 위해 쓰고 있는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하다. 영국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나 또한 지금 내 모습에 자긍심을 느낀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이곳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지만 식구가 순식간에 이렇게 불어날지는 몰랐다. 유기동물 문제는 도시에서 뿐만 아니라 시골에서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어쩌면 중성화 수술이 조금 더 보편화된 도시가 시골보다 나을 수도 있었다. 여기선 사시사철 새끼를 낳는 개들을 쉽게 볼 수 있었고, 그런 만큼 버려지는 아이들도 숱하게 많았다. 모두 다 내가 품을 수는 없었지만, 나와 특별한 인연은 맺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내 곁에 두게 되었다.     



이렇게 모인 아이들이 삼십 마리가 넘는다. 이제는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이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후회를 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는 것 같다. 나에게 아이들이란 나의 행복, 즐거움, 기쁨, 아픔, 슬픔, 즉 나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 아이들 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상상할 수도 없다. 마치 처음부터 여기서 만날 운명이었던 것처럼 나의 아이들과 나는 이곳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남들에게는 보잘 것 없는 시골에서의 삶이지만, 나는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죽을 때까지 나에게 허락된다면 이곳에서 나의 아이들과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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